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말과 글

청년의 글쓰기│불안과 그만 헤어질래!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16 13:23 조회253회 댓글0건

본문




불안과 그만 헤어질래!

  




김지혜


드디어 마실 공동체에 도착했다! 잠시 공간을 둘러본 뒤에 우리가 한 것은? 팔찌생산! 이번 여행에서 우리 조의 여행 스타일을 발견했으니, 바로 ‘재성’ 스타일이다. 마실로 오는 길에 터미널의 대합실에서도 버스의 흔들리는 의자에서도 팔찌를 만든 우리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마실의 한가운데 공간의 큰 테이블에 앉아서 팔찌생산에 집중했다. (이후의 호호 장터에서 이 팔찌가 톡톡히 팔리면서 우리는 모두 무척 신이 났다. 특히 길현이가^^)


잠깐 눈을 돌려보자.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맑은 날씨였다. 마실 공동체의 누군가가 손수 만들었다는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에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조 사람들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날씨를 즐길 틈 따위는 없었다. 오직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리고 묶고 돌리고 묶고. 하얀 실과 붉은 실, 파란 실 다시 하얀 실….


자자, 다시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의 옆으로 주방이 있다. 널찍하지만 주방 살림들이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사려 깊게 설계한 것이 느껴진다. 특히 예쁜 노랑이 섞인 조명을 받아서 아늑했고, 처음 그 주방을 봤을 때 우린 모두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승연이와 자연이는 주방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아랫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반대편에 앉은 나와 길현 그리고 예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손만 빼면 조는지 깨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 정희. 정희는 할 수만 있었다면, 그러니까 고개를 살짝만 들거나 왼쪽으로 15도 정도 눈만 돌리면 주방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있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화보 같은 사진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화보의 모델 같은 와중에도 몹시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분이 들어오셨고 나의 불안과 걱정이 시작되었다.








 

불안과 걱정, 습관의 시작


죄송스럽게도 이름은 까먹었다. 나중에야 공식적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마실 공동체의 운영진 중 한 분이신 것을 알 수 있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서 회색이 된 머리카락 색과 묘하게 잘 어울리는 분홍색 셔츠를 입으셨는데 기타 케이스를 들고 오셨다. 물론 밝게 인사를 했지만, 우리는 바로 팔찌 만들기에 전념했다. 그분은 느릿느릿 기타를 꺼내 연주를 시작하셨고 그때 나의 고질적인 불안도 시작됐다. “너무…. 버릇없는 게 아닐까?”


늘 그렇듯이 오만가지 생각이 오고 가기 시작했다. 이 공간의 진짜(?) 주인이 왔는데 손님이면서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제대로 자기소개라도 좀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아냐, 아까 도수경 마실 간사님이 마실 전체 단톡방에다가 우리의 사진을 올려놓으시겠다고 하긴 했어. 우리가 누구인지는 아실 거야. 어쩌면 쑥스러운 성격의 소유자일지도 모르지. 잠깐, 우리 아빠는 기타연주에 반응해주면 되게 좋아하던데…. 지금 뭔가 반응을 기대하고 계시는 게 아닐까? 뭐 하시는 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잠깐 아까 도수경 간사님이 ‘너무 일찍 오셔서 당황스럽네요’라는 말을 하고 가셨어. 역시 지금 우리는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게 분명해. 어떡하지? 안 그래도 예전에 여행 제안서를 보낼 때 말을 잘못 쓴 것만 같아서 아직도 마음에 걸리는데. 휴, 그냥 잠 푹 자고 늦게 올 걸 그랬나 봐. 혹시 이 공간에서 원래 이 시간에 하는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헉…. 지금 우리 방해하고 있나?

