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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 오만함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_남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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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1-02 14:46 조회1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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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함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

남다영


여행의 시작, 머리 자르기
  시내 버스 여행 직전, 의례처럼 머리를 잘랐다. 여행엔 짧은 머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이런 정신머리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방학이니까 그래도 더 여유롭겠지’라는 기대와 반대로 할 일들 앞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새롭게 하게 된 강감찬TV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필요로 했고, 낮에는 에어컨, 밤에는 열대야로 잠도 제대로 못자니 체력적으로도 지쳤다. 거기다 가족여행을 갔다 와서 바로 밥당, 세미나 개강이 연달아 이어져 맥을 못 추렸다. 하루 이틀은 버티는가 싶더니, 급기야 지각하다 지갑까지 잃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삐용 삐용, 머리 속에서 ‘이대론 안돼~’하는 경고음이 울렸다. 이 경고음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여 정신 차리자는 의미로 머리를 잘랐다. 싹뚝, 가벼워짐. 여행을 알리는 신호였다.


트러블 네비메이커
  우리 조는 시내 버스로 남원 실상사까지 가는 게 첫날 목표였다. 새벽 5시 20분, 서울역에천안 가는 지하철을 타기위해 모였다. 우리는 열하일기를 모티브 삼아 사다리 타기로 여행 중 역할을 정했다. 역할은 네비1,2, 역관, 분위기 메이커, 서기, 왕이다. 나의 첫 번째 역할은 네비였다. 네비의 주 역할은 시내버스를 비롯한 길을 안내하면 된다.
  하지만 머리카락 자른다고 그 정신머리가 어디 가겠는가. 천안도 아니고 지하철 환승하기 위해 구로역에 내리자마자 사고를 쳤다. 1호선만 통과하는 구로역에 무려 9개의 승강장이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고, 바로 옆으로 안내를 했다. 하지만 바로 옆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선로였다. 1호선을 자주 탄 민지쌤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천안행을 찾아 5번 승강장으로 갔지만, 지하철은 이미 떠난 후였다. 약 30분정도의 공백이 생겼다. 다행히 의백쌤이 주먹밥을 싸와서 맛있게 먹고 여유롭게 기다리는데 시간이 되도 지하철은 오지 않았다. 쎄한 기분이 들었다. 또 한 번 놓친 것이다. 민지쌤은 승강장을 알아보려 올라갔고 나는 카카오 맵에 7번 승강장에서 타라는 걸 발견했다.
  두 번째 차도 놓친 거라 모두가 웃을 수 없을 무렵 7번 승강장으로 이동하다가 ‘구로역시발’이라는 표지를 발견했다. 모두가 그 표지판을 보고 빵 터졌다. 밝아진 분위기에 마음이 놓였으나 그 ‘시발’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7번 승강장에 가도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급히 뛰어가는 승무원께 물어보니 9번 승강장으로 가라고 말씀해주셨다. 지하철을 타고 조원들은 웃으며 구로역시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마냥 웃기가 어려웠다. 1시간이나 딜레이 되었고 내가 조금 더 꼼꼼했더라면 놓치지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갑 사건처럼 내 정신머리가 문제인 것 같았다. 조원들에게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조원들은 정보의 힘이 무섭다며 구로역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다행히 천안역에 내리고 나선, 옆에 KTX가 달려가도 새마을로 보일만큼 빨리 달리는 버스 기사님들 덕분에 우리가 예상했던 일정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 속도감이었다.


조원들에게 여전히 마음이 무겁다고 털어놓았다.

조원들은 정보의 힘이 무섭다며 구로역이 이럴 줄 몰랐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되었다.


