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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글쓰기│지혜가 태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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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9-14 15:52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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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태어나는 이야기




이호정

우리는 초, 중, 고등학교 등에 걸쳐 많은 공부를 해왔다. 암기를 하고 자격증을 따며 ‘합격’이라는 결승점을 향해 달려왔다. 이렇듯 우리는 어딘가에 도달하는 것을 배움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배움에서는 많은 지식을 쌓아 나를 완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완성된 나로부터 무엇이든 다 잘해낼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지혜란 조금 다른 것이었다. 과연 그들의 지혜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왕을 바라보며 사는 나라


기원전 2000년경 그리스 땅에 뮈케네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 뮈케네 왕국은 wa-na-ka라 불리는 단 한 명의 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통치하는 곳이었다. 왕은 뮈케네 사회 전체의 결정권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다보니 왕이 생활하는 궁전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 궁전의 핵심적인 구성원에는 ‘전사귀족’이 있었다. 그리스에는 독특하게도, ‘전사인 자’와 ‘전사가 아닌 자’에 대한 명백한 구분이 있었다. 싸움을 하는 전사에게 부여된 ‘귀족’이라는 고귀한 신분이 바로 그 증거다. 전사귀족들은 궁전생활을 영위했지만, 행정을 담당하는 ‘관료’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궁전과 왕을 지키며, 왕권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군사력을 담당했다. 그렇게 그들은 왕을 통해 존재의 기반을 갖고 있었다. 왕과 궁전이 있음으로 해서 살아갈 수 있는 왕의 ‘대리인’ 역할, 그게 바로 전사귀족이었던 것이다.


궁전에 그런 사람들이 살았다면, 다른 한쪽에는 함께 농사를 지으며 촌락을 이루고 사는 공동체들이 있었다. ‘다모스’라 불린 공동체는 궁전에 의존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그랬던 그들 사이에 ‘바실레우스’라고 하는 통치자가 생겨난다. 다모스는 이와 같은 바실레우스의 통치 하에서 토지를 경작하며, 뮈케네의 경제력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건 온전히 바실레우스만의 자율적인 통치는 아니었다. 그는 궁전에 있는 왕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왕에게 고용된 형태로 존재했다. 즉, 바실레우스가 다스리는 다모스 역시 왕의 지배 안에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렇게 뮈케네의 전사귀족 집단과 다모스는, 서로 다른 공간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며 지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는, ‘왕의 지배 아래’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왕권의 파괴가 가져온 ‘싸움’


평화로웠던 뮈케네 땅에 기원전 1100년경 도리아인들이 쳐들어온다. 그로 인해 뮈케네 왕국의 모든 사회 체제가 파괴되고 만다. 왕만 바라보고 살던 전사귀족 집단과 촌락공동체인 다모스는 이제 혼란을 겪게 된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모든 일을 결정해주던 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왕이 사라진 자리, 그곳에서 처음 일어난 일은 전사귀족 집단과 다모스 간의 싸움이었다. 서로가 가진 힘의 우위를 가려,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 뮈케네 왕국은 도리아인의 침입 이후, 다시는 전과 같이 강력한 단 한 명의 군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왜일까?


힘의 우위를 쟁취하기 위한 격렬한 대결은, 결판이 나지 않는 상태로 쭉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사귀족 집단과 다모스는, 서로가 상당히 엇비슷한 힘과 겨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들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할 수 없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서로가 다른 생활양식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문제는 상대를 ‘어떻게 이길까’가 아니라, 상대와 ‘어떻게 같이 살아갈까’ 하는 쪽으로 옮아가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지혜’가 탄생한다.


궁전 중심 체제의 붕괴에 의하여 흐트러지고, 때로는 격렬한 대결로 빠져 들어갔던 이 대립되는 힘들 간의 균형과 조정의 추구는 혼란한 시기에 접어들어 인간적 ‘지혜’의 초기 형식에 해당하는 도덕적 사고와 정치적 사변을 생겨나게 하였다.

(장 피에르 베르낭, 『그리스 사유의 기원』, 길, 57쪽)


『그리스 사유의 기원』의 저자 베르낭은, 그리스의 ‘지혜’가 전사귀족과 다모스 간의 싸움에서 일어난 ‘힘들 간의 균형과 조정의 추구’로부터 나왔다고 말한다. 싸움을 통해 자신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타자를 인식한 그들이, 함께 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중에 나타난 게 바로 ‘지혜’라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뮈케네 인들은 더 이상 강력한 한 명의 군주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같이 사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타자와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으로서 ‘이성’


지혜, 즉 앎을 생산하는 인간의 능력을 우리는 ‘이성’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이성은 ‘대상을 꿰뚫는 힘’, ‘무엇이든 합리적이게 분별해낼 수 있는 능력’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일반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베르낭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새로운 관점의 이성과 지혜를 발견해낸다. 그가 말하는 그리스의 ‘이성’은 냉철한 분석력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사람과의 관계를 향해 있는 어떤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뮈케네 왕국을 보자. 왕이 사라진 후에, 전사귀족 집단과 다모스는 낯섦과 부대낌을 안고 ‘같이’ 살아가야 했다. 그랬던 그들에게 필요했던 건, 타자들 사이를 잇는 ‘공통의 리듬’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통의 리듬, 그 리듬을 창안하는 힘이 바로 ‘이성’이었다. 그렇기에 그리스의 이성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것이었다. 필연적으로 타자와 부딪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 그 위에서 고안된 것이 ‘지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이성’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이성이란 ‘지혜로워지기 위해 갈고 닦아야 하는 날카로운 분별력’, 혹은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홀로 완성시켜야 하는 능력’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혜’란 혼자서 끙끙댄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나와 다른 낯선 것들과의 만남이 있는 곳에서 촉발될 수 있다. 어떤 것을 ‘배운다’고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각종 지식들로 나를 더 완벽하게 만드는 일을 ‘공부’로 볼 것인가, 아니면 새로움과의 충돌 속에서 그것과의 조화를 만들어나가는 일을 ‘공부’로 볼 것인가? 지혜를 보는 시선에 따라, 우리의 앎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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