  


새로운 만남과 습관의 반복


그러다가 마실 공동체 분들이 한분 두분 들어오시면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만남과 이야기는 모두 나의 예상을 뛰어넘었는데 특히 활발한 생기가 인상적이었다. 회색 머리와 분홍색 셔츠의 선생님은 오래전에 귀농을 하신 분으로 동네에서 ‘만능 예술가’로 불리고 계셨다. 우선, 제천에 처음 와서 한 일이 유튜브를 보고서 직접 혼자 지은 집에서 살고 계신다고 했다. 또 온갖 악기를 다루는 분이셨다. 게다가 현실 농업의 한계, 유럽의 농사, 마실 공동체의 방향에 대해 거침없이 그리고 재치 넘치게 이야기하셨다. 연신 웃음이 터지면서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니 여행 온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다른 마실 공동체의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에너지는 뭘까? 그분들의 고민은 결코 우울하거나 울분에 차 있지 않았다. 오히려 생기와 유머가 가득했다. 고민이 생기면 세계의 온갖 대안적 삶이나 정보를 찾아보고 또는 찾아가고, 바로 삶에서 실행해보고 시행착오를 겪었다. 포기할 건 포기하지만 계속 다른 길을 찾는 생명력과 자발성을 느꼈다. 이곳으로 여행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탄과 설렘, 호기심을 비집고 다시 불안의 회로가 켜졌다. ‘이렇게 말을 잘하시는 분을…. 나 혼자라도 말을 붙여볼걸. 좋은 기회를 놓친 건 아닐까?’


다행히(?) 곧 호호 장터가 시작했고 정신없이 시간이 갔다. 둘째 날도 아침 일찍부터 두 팀으로 찢어져서 농사일하고, 맛있는 밥을 얻어먹고, 또 돌아와서 인형을 수선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녁에는 청년들과의 약속이 있어서 마실 바로 앞 빵 카페에 갔다. 그런데 입구 쪽에 어제 뵌 마실 공동체의 남자분 네 분이 술을 마시고 계셨다. 들어가면서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지만 뭔가…. 어색하다고 느꼈다. 그분들은 일어나서 가게를 나가시자 또 불안해졌다. ‘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어색했어, 난 너무 말주변이 없어….’






 

불안하지 않았다면?


그날 늦은 밤, 우리끼리 보낸 시간이 너무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어제 호호 장터에서 산 사과 와인과 오디 와인, 한 병씩을 꺼내놓고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는 이런 불안과 걱정을 터놓았다. “그분들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친해졌어야 하는 게 아닐까?” 같은 조 친구들이 반문했다. “친해져? 얼마나 더? 만난 지 하루 이틀 만에?”


듣고 보니 그렇네? 친구들은 내가 불안은 느낀 그 순간에 오히려 마실 공동체가 열린 공간, 편안한 공간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도수경 간사님은 와서 노트북으로 할 일을 하셨던 것, 어떤 초등학생은 들어와서 책을 보다가 친구들 소리가 들리자 씩씩하게 인사를 하면서 뛰쳐나갔던 것, 또 여름에 무더위 쉼터로 쓰인 점 등 친구들의 이성(?)적인 말들을 듣고 있자니 나는 당황스러웠다. 난 왜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까? 불안과 걱정을 느끼느라 나의 몸은 위축되고 초조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나는 마실을 열린 공간은커녕 가시방석 같은 곳으로 경험했다. 이 불안과 걱정들은 어디서 온 걸까?


내가 이번 여행에서 걱정과 불안 없이 아니, 만족스럽게 사람을 만난 순간은 별자리 부스에서였다. 별자리를 징검다리 삼아서 그 사람과 ‘연결되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정도가 아니면 나는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내 욕심으로 만들어진 높은 기준을 들이댄 것이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에 비합리적으로 높은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나의 평소 패턴과 매우 닮았다. 일도 연극도 운동도 강렬하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안 하는 식으로 힘을 써왔다. 강렬하게! 100 아니면 0! 그래서 지난 여행기 초고에서는 ‘강렬함’에의 욕망이 불안을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강렬함’이 왜 중요하냐는 조원들의 피드백에 나는 겨우 답했다. 멋있으니까.