명예회복을 위하여
  더위가 한 풀 꺾이고 출발한 여행이라, 버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시원하고 하늘도 푸르렀다. 천안까지 오는 지하철에서 푹 자서, 버스를 타면서는 다들 여행 때 나오는 별자리 9번 하우스의 특징을 발휘하며 재미를 더했다. 9번 하우스가 쌍둥이인 소담은 랩이나 드립이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왔고, 사수자리인 민지언니는 자유롭게 창문을 활짝 열어 재끼고 심취했으며, 양자리인 의백쌤은 짐볼로 영상을 찍으며 얼리 어뎁터의 모습을 보였다. 처녀자리인 호정언니는 버스에서는 멀미기가 올라와서 맥을 못 추렸고, 윤하의 물고기자리는 아직 발휘되지 않았다.(역시 물고기자리는 느리다!) 내 9번 하우스는 사수자리인데, 탐구정신을 발휘해 곰쌤 여행 특강 때 메모했던 것들을 조원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해보고 싶었던 끝장토론의 질문을 던졌다. “2,3년 후에 뭘 하고 싶어요?” 의외의 대답들이 나왔다. 시나리오 입봉을 해서 1000만원을 벌고 싶은 것, 월 300만원이상을 버는 것 등등.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한번 타면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 반이 넘는 시간을 수다를 떨며 가니 버스에서의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내려야 할 시간도 체크하며 가야해서 쫄깃쫄깃한 맛은 덤이었다. 그렇게 경로를 찾기 어려운 ‘마의 구간’도 거뜬히 통과했다. 자연스레 구로역시발도 내 기억에서 거뜬히 통과하고 있었다.
  ‘마의 구간’을 통과하고는 역할을 새로 뽑았는데 하필 또 네비가 걸려버렸다. 저번 역할에서는 대부분의 버스 경로를 찾아놓았던 소담이도 네비여서 마음 놓고 갔는데 또 걸리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길을 잘 찾아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일어났다. 하지만 웬걸. 하필 햇빛이 쨍쨍해질 때 걸어야 할 시간도 길어졌고 두 번째 찾은 버스는 오지도 않았다. 할 수 없이 오는 버스를 그냥 타야했다. 그럴수록 나는 휴대폰 맵을 더 들여다보았고, 마음은 더 위축되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휴대폰 창안에 가둔 것은 오지 않은 버스가 아니었다. 스스로 해본다는 명목아래 물어보려 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 네비는 두 명이다. 의백쌤도 네비였는데 먼저 네비를 했다는 이유로 혼자 길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같이 해요. 다영쌤~”이라고 말했을 때 아차 싶었지만 그 마음이 쉽사리 바뀌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더 잘 알테니 더 해야지’라는 생각은 배려가 아니라 오만이 되어 있었다. 버스에서 각 별자리 특징들이 우리의 여행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과는 반대로, 나 혼자 해결하려는 건 여행의 폭을 그만큼 좁히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내 높은 콧대만큼 실력을 갖추진 못했다. 구로역시발에서 눈치챘겠지만, 심하게 덜렁된다. 지도방향을 잘못보고 정반대로 이끌었고(그래서 햇빛아래 더 많이 걸었다. 미안해요 조원들!), 마의 경로 후 새롭게 찾겠다고 나선 경로들은 나중에 알고보니 소담이가 찾아놓은 경로들이었다. 엄청난 부끄러움과 함께, 그 후에는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첫날, 새벽 다섯시부터 밤 아홉시까지의 시내버스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혼자서는 못할 일
  이번 여행의 특색 중 한 가지 꼽으라면, 얼리버드 여행이라는 점이다. 첫차 타랴, 예불 드리랴, 밭일 하랴 일찍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하루를 꽉꽉 채워 보냈다. 덕분에 아침 일찍 일어나 밤이 되면 바로 잠이 드는 건강한 여행이었다. 실상사 역시 맑은 공기, 맛있는 밥, 빡빡한 일정으로 그 건강함에 톡톡히 한 몫 했다. 그 중 도법스님과의 차담과 농사 운력은 건강함과 함께 내 명예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었다.
  차담에서 내가 질문한 것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현재에 충실해지고 싶어요.”였고 다른 하나는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내 것을 가지고 싶고, 잘나고 싶어요. 변할 수 있을까요?”였다. 버스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에 스스로 불만족스럽고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다. 하지만 이 마음들이 잘 안 다스려졌고 질문을 하면서 울컥했다. 그런데 스님께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 문제를 알면 즉각 해결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단순명료했다. 덧붙여 머리만 쓸 때 그런 고민을 잘 하게 되는데, 온몸으로 살아야 삶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면서 온 몸으로 하는 것으로 농사를 예로 드셨다. 마침 오후에 운력으로 농사가 잡혀있었다.


