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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6) )-참된 역사, 수사학적 방법과 정동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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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26 08:18 조회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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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 (6) 

 

 

 

 

  _Christopher Janaway?? 

 

니체는 우리가 도덕적 애착을 갖는 이유로 정동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그의 주장에 기반을 두어 우리는 정동을 불러일으키는 수사학이 타당하다고 제안할 수 있다. 니체의 관점은 『아침놀』에 가장 분명하게 나오는데, 여기에서 그는 우리가 상속받는 가장 근본적인 수준은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도덕적 감정, 혹은 호감과 반감, 또는 “찬성하는” 감정과 “반대하는” 감정이라고 한다. (참고 『아침놀』 34, 35, Janaway 2003). 도덕적 개념이란, 우리에게 있는 기본적으로 상속받은 감정이 사후에 합리화된 것이다. 우리의 감정 그 자체는 “궁극적이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 우리는 단지 과거에 존재했던 지배적인 어떤 특정한 도덕적 개념과 탁월함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정동은 니체의 설명에서 두 단계로 나온다. 첫 번째 단계를 보자.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그러나 노예도덕에서 선함이라고 간주된 것에 대한 정서적 충성심은 물려받았다. 두 번째 단계에선 이 개념적 전략이 발전한 배경을 이야기한다. 오직 노예도덕의 정동을 통해서만 자신의 힘을 쓸 수 있었던 이 개념의 발명가들은, 이를 이용해 특정한 정동과 충동을 해결하였다. 그렇기에 니체는 우리에게 다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a) 우리는 “찬성하는”“반대하는”이라는 복잡한 정동을 갖는다. (b) 우리가 그러한 정동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판단과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성적 정당성을 설명해준다. (c) 오늘날 우리의 감정과 메타-감정의 기원은 사회적이고 개념적인 배치 때문이다. (d) 그러한 과거의 문화적 배치는 그것에 관여한 이들에게 내재하는 정동이 방출, 보존, 억압 또는 변형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식적 해석이 어느 정도 맞는다면, 라이터가 니체를 설명할 때 중심으로 삼는 자연주의적 해석에 내포된 어떤 특정한 면에 있어 문제가 생긴다. 즉 라이터가 ‘유형-팩트(type-facts)’라고 부르는 개념인데, 이는 한 개인이 갖는 도덕적 신념을 그의 심리-생리적(psycho-physical) 특징의 고정된 집합으로 설명하고 있다. 라이터는 다음을 “전형적인 니체적 형태의 논쟁”이라고 제안한다: “한 사람의 이론적 신념은 그의 도덕적 신념을 통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도덕적 신념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연적 사실에 의해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라이터 2002:9) 

 

이제 우리는 이 관점에 수정안을 제안할 수 있다. 나의 가치-신념(value-beliefs)은 나의 심리-생리적 체질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단 나의 가치-신념은 나의 호감과 반감이 합리화된 것이다; 나의 호감과 반감은 내가 속해 있는 특정한 문화가 심어놓은 습득된 습관이다; 이 문화는 오직 이 습관만을 심어놓는데, 이는 가치-신념을 인도하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가치-신념 체계는 문화의 초기 단계에서 개인의 어떤 특정한 정동적 요구에 상응하면서 지배적이 된다. 

 

이는 라이터의 주장에 두 가지 수정 사항을 제시한다: (1) 나에 대한 설명적 사실, 즉 어떻게든 가치-신념이 나의 심리-생리학에 자리를 잡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문화에 의해 형성된다: 나의 신념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호감과 반감(그리고 어쩌면 충동)에는 문화적으로 습득된 것만 있다; (2) 나의 신념을 설명하는데 있어, 심리-생리학적 요소는 나의 심리학과 나의 생리학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며,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에게 있는 정동, 충동과 합리화 등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을 포함해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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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가치의 선사시대를 발견하기 위해 엄격한 자기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검토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어떤 가치 판단에 대해서든 “그것이 어떻게 그곳에서 부상하였는가?”와 “나로 하여금 그것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은 참으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야만 한다. 니체의 주장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가 상속받은 정동의 많은 부분이 오늘날 우리가 갖는 태도를 가득 채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우리는 니체가 우리에게 재촉하는 자기 검토라는 과정은, 수많은 정동적 가닥들을 분리하는 과업을 실천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특정 신념을 갖게 하는 호감과 반감이 어떤 것인지, 나로 하여금 그러한 호감과 반감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어떤 문화적 제도와 관습인지, 그러한 문화적 제도를 초래하고 유지하는 것은 어떤 충동과 정동이었는지 등등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이 모든 배후에는 계보학과 단순한 역사 사이에 더 많은 전면적 차이가 존재한다: 니체가 보여주는 도덕의 계보학은 일반 역사와는 다른 반면, 일반 가족 계보학과 비슷하다. 계보학적 연구는 우리가 살고 있는 구체적 현재 상태로 인과적으로 완결된 현실에 한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는 오늘날 우리가 가진 태도의 명백한 기원이 되지 않는 방대한 역사를 무시하는 매우 선별적인 활동이다. 만약 내가 나의 계보를 추적한다고 할 때, 이 연구에서 내가 X의 후손이라는 것은 나에게 연구 대상으로 X가 가장 핵심이 된다. 나는 선조의 이웃에 누가 살았는지, 그 시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나 저명인사가 누구였는지, 혹은 나의 선조들이 사회적 태도, 노동의 동향 등의 변화에 어떻게 들어맞는지에 등에 관한 이야기는 혹시 있다 하더라도 단지 스칠 정도로만 알고자 할 것이다. 

 

계보학은 수직적 연구로, 궁극적으로는 결과로서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여기에선 역사적 작업이 갖는 특징인, 관심 대상에 대한 수평적 확산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 니체의 계보학도 이와 마찬가지다. 이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극도로 선택적이고 항상 “어떻게 나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이끌어진다. 이것이 계보학적 탐구가 니체에게 개인적인 것이 되어야만 하는 하나의 이유이다. 

 

그런데 왜 독자의 감정은 니체의 서사적 언어나 허구 인물의 말을 통해 자극되어야 하는가? 독자를 개인적이고 정동적인 관계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더 정당한가? 아니면 그러한 자극은 근본적 목표에 실질적인 손실을 주지 않고 제거될 수 있는 강렬한 쇼크 전략 이상의 것이 아닌가? 니체가 추구하는 가치의 재평가는 단지 판단에 있어서의 변화가 아니라 정동까지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임이 명백하다. 우리는 “선,” “악,” “옳음,” “그름”을 이용하여 판단하는 법을 멈추는 방법을 배운 후에야 마침내 ? 니체에 의하면 ? 다르게 느끼게 될 것이다.(『아침놀』 103) 그리고 변화된 정동적 습관을 불러오는 치료적이고 교육적인 목표가 정동의 불러일으킴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면 우리 자신의 가치를 이해하는 과업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갖는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동이 특정 도덕 가치를 고수하는 경향을 생산하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니체가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키려 하는 정동을 우리가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재평가는 우리 가치에 대한 정동적 관계와 역사적 이해를 주요 조건으로 갖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전자로부터 독립적인 후자가 실현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될 것이다. 정동적 관계로부터 독립적인 역사적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니체는 다음과 같은 방법론적인 원칙을 절대적으로 고수할 것이다.

 

나의 유의미한 정동이 나의 탐구 과정과 관계를 맺어야만 나는 나의 도덕적 평가의 인과론적 역사(casual history)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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