결국, 내 욕심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고, 되고 싶다. 최근에야 그런 강렬함을 ‘기본’ ‘최소’라고 여기면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는 나의 전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조원들이 최소한의 참여도 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 화를 냈었다. 그런데 24일 금요일 청백전 장기자랑으로 낭송연습을 하면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작다고 느껴져서 조바심이 났다. 큰 목소리에 대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서 다시 낭송을 했지만 바뀐 것이 없어 보였다. 성의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짜증이 났다. “최소한의 참여”나 성의나 똑같다. 강렬함이라는 자기만족과 욕심으로 가득 차면 상대방이 그 사람 나름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나, 그 사람이 편안하게 기타연주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은 애초에 차단된다. 그리고 피곤하다. 유머? 있을 수가 없다.


  





잠자는 것이 강렬함보다 못한 이유가 뭐냐?


내가 이번 여행의 목표로 삼은 것은 “자의식을 내려놓고 낯선 사람과 만나기”였다.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무언가가 나를 막고 있다는 느낌을 자꾸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그런 욕심, 강렬함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방식과 너무도 다른 무엇이 마실 공동체에 있었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와 마실 공동체와의 첫인사 때, 마실을 소개해주시기 위해서 지난 활동 영상을 틀어주셨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은 회의 중에 잠든 사람의 모습을 찍은 것이었다. 턱수염에 수건을 두른 그분은 정말 푹~ 깊이 자고 계셨다. 그 모습을 다각도로 열심히 찍은 영상을 보면서 우리는 웃음이 터졌다. 그런 우리를 보고서 조금 있다가 장터에서 이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 정말로 그랬다.


그분은 과묵하게 아주 열심히 고기를 굽고 계셨다. 그러다가 호호 장터를 마무리하기 직전에 막춤을 추는 타임~ 어깨와 골반을 아주 절도있게 움실움실하시면서 사람들을 스테이지로 하나둘씩 끌어들이셨다. 그리고 장터가 끝나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모여서 진행된 회의에서 응? 잔다! 허허. 익숙한 듯 아무도 깨우지 않는다. 틈틈이 또 일어나서 할 말을 하시고 또 잔다!


일단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질문이 생긴다. 자는 것이 강렬함보다 못할 이유는 없다. 전혀 못나 보이거나 불성실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분은 그분의 방식으로 강렬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나처럼 자신을 들들 볶으며 눈이 가려진 말처럼 돌진하는, 주변과 불협화음을 내는 나의 강렬함 추구와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스스로 편안해 보였고 또 주변에서도 그것을 그 사람의 리듬으로 받아들여 졌다. 우리에게 고기도 챙겨주시는 등 (좋은 분) 주위 사람들과 함께 호호 장을 만들어 가고, 할 말이 있으면 했고 졸리면 잤다. 그게 다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혹시 오해하지는 않을까, 나를 싫어하면 어쩌나, 혹시 여기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무언가를 놓치고 있을까 봐 전전긍긍? 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분과 마실 공동체의 생기가 겹쳐져서 보인다. 마실 공동체는 아주 다양한 성격과 재능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과 철학대로 살면서도 함께 힘을 합쳐서 생겼고 또 이어지고 있었다. 움실거림과 묵묵함, 그리고 졸음이 함께 할 수 있듯이. 한 달에 한 번씩 ‘같이 놀자’라는 모토를 가진 호호 장터는 형식적이지도 않았고, 의무에 짓눌린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내 욕심에 치여서 자주 피로하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면 책임감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하루하루가 반성과 안타까움, 걱정…. 불안으로 가득 찬다. 최근에는 잘 때 다시 이를 갈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 때문에 정희쌤이 깜짝 놀랐다고…. 이제 그만 불안과 헤어지고 싶다. 그 불안을 내려놓으려면 먼저 욕심을 좀 내려놓아야 하고. 불안과 욕심이 사라지고 빈자리가 생겨야 있는 그대로의 편안함이나 움실거림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다시 아름다운 햇살이 들어오는 마실 공간의 거실로 돌아가자. 멀리서 청년들이 찾아왔다. 마실이 궁금해서 왔다고 한다. 호호 장터에 참여하고 물놀이도 간다고 한다. 뭔가를 꼼지락거리면서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늘 그랬듯이 기타를 친다. 오늘 호호 장터에서 칠 곡을 연습하는 참인데 잠시 후에는 기타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를 친구도 올 것이다. 날씨가 좋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