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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그리스, 부(富)를 거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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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9-21 13:50 조회1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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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부(富)를 거부하다.





김석영



그리스 사회로 들어온 ‘부(富)’


기원전 7-8세기 경, 그리스 지역과 오리엔트 지역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는 그리스 귀족들이 사치와 우아함에 조금씩 이끌리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때마침, 그들이 마주친 오리엔트 세계의 문명은 화려함과 장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그리스 귀족들은 그 화려한 문명에 고무되었다. ‘부(富)’를 과시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게 그리스 지역에 부(富)의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스 귀족들은 서로 부를 과시하고, 부를 가지고 경합을 했다. 하지만 그 열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이 부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문제들을 들어 적극적으로 부를 경계하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도 부로 인해 생기는 많은 문제들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부를 과도하게 추구하다가 건강을 잃기도 하고, 사람을 잃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돈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준다는 것, 돈으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들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의 문제라는 것이 보통 우리의 생각이다. 이런 우리의 생각으로는, 부를 거부한 그리스인들의 행동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그리스인들은 부의 어떤 면을 보았길래, 부를 그토록 경계했을까?






그리스의 ‘필리아’


그리스인들이 부를 경계한 이유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리스 사회가 중시했던 가치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스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 그리스를 지배하던 강력한 왕조인 뮈케네 왕권이 무너졌을 때, 그들 사회는 독특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다음은 누가 권력을 잡을 것인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힘들끼리 어떻게 균형을 이룰 것인가?’, ‘전혀 다른 자들 간에 어떻게 공통의 리듬을 만들어낼 것인가?’의 질문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 질문은 그리스의 독특한 사회형태를 만들어냈다. 그리스 사회의 권력은 왕과 같은, 하나의 큰 중심으로 모여지지 않았다. 그리스의 여러 집단 혹은 가문들은 서로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들은 하나가 아닌 다양한 중심점들을 만들어내며 결합했다. 이 결합은 서로 다른 힘들 간, 지배-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균형을 만들어내는 결합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종속시키지 않으면서도 공통의 리듬을 형성하고자 했다.


그런 노력으로 만들어진 ‘대등한 힘들 간의 균형’, ‘서로 다른 자들 간의 공통의 리듬’을 ‘필리아’라고 한다. 즉 필리아는, ‘평등을 전제로 한 결속’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우정, 형제애, 친애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 사회는 이 ‘필리아’를 자신들의 중심 가치로 세웠다. 힘이 한 곳으로 모이는 것을 경계하며 끊임없이 평등한 관계를 생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필리아를 만들어내려는 노력 자체가 그리스 사회가 굴러가게 하는 힘이었고, 필리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리스 사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부가 앗아간 것


그리스 사회의 밑바탕이었던 필리아. 이 필리아를 무너뜨린 것이 바로 ‘부’다. 부가 가문의 위신을 나타내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으며, 그리스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부가 그리스 사회로 유입되자마자, 필리아를 밀어내고 부가 사회의 최고 가치로 자리 잡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부는 오직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단순히 생계의 방편으로 생활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만들어졌던 부가 그 자신의 목적이 되어버렸고, (...) 우리는 부의 밑바닥에서 타락된 인간의 성향과 전도된 의지, 다른 사람보다 더 소유하고, 자신의 몫 이상으로 소유하고 싶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픈 욕망인 플레오네시아를 발견한다.

─장 피에르 베르낭, 『그리스 사유의 기원』, 길, 2006, p.118


돈은 분명 생활의 한 방편으로써 만들어졌다. 그러나 우리가 돈을 추구하는 순간,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변한다. 이처럼 목적이 된 돈을 ‘부’라고 한다. 부는 오직 자기 증식만을 향해 달려가는 돈의 거대한 욕망이다. 그 욕망에 휩쓸린 삶은 다른 모든 가치들은 수단화한다. 필리아 역시 이 힘을 견뎌내지 못하고 부에게 중심 가치의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부의 자기 증식을 향한 질주에는 끝이 없다. 누구도 ‘부’를 온전히 성취하거나, 거기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 이것이 그리스 인들이 부의 본질이라 보았던, ‘부의 과도함’이다. 이러한 부의 본질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직 ‘다른 사람보다 더’, ‘자신의 몫 이상으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욕망, ‘플레오네시아’를 심는다.


필리아를 대신한 플레오네시아. 이는 필연적으로 그리스 사람들 간에 미움과 분열을 일으켰다. 이제 사람들은 서로 적대시했고 더 이상 평등한 관계와 공통의 리듬은 생산할 수 없게 되었다. 부가 한 켠에 쌓여갈수록 사람들의 삶은 고립과 결핍감으로 앙상하게 말라갔던 것이다.






필리아의 회복을 택하다


부의 유입으로 무너져 내린 필리아. 이 사건으로 그리스 인들은 부와 필리아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절제’라는 가치를 내세우며 필리아를 회복하고자 했다. 부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의 ‘절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절약’과는 다르다. 절약은 돈을 ‘아껴 쓰는 것’이다. 여기에는 돈을 벌거나 모으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전제가 있다. 하지만 그리스적 절제는 돈을 버는 것도 최소화 하는 것이다. 그들은 돈의 추구 자체를 지양했다. 돈이 철저히 기본적인 생활을 위한 도구 이상이, 즉 목적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럴 때에만 부에게 삶을 내어주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에게 ‘돈을 덜 벌어야겠다’는 말은 익숙치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근거로,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돈에게 삶의 목적의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부는 풍요를, 가난은 궁핍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분명히 부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풍요로운가? 우리는 되레 고립감과 결핍감을 당연스레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 인들에 따르면, 이것들은 돈의 추구에 의해 발생한 문제들이다.


‘더 많은 돈’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는, 부의 축적을 위한 수단 이상의 우정을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의 추구가 오히려 삶의 풍요를 가로막고 있다. 그렇다면 부보다 더 강력하게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준 그들의 우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결핍과 고립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상상하고 실현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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