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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삶을 긍정하는 그리스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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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10-05 15:23 조회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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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긍정하는 그리스 신


 이 인(ver. 23)


우리는 종종 신에 대해 생각한다. 신은 우리가 살고있는 시공간을 초월해 있고, 그리하여 우리가 전혀 상상치도 못한 기적을 일으키는 절대자로 여겨진다. 그런데 『정신의 발견』의 저자 브루노 스넬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과는 아주 다른 신을 소개한다. 그 신은 바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믿었던 올림포스 신이다. 이 책에서 올림포스 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오늘날의 초자연적인 신

브루노 스넬에 따르면 우리가 올림포스 신을 이해하는 작업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라고 할 때 흔히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설령 기독교 신을 믿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 안에 있는 이러한 신의 이미지는 브루노 스넬이 소개하는 『사사기』의 이야기를 보면 잘 나타난다.

『사사기』의 주인공 기드온은 신이 정말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드온은 신에게 부탁한다. “신이시여, 나를 보호하고 있다면 그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라고. 그리고 기드온은 모피를 마당 위에 두고 다시 기도를 한다. “신이시여, 다음날 아침에 모피는 이슬로 젖어있되 마당은 말라있게 해주십시오!” 라고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기드온은 신에게 재밌는 부탁을 하고 있다. 이슬이 내리는데 어디는 젖고 어디는 젖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이 부탁이 흥미로운 건 자연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이슬이 내리는 일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부탁하는 기드온. 왜 그런 걸까?



그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이 초자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것은 인간의 경험과 자연을 넘어서 있는 것이다. 자연을 넘어서 있는 신을 믿었던 기드온에게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자연은 신의 증거가 될 수 없었다. 자연법칙을 거스르고, 무시하고, 무너뜨리는 일만이 신의 증거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은 신에게 그러한 부탁을 한 것이다.


올림포스의 자연적인 신

그리스 인들도 기드온과 마찬가지로 올림포스 신에게 증거를 원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도 똑같이 신에게 초자연적인 일을 부탁한 건 아니다. 그들은 신에게 번개와 새, 그리고 재채기와 같은 것을 요구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신에게 “다음 날 아침, 번개가 치는 것으로 존재를 증명해 주십시오!”와 같은 기도를 한 것이다.

얼핏 보면 기도를 하고 번개가 치는 일이 초자연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번개가 치는 현상 자체만 보면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번개가 치는 일은 우연적이기는 해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 인들은 신에게 자연을 넘어서는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들이 신을 필요로 한 이유는 그것과는 다른 곳에 있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한 일들 중에는 우리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것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특히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알기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것들에 대해 궁금해한다. 그리스 인들 또한 그랬다. 그들은 왜 번개가 치고, 왜 태양이 움직이는지 궁금했다. 이러한 궁금증은 그것을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낳았다. 그래서 그들은 번개가 치는 것을 제우스 신으로,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헬리오스 신으로 설명했다. 즉, 그들은 자연 속의 알 수 없는 일들을 신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한 올림포스 신들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가 있었고, 또 각자 자신의 역할이 있었다. 그것은 올림포스 세계의 법칙이었다. 신들에게도 지켜야 할 법이 있다니. 이러한 법칙에 대한 상상은 그리스 인들이 자연을 관찰하는 데서 나왔다. 자연을 보자. 자연은 매일 태양이 뜨고 지듯이 일정한 리듬과 법칙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리스 인들은 이러한 자연적 속성으로 신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신은 당연히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들에게 신은 자연법칙 안에 존재한다.


삶을 긍정하는, 막장의 신

비나 지진 같은 자연현상이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듯이 인간 내부에도 인간 자신을 넘어서는 자연적인 힘이 있다. 그 힘은 바로 충동이다. 그리스 인들은 이러한 힘에 휩싸일 때면 사랑의 신 아프로디테, 질투의 신 헤라, 분노의 신 에리니에스와 같은 신을 만들며 설명했다. 즉, 그들은 자신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 또한 신에 의해 생겨나는 거라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 인들은 충동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사건 속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 일이 굉장히 고통스럽고, 슬프고, 화가 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충동에 의해 비롯된 것인 한 그건 모두 신의 드러남이라고 보는 것이다.


“웃음과 눈물이 있고, 우리 주위에 자연의 생명적인 힘이 있고, 우리에게 고귀하고 엄숙한 일, 대담하고 고통스러운 일, 밝고 명랑한 행위가 있는 것처럼 신들도 거기에 분명하게 존재한다.”

(『정신의 발견』 / 브루노 스넬 / 까치 / p56)


올림포스 신들은 충동의 화신들이다. 더욱이 그들의 충동은 질투의 화신 헤라처럼 가장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신들의 세계는 우리 삶과 닮아있다. 신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분노를 느낀다. 그러면서 그들은 상대를 속이고 오해하며 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마치 한 편의 막장 드라마를 시청하는 느낌이다. 허걱! 신이 막장이라니!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신과는 너무 다르다. 우리는 신이라고 하면 충동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존재를 떠올리곤 한다. 그 신에겐 질투하고 분노하고 오해하며 실수하는 일 따위는 없다. 그 신은 완전히 선하고 올바른 행동만 하는 도덕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자연인 충동을 넘어선 신. 이 초자연적인 존재는 그로 인해 존경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 삶을 병들게 하기도 한다. 충동이 없는 신적인 삶을 이상으로 여기고 충동을 가진 자신의 삶은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렇다. 완전한 신에 비해 질투하고, 분노하며, 부끄럽고, 찌질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에 그리스 인들은 충동의 화신들을 바라보며 경외심을 가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쉽게 흥분하고, 폭발하는 그런 충동적인 삶을 살려 한 건 아니다. 그들이 그러한 신을 믿었던 것은 충동이 선악을 넘어선 인간의 조건이라는 데 있다. 이 조건은 우리 삶에서 떼어낼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 조건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서 이 조건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싶었다. 이러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올림포스 신이다.




