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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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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09 00:07 조회8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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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져 있는 것은 없다!



오근아


우여곡절 끝에 우리 조가 떠난 곳은 전라북도 완주이다. 완주에는 중간 유통업체 없이 농부들과 매장을 직접 연결하여 운영하는 완주 로컬푸드 협동조합이 있다. 다른 유통 과정과는 다르게 로컬푸드에 참여하는 농부들은 자신의 수확물을 포장까지 마친 뒤 직접 매장으로 가지고 온다. 농산물에 자신의 이름과 핸드폰 번호가 있는 가격표를 출력하여 붙이고, 그것을 진열하는 것까지 농부들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는 것이다. 당연 로컬푸드 매장의 풍경은 다른 여느 대형할인점과는 다르다.


대형할인점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의 물품이 창고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직원들이 제품이 언제 얼마만큼 들어올지 몰라서 전전긍긍하며 휴대폰을 쥐고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여기 로컬푸드 매장에서는 그것이 그들 매일매일의 일상이다. 로컬푸드 매장에 일일체험을 하러 갔을 때, 낯설게 느껴졌던 풍경은 코너마다 제품의 수량을 체크하며 농부들과 연락하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아침 일과는 어떤 농산물을 얼마만큼 가져오는지 농부와의 전화를 통해 일일이 체크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만큼의 수확물이 올 거라는 이 당연한 믿음은 로컬푸드 매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떻게라도 모자란 농산물을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농부들과 사투하는 직원만이 있을 뿐!






1. “오이 있어요?”


농부들이 직접 매장에 농산물을 진열하러 왔다 갔다 하니 그것 또한 어느 다른 마트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여기서도 단연 수량 확보를 위해 애쓰는 직원과 농부들의 밀당이 나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우선 이날의 판매를 위해 오이를 확보해야 하는 직원이 매장에 진열하러 온 농부에게 먼저 묻는다. “오이 있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내가 예상했던 답변은? 당연 yes or no! 오이가 있다면 자신의 제품을 팔기 위해 농부가 ‘있다’고 대답을 할 것이고, 아쉽지만 오이를 다 수확해서 남은 오이가 없다면 ‘없다’고 대답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 하지만 마치 이런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농부가 한 대답은? “많이 심었대~~~”


응? 아니 이건 무슨 말이지? 이 말을 들은 나는 일단 빵 터졌다. ‘오이가 있냐?’는 물음에 내가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답변이었다. 당장 오늘의 오이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서 던진 직원의 예리한 질문을 능구렁이처럼 능수능란하게 넘어가는 농부의 대답! 일단 지금은 없는 것 같으나 많이 심었으니 언젠가는 오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미래에 있는 오이의 존재까지 생각하여 말하는 어르신의 화법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알쏭달쏭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어르신 농부들과 소통해야 하는 직원의 고뇌가 절로 느껴진다.






2. “이거 가져가요~”


직원과 농부의 케미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로컬푸드 매장은 농산물의 신선도를 위해 제품 진열 기간을 품목마다 정해놓았다. 잎 채소류는 하루, 과일류는 이틀 내에 팔리지 않으면 농부의 이름을 써놓은 봉투에 담아 다시 가져가게끔 매장 뒤편에 둔다. ‘많이 심었대’라는 말을 듣고 말문이 턱 막혔던 직원이 다시 등장한다. 매장 뒤편에서 진열 기한이 지난 제품을 담은 봉투를 빤히 쳐다보며 들고 나온다. 다른 농부에게 “이거 가져가요~~”라고 말하며 당장이라도 손에 쥐여 줄 듯한 기세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농부, 한번 슬쩍 보더니 그저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답한다. “나 아직 안가^^~~” 그러고선 본체만체 상품 진열을 계속한다. 어떻게든 시스템을 굴려야 하는 직원과 그것과 상관없이 해맑게 자기 일을 하시는 농부님의 모습에 또 한 번 웃음이 났다.



3. “크기가 다 다른데 어떻게 다 천원이에요?


그 해맑아 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 곁으로 쭈뼛쭈뼛 다가갔다. 안 그래도 농부들이 와서 진열대 앞에서 가격표 붙이는 게 신기했었는데, 나도 같이 해보고 싶은 마음에 슬그머니 가서 쳐다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애호박 크기가 주먹만 한 것도 있고 작은 탱탱볼만큼 큰 것도 있는데 가격은 크기 상관없이 똑같이 다 천원이었던 것이다! 헐~ 크기가 이렇게 천차만별인데 가격은 다 똑같다니 이건 말도 안 됐다. 놀랜 마음에 아주머니께 따지듯이 물어봤다. “아니 이거 크기가 다 다른데 어떻게 다 천원이에욧!?”

그러자 그 농부님 살짝 당황한 듯 보였으나 금세 다시 해맑은 모습으로 돌아와 또박또박 말씀하신다. “아니 애호박 크기 상관없이 먼저 오는 사람이나 가족 많은 사람은 큰 거 먹고, 혼자 살면 작은 거 먹고 하면 되지^^~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은 또 먼저 와서 큰 거 고르고 하면 좋잖아~” 헐~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주머니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애호박의 크기를 돈으로 바로 직결시키는 나와는 달리 아주머니는 애호박의 크기와 가족 수의 상관관계(?)를 고려하고 계셨던 것이다!


사실 나는 아주머니께서 정말 그 관계에 대해서 고심한 결과로 가격표를 붙이시는지, 아니면 일일이 가격표를 달리하여 붙이는 게 귀찮아서 그러셨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답변은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답변이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연결고리를 짚어줬기 때문이다. 크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정해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말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끊임없이 맞춰갈 뿐


대형할인점에서 행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매장 직원분들은 창고에서 상자에 담긴 제품을 꺼내서 매장의 진열대에 진열한다. 속칭 ‘까대기’를 한다고 한다. 상자를 까는 게 일이라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그렇게 까대기 일을 하시는 분들이 따로 있고 나와 같은 행사 아르바이트는 매장에 온 소비자에게 웃으며 제품을 소개하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제품이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회사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지만 정해진 홍보 문구에 따라서 멘트를 읊는다. 친절하게 웃으면서^^ 내가 하는 일은 일방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서비스일 뿐 그 안에서 아까와 같이 빵 터지는 웃음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모두 정해진 역할에 맞게 정해진 멘트를 읊으며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컬푸드 매장 안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주고받는 말 한마디에 빵 터질 때가 있었다. 매장은 오늘 필요한 수만큼의 제품을 다 확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 정해진 수량도, 대답도, 가격도 없다. 천차만별의 단호박 크기만큼이나 다양한 상황들이 펼쳐진다. 정확한 수량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왜 오이가 없냐고 묻는 사람도 화를 낼 수도, 답하는 사람도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그냥 능청스럽게 “많이 심었대~~”라고 한 마디 날려도 괜찮을 일이다. 시스템에 맞춰서 정해진 역할과 대답이 있는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대답이다. 그 예상치 못한 대답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외의 곳에서 빵 터지는 웃음을 유발한다. 물론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직원들에게 그렇게 웃음만 나올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직원과 농부가 서로의 상황을 고려하며 끊임없이 맞춰가는 대화에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케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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