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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 여행 속 낯익은 내 모습 :빌리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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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19 11:36 조회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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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속 낯익은 내 모습

:빌리는 여행



서다윤


‘빌림’의 시작

여행 중 내가 가져오지 않은 것이 네 가지가 있었다. 내가 가져오지 않았다고 제일 먼저 자각한 것은 물이었다. 여행 첫날 사이재를 나선 지 몇 분 안 되었을 때 나는 물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목이 마르지는 않았지만, 가져오지 않았다는 자각만큼은 빨랐다. 같이 여행을 가는 근아 언니가 물을 가져왔는지 물어봤기 때문이었다. 이 말 때문에 나는 내가 물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갑자기 목이 말라왔다. 그렇지만 물을 달란 소리는 하지 못했다. 내가 가져오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산에 갈 때 물은 필수라고 하셨다. 여행에서도 물은 필수였다. 물을 두 병 가져온 근아 언니가 한 병을 마시라고 줬다. 이렇게 물을 받게 되니 마음이 무거웠다.






불편한 이동, 안일함의 대가.

두 번째로 빌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돈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갑자기 돈 문제가 생길 줄은 몰랐지만 생겨버렸다. 가져온 카드에 돈이 없었다. 첫 지하철에서는 나한테 있는 이천 오백 원으로 해결을 했지만 이건 딱 지하철 한 번 값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기다긴 고속버스를 타고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여기서부터 본격 빌리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돈이 필요한 순간순간들이 찾아온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버스를 타야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인쌤에게 카드를 빌려달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번 여행 내내 인쌤의 카드와 근아 언니의 카드에 얹혀서 이동했다. 스스로 안일했다면서 자책을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고개만 절로 숙여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뭐했는지 메모를 할 때 교통비 값도 같이 쓰는 것뿐이었다.



난 챙긴 게 뭘까?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서, 세 번째로는 샴푸, 네 번째로는 치약을 석영 언니에게서 빌렸다. 그리고 한 마디 들었다. “넌 대체 챙긴 게 뭐야?” 웃으면서 한 말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일어나기 무섭게 내가 챙긴 짐을 메모장에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벙거지 모자, 수건 1개, 반팔 1개, 반바지 1개, 양말 1개, 핸드폰, 핸드폰 충전기, 썬크림, 생리대, 책 두 권, 핸드크림, 칫솔, 교통카드, 2500원, 연필, 샤프, 샤프심, 핫팩, 소화제, 데일밴드, 티백차, 주먹밥+여분, 현미국수


총 스물세 개. 짐을 챙겼을 당시 나는 웬만큼 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어 있는 물건들이 속출할 때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석영언니가 한 말을 들었을 때 그 때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중 한 생각은 ‘그냥 치약 가져갈 걸’이었다. 치약을 아예 챙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다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이재 치약이고, 가져가기에는 너무 큰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다른 조치라도 취하면 되는데, ‘그럼 가져가지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퉁치고 넘어가버렸다. 닦으면 좋고 안 닦아도 그만이란 마인드로 가버린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치약을 가지고 왔으니 빌린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만 이런 일이 있다면 나도 별 생각 없었겠지만, 이런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났다. 이번 여행만 해도 이런 식으로 비어 있는 물건들이 속출했다. 평소에도 내 물건을 제대로 못 챙기는 편인데, 여행에서까지 계속 빌리고 있으니 불편함이 가실 새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생리가 터졌다. 다행히 혹시 몰라 가져온 생리대가 있었지만 생리대는 부족했다. 그렇지만 빌려 달라는 말을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활기 있게 여행하기 위해서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뭔가 없으면 굉장히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러한 것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내 습관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다. 잃어버리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줘서 더 이상 잃어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나를 따라다녔다. 이번 여행에서는 뭔가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으나, 가져오지 않은 물건들이 속출했다. 빌릴 때마다 전에 빌렸던 것이 떠올라서 불편했다. 그런데 정작 나 혼자 있을 때는 이 정도로 불편함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물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잃어버려도 원래 없던 것처럼 생활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초등학생 때 한 얘가 내 샤프 뒷꼭지에 있던 하트모형을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없다는 것만 확인하고 아무 생각 없이 넘길 정도로 무관심했다. 오죽하면 그 얘가 와서 ‘너는 왜 이걸 찾을 생각도 안하냐.’면서 하트모형샤프 뒷꼭지를 주고 갔을까도 싶다.


어릴 때 일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지금도 저 상황과 그리 다르지만도 않다.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습관이 이번 여행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게 습관이 돼서 짐을 다 챙겼다고 생각해도 안 챙긴 짐들이 은근히 생기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내게 ‘너는 너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더라면 이렇게 놓고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나는 여행의 맥락조차 잘 잡지를 못했다.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여행이라든가 무언가를 매니징하는 일을 해보라고 말을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길 찾기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매니징하는 것이 길찾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뭔가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지도에 있는 대로만 가면 되는데 나는 헤매버리고 말았다. 내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길을 제대로 찾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것부터 잘 안 되었다. 길을 찾는 것조차도 이럴 진데 매니징을 해야 된다는 것은 더욱 막막하기 그지없다. 뭔가 내 인생부터 매니징이 안 되는 느낌이 들어서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여행에서는 무언가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뭔가 본능에 따라서 상황을 못 보고 하고 싶은 걸 막 했다면, 이번에는 브레이크가 좀 잡힌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대전에 있는 유정쌤 친구분 집에서 우연히 발견한 ‘혈자리 서당’ 책에 무심코 꽂혀서 혼자만의 세상으로 떠날 뻔한 적이 있었다. 책을 읽다가 뭔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책을 덮었다. 책을 내려놓았더니 지금은 여행 중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굳이 지금 보지 않아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읽을 때는 재밌었으나, 나는 책을 읽으려고 여행하는 것도 아니었다. 꽂힌다고 무조건 하려 하는 내 이러한 행동이 여행을 지루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무엇이 필요한지 몰라서 짐을 제대로 못 싸고, 하나에 꽂히면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의 이런 모습들 때문에 여행에서 활기를 못 찾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행동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고 지루한 여행이 아니라, 활기 있는 여행을 위해서라도 전체적으로 보는 연습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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