얼핏 보기에 그리스 인들이 올림포스 신을 믿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올림포스 신은 너무나 막장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신을 믿는 그리스 인들이 부족하고 미성숙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올림포스 신들은 불안하고, 예측할 수 없으며, 의지대로만 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살아가려는 그리스 인들의 노력이었던 것이다.


낯선 것의 아름다움


이 인(ver. 01)


우리는 일상적인 흐름과 리듬 속에서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나 직장에 가고, 밤에 다시 집에 들어와 잠을 잔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은 이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알 수 없는 충동과 감정들, 그리고 외부의 낯선 힘들이 우리의 일상을 흔들어놓기 일쑤다. 갑자기 병이 찾아온다거나, 의도치 않게 친구와 싸우는 경우가 그렇다. 이렇게 일상에서 벗어난 어떤 일, 낯선 일을 우리는 사건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겪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난 일들은 익숙하지 않고 신경 쓸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사건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안전장치를 마련하려고 노력한다. 병에 대비하여 미리 돈을 모으고, 관계 속에서 부딪힘이 두려워 사람과 사귀는 매뉴얼을 공부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모습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사건을 겪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놀라며 경탄하고, 아름답게 느꼈다고 한다. 이러한 감각은 우리에게 너무 이상하다. 이렇게 낯선 일을 아름답게 보는 것에 대한 감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너무나 자연스러운 올림포스 신

낯선 일을 두렵다고 혹은 아름답다고 해석하는 것은 그가 가진 종교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나 자연적인 현상을 종교의 힘으로 설명해왔기 때문이다. 우연치 않은 행운을 맞았을 때는 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는 신이 벌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인들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낯선 사건을 올림포스 신의 이름으로 설명했다. 번개가 치면 제우스가 온 것이고, 갑자기 질투가 생기면 헤라가 왔다는 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올림포스 신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올림포스 신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신들과 조금 다르다. 우리는 신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고, 만물의 생명을 손에 쥐고 있을 것이라 느낀다. 이렇게 신은 ‘자연스러운 것’을 넘어선 초월적인 어떤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올림포스 신들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이들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무언가를 창조할 능력이 없고, 인간의 생명도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올바른 법칙 속에서만 인간 세상에 개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은 올림포스 신들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자연적인 질서 중의 하나로 봤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신을 자연스럽게 봤다. 이는 낯선 일이 벌어지는 것 역시 자연스럽게 느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아름답다는 감정과 어떻게 연결될까.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호메로스의 인간은 그의 신에 대하여 자유롭다.(...)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에게 고통을 받는 경우에서처럼 인간이 어느 신에게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에도, 그는 신에게 굴복하지 않고 복종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는 순종과 오만 사이에서 모든 고난을 견디며 용감히 이 적대 행위에 대하여 맞선다.”

(『정신의 발견』 / 브루노 스넬 / 까치 출판사 / p67)


그리스인과 반대로 낯선 일을 초월적인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러한 신 앞에 직면한 인간은 무기력해질 것이다. 그 신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자신의 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듦으로 해서 자신이 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는 낯선 일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꼈다는 의미이다. 낯선 것들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건 뭘까.

우리는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만을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고 그것을 벗어난 일이 발생하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사건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 하고 그것을 겪고 있는 자신은 소외당한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낯선 일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어떻게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낄 수 있었을까.


“신이 어느 인간과 교제하는 경우에, 그는 인간을 높여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유롭고, 강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자신을 확신하게끔 만든다.”

(『정신의 발견』 / 브루노 스넬 / 까치 출판사 / p67)


만일 우리의 삶이 일상적인 것들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편안하지만 또한 무척 지루할 것 같다. 매일 매일이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잠자는 일만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리스인들은 낯선 일이 일어났을 때, 신이 우리에게 왔을 때 그것이 자신을 자유롭고, 강하고, 용감하게 만들어준다고 느꼈다. 이전에는 자신의 몸에 대해 무관심했던 사람도 병이 찾아오는 순간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고 몸을 보살피기 시작하는 것처럼. 그리고 관계에 있어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처럼. 신이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리스인들에게는 낯선 일들은 부자연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고마운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낯선 것과 관계 맺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렇게 소중한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게 자연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것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봄에 새싹이 피고, 여름에 무성하게 자라다가,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무성한 가지만 남는다. 여기에서 자연이 한 계절에만 머물러 있다면 지루하고 익숙해질 것이다. 이렇듯이 그리스인들은 자신이 하나의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게 해주는 낯선 것들을 아름답게 보았다. 설령,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이전의 나와 차이를 만들어주는 그 자체를 긍정하고 아름답다고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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