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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탈(脫)계획 기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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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2-01 11:57 조회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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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계획 기대하기


박소담

비모험의 시내버스

   여행을 떠나기 전 다큐멘터리 영화 잉여들의 히치하이킹을 꼭 보자는 말을 선두로 우리 조는 좀 더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여행을 그렸다.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시내버스 여행. 각 도를 연결하는 편리한 시외버스가 아닌 시내버스만을 타고 멀리 떠나보자는 것이었다. 시외버스로는 세네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거의 하루에 걸쳐 기어갈 판. 심지어는 교통비도 더 비쌌다. 그런데 왜 굳이 시내버스를 타고 타야 하는지? 중간에 나온 민지샘의 물음에 조원이 다 같이 모여 다시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야 뭐 딱히 엄청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재밌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편하게 가기보단 고생도 더 해보고, 예측하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면 더 재밌지 않을까? 길 위에서 낯선 것들과 만나는, 그런 계획적이지 않은 여행도 즐겁지는 않을까, 하고. 그렇게 반쯤 설득작전이었던 회의는 기대에 찬 민지샘의 모습과 함께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런 의미화에도 불구하고 실상 시내버스 여행은 엄청 계획적이었다. 비슷한 구간을 갔던 시내버스 여행 블로그를 참조했으며 각 지방 버스 시스템을 들어가 버스 번호와 배차 간격, 정류장 위치도 모두 확인했다. 버스 회사에 연락해서 시내버스 구간이 없던 곳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아예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그 중에 하나 불확실했던 건 공주에서 논산으로 가는 한 구간이었다. 블로그마다 다른 버스 번호에 시간도 불명, 배차도 불명. 그래, 너는 마의 구간이로구나. 이렇게 한 구간이 공백으로 남게 되었다. 혹시 이것 때문에 외박을 하진 않을지 걱정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여행 당일, 서울역에서 출발한 우리들은 1호선을 타고 구로역에서 환승하여 천안까지 이동할 셈이었다. 그렇게 구로역의 천안이라고 적힌 플랫폼에서 급행열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이상하게 시간이 되었는데도 전철이 도착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 네비를 맡았던 다영은 의아해하며 스마트폰을 열심히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알아낸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가 있던 플랫폼은 급행열차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며 다음 전철은 40분이나 뒤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짐을 들고 플랫폼을 옮기려는데 속으로는 꽤나 유쾌하지 못했다. 우려했던 시내버스도 아니고 전철을 타는 데서 일정이 어긋나다니! 원망의 화살을 네비였던 다영에게 돌리며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같이 길을 찾아볼 걸 생각하며 말이다.




환상의 계획표

   그렇게 한 발 늦은 계획대로 천안에서 시내버스 타기가 시작됐다. 각오를 다졌던 시내버스는 생각보다 수월했다. 찾아본 버스들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들어왔고 레이서를 방불케 하는 기사님들의 질주로 시간도 넉넉했다. 그렇게 손쉽게 몇 구간을 지나서 대망의 마의 구간에 진입했다. 조사했던 두 루트 중 한 버스는 아예 다니지 않는 것 같았고, 나머지 하나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버스가 들어오자, 기사님께 묻기를, “논산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려는데 이 버스 타고 가면 되나요?” 그러자 기사님 왈, “종점까지 가면 돼.” 만사해결! 여행 준비단계 내내 고심했던 것이 기사님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해결되어 버렸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반쯤은 기쁘고 반쯤은 벙 쪄 있었다. 이렇게 쉽게 통과하다니! 대체 무엇을 마의 구간이라 하여 두려워했던 것일까? 애초에 마의 구간이라는 게 있기는 했던 걸까?

마의 구간은 확실히 계획 단계에서 생겨났던 두려움이었다. 낯선 것과 만나겠다는 다짐으로 시내버스를 선택했지만 실제 계획표 상으로는 모든 변수를 없애기 위해 만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만들었던 완벽한 계획대로 여행이 흘러가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전철역에서 방황하는 것도 참지 못하고, ‘마의 구간을 수월하게 지나가자 심히 당혹스러워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대를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앞으로는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지, 내가 만든 기대에 흔들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면 그것마저도 하나의 기대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기대하지 말자는 기대. 그 다음에는 기대하지 말자는 기대를 하지 않도록 기대해야 하나?() 그러니 기대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사실 기대야말로 여행의 필수 요소다. 기대가 무너지는 그 순간, 걸어보지 못한 낯선 길을 만나는 그 순간이 여행의 시작이 될 테니 말이다.


()계획 기대하기

   구로역에서의 원한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 가진 않았다. 전철 플랫폼을 옮겨가던 중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Guro Station of Orgin, 한국말로 구로역시발. 이거야말로 내 마음의 소리가 아닌가! 그 앞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다 보니 불쾌했던 마음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아마 다영이의 실수가 없었더라면 그만큼 웃지도 못했을 해프닝이었다.(본인은 그 사이에서도 의기소침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철 안에서 문득 생각했다. 이건 우리가 전철역에 배반당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럼……버스의 반란, 전철의 배반? yeah. 그렇게 시작이 된 가사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달리는 시내버스 안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시공간의 역작인 셈!



버스의 반란 전철의 배반 uh a yeah

버스의 반란 전철의 배반 여행 애티튜드

막막한 이 정류장 내 눈앞을 가려

막막한 정류장 가르는 이 한줄기의 버스

무명을 깨는 한줄기의 버스가 없다면

외박의 노예 되거나 비박의 노예 되거나 집에 못 가게 되거나

무엇이 길인가 무엇이 여행인가

그것은 바로 노선 없던 곳을 개척하여 생겨난 것이고

컴퓨터 아닌 사람들을 통해 물어가며 생겨난 것이다

예전에도 버스는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버스는 다닐 것이다

우리는 결코 쓸쓸할 수가 없다 왜냐고?

버스는 끊기지 않고 심야도 있기 때문이지


  동연샘의 루쉰 랩을 개사해서 만든 이 작품은 의백샘과 윤하의 다큐멘터리에 뮤직비디오로 삽입되었다. 이렇게 원망과 짜증으로 점철되었던 구로역 사건은 랩이 되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나의 여행기가 되어 훌륭하게 되돌아왔다. 그러니 여행이란 걸 어떻게 계획할 수 있단 말인가? 기대했던 대로, 예측했던 대로 흘러가는 여행이야말로 가장 실패한 여행임에 틀림없다.

  이번 3학기를 마지막으로 나는 대학교로 돌아간다. 1년 동안의 생활 리듬을 깨고 새로운 삶의 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당연 여기에는 수많은 기대와 불안들이 있다. 가서 적응을 잘 못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힘들어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못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이 그렇듯, 삶도 기대가 깨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계획을 벗어나는 그 순간이 이야기가 되고, 삶이 되니 말이다. 그러니 계획이 틀어질 것 같다고 해서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적응 못하면 또 어떻고, 그만두게 되면 또 어떻단 말인가. 거기서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생겨나고 또 새로운 랩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다면 반대로 불확실한 앞으로를 기대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진정한 내 이야기가 시작될, 그 탈계획의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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