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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낯선 나와 만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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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09 01:20 조회16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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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와 만나는 여행




이유정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상상했던 이번 여행의 이미지는 이랬다. 현지의 사람들과 만나 어울리고 재미나게 떠드는 것. 내가 알지 못하던 다른 삶의 방식을 엿보는 것. 아무래도 직전에 연암의 글을 읽어서인지 ‘새로운 타자’와 접속하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조의 계획도 그와 비슷했다. 도시와 생활 방식이 다른 농촌에 가서 귀농한 분들을 만나고, 무산되긴 했지만 우리와 비슷한 또래인 청년 농부를 만나려 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내가 여행에 가서 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황당한 모습이었다.






문제적 나의 발견


“여기엔 어떻게 오게 됐어요?”

여행 이튿날 완주의 한 로컬 푸드 마켓. 우리에게 일을 시키게 될 주임님의 질문이었다. 순간 당황했다.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얘기하지? 로컬 푸드 마켓에 일하는 분이니 그냥 궁금해서 왔다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귀농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고 해야 하나? 질문을 받은 순간 머리가 팽팽 돌아감과 동시에 입에선 말을 줄줄 내뱉고 있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열심히 오바하는 내 입을 막을 수 없었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예전부터 귀농에 관심이 있지만 귀농하려는 건 아니고(이것은 일말의 양심이었을까)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들은 주임님과 조율샘이 얼굴 한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나를 쳐다봤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데 그분들이라고 알까. 혼자 속이 시뻘게진 채로 주차장 청소를 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헛소리를 한 것도 부끄러웠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한 것도 신경 쓰였다.


한참 뒤 걸레와 빗자루를 들고 마트 안을 청소 할 때 같이 일하는 인에게 슬쩍 물었다.

“인아, 너 같으면 어떻게 왔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할 거야?”

“음...... 하루 6000원으로 여행하는데 점심밥을 준대서 일하러 왔다고요.”


너무나 단순명료한 대답이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관심이 없으면 없는 대로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편이 담백하고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한 번도 그런 선택지가 있는 줄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이도저도 아닌 대답을 들은 주임님 역시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지 점심을 먹으며 다시 한 번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인이가 나에게 말했던 대로 이야기했다. 주임님은 그제서야 “아~”하고 이해했다. 나는 속으로 무릎을 쳤지만 조금 허탈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대답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반나절의 경험이었지만 이 사건은 나에게 커다란 울림을 남기고 끝났다. 아니, 끝난 줄만 알았다.


이놈의 뻥쟁이는 한번으로는 부족했는지 또 등장했다. 다음 사건의 발생 장소는 대전이었다. 하룻밤 신세지게 된 친구네 집에서 조원들과 릴레이로 그림을 그리던 와중에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인과 근아, 내가 근처의 벽화마을로 구경을 갔다. 오래된 주택들로 가득 찬 골목을 누비던 중 대동단결이라는 멋진 간판을 발견했다. 들어가 보니 잘 꾸며진 야외 테라스에 온갖 오락기들이 가득한 공간이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그곳은 대동(동네 이름이다)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한 문화 공간 겸 카페였다. 공간 설명을 해준 직원 분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물었다. 음료 주문하시겠어요? 나는 재빨리 가격을 훑었다. 잔당 5000원. 하루 6000원이 예산인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그렇지만 이틀 동안 쟁여놓은 돈이 충분하니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 입은 또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이따 친구들하고 다시 올게요~^^”

하지만 그 공간을 나서는 순간 ‘어차피 다시 안 올 테니까’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뻥이요~


3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앞서 일어난 사건들 때문에 생각이 많았다. 나는 왜 뻥을 치는가? 하지만 혼자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옆자리 근아에게 로컬 푸드 마켓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근아는 곧바로 대동단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근아 말로는 ‘어? 이 언니가 왜 없는 말을 하지?’ 싶었단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서 이리저리 이야기하던 중, 어색한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모면하고 싶은 마음과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섞여 충동적으로 말을 한다는 걸 알았다. 로컬 푸드 마켓의 주임님에게도 그랬다. 앞뒤가 엉망인 말을 하면서도 ‘이 순간만 어떻게 해보자’ 싶은 마음이 있었고 대동단결에서는 안 마실 거라고 거절하는 게 어려워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피해보자라는 마음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근아는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 나중에 트러블이 날 거라고 말해주었고 나는 다시금 이 반사적인 행동들을 돌아보았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나로서 관계 맺지 못할 테고, 내 뻥을 들은 사람들은 나를 오해하거나 기대한 뒤 실망할 게 뻔했다. 그저 솔직하게, 대신 무례하지 않게만 말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사고의 흐름에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된다’라는 전제가 있었다. 나는 ‘체험’을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속도 모르고 잠깐 와서 즐기다만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임님이 일하고 있는 곳에 대해 그냥 체험하러 왔다는 말은 실례일 것 같았다. 또 음료를 권하는 직원에게 안 마시겠다는 거절 또한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 같았다. 이렇게 중심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상황과 마음을 무시하고 그들의 기분을 맞추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마음을 잘 파악한 것도 아니다. 저 기준은 순전히 생각 없는 소리가 싫은, 거절당하는 것이 싫은 나의 기준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상대도 불만족스러운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다른 사람들의 리듬에 끌려가지 말고 나의 마음을 먼저 살펴 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색한 상황을 빨리빨리 넘겨버리려 들지 말고 푹,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어색하면 뭐 어떤가? 처음만나는 사람끼리 안 어색한 게 더 이상한데 말이다.






함께 하는 고민


이런 일들이 정말로 처음 있었냐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거기서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차피 안 볼 사람이니까, 생각하면서 이제껏 어물쩍 넘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그런지 내 상태가 잘 보였고 보이는 만큼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사실 여행 가기 전까지 조원들과 어색한 감이 있었는데 3일간의 여행, 그 사이 고민이나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연구실에서만 보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여기서는 우스갯소리로 조각지성, 조각지성, 하지만 다양한 대화 속에서 알게 된 점이 많았고 내가 하는 공부와 고민이 맞닿을 때도 공부는 역시 실존의 문제구나 실감할 수 있었다. 다음 여행에서도 보기 싫고 부끄러운 내 모습과 마주치겠지만 그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다른 행동 양식을 실험해보는 기회로 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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