‘나 이만큼 했어요!! 봐주세요!!!’라는 작은 마음 대신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선 작은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 있었다.


  운력은 공동체의 육체노동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세시부터 여섯시까지 고추를 따고 밭에 있는 비닐을 벗겼다. 사실, 도법스님께서 온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을 땐, 농사가 엄청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운력을 할 때 빼지 않고 진지하게 임하려 했다. 그런데 직접 농사를 해보니 씻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날만큼 땀내 가득한 일이었다. 다 익었는지, 벌레 먹은 건 없는지 잘 살피며 따야했고, 힘을 세게 주면 다른 가지까지 부러져서 적당함이 필요했다. 대충 따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나 하나의 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이걸로 고추장도 만들고, 다른 사람들이 먹기도 하는데 허투루 딸 수가 없었다.
  그렇게 땀내 풍기며 한 시간 동안 내가 수확한 양은 한 포대의 반의 반도 안되었다. 그 넓은 밭의 고추 중 극히 작은 일부였다. 하지만 이것밖에 못했다는 열등감은 들지 않았다. 또한 열심히 했으니 봐달라는 마음도 별로 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의미로 내 자신이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일 년 내내 이 고추 하나를 기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시간을 견뎌온 작물들, 함께 일궈온 농부들, 당연하듯 늘 존재하는 해와 비를 비롯한 자연이 있었다. ‘나 이만큼 했어요!! 봐주세요!!!’라는 작은 마음 대신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선 작은 역할을 했다는 뿌듯함 있었다.
  머리만 쓰며 사는 것과 온몸으로 사는 것 또한 이러한 차이가 아닐까? 머리만 쓸 땐 지레짐작으로 내가 모든 걸 다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자연스레 콧대도 높아지고 남들이 이 잘남을 알아봐주길 원하는 마음도 커진다. 하지만 그럴수록 불만족스럽다. 남들이 알아주느냐는 둘째 치고 몸은 머리의 속도와 스케일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몸은 그 순간 딱 한 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혼자 모든 걸 다 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한계가 있지만 나는 다른 모든 것들이 소중해진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 세상을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머리가 아니라 몸의 속도에 맞출 때 볼 수 있는 사실이다.


땡스 투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참 머리가 아니라 몸의 속도에 충실하도록 해주었다. 시내버스로 가야 해서 내 위치, 언제 어디로 가는 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구로역같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다가와 내 콧대를 확 누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머리로 굴리는 것이 익숙한 나에겐 그런 상황이 나의 못난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 부끄러움이 혼자 다 해먹어버리려는 오만함의 결과였다는 것을 안다. 더 돋보이고 싶고 특별해지려던 마음이 나를 더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젠 내 못난 부분이 다른 것들과의 이음새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루 경비 6000원의 제약이 있을 때 더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했던 것처럼 나는 나의 한계 때문에 SOS를 칠 수 있다. 이때 가진 게 없다는 열등감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주위를 적극 활용하며 헬프미를 외치고 감사함을 느끼는 게 내 역량을 업! 시켜준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고 있는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그럴 때 나의 정신머리 또한 잘 돌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오히려 주위를 적극 활용하며 헬프미를 외치고 감사함을 느끼는 게 내 역량을 업! 시켜준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받고 있는지, 어떤 흐름 속에 있는지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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