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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4)- 레와 무사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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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24 21:26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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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 (4)?

 

 

 

 

  _Christopher Janaway?

 

 

 

 

3. 레와 무사무욕

 

『도덕의 계보』의 정점에서 니체는 "객관적인 진리의 추구"란 기독교적이고 예술적인 가치가 교묘하게 위장되어 있는 연구 방식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나는 레 또한 이러한 비판의 표적이라고 주장하겠다. 니체에게 레는 현대 사상가의 전형이다. 당시 현대 사상가들은 기독교와 초월적 형이상학 그리고 심지어 자유의지를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무사무욕을 부여잡고 있었고 - 우리 맥락에서는 그것보다 더 중요하게 - 그 가치에 대한 개념이 연구자로서 그가 갖는 자기-이해 즉, 자신의 연구 방식에 대한 개념을 장악하고 있었다. 

 

『즐거운 학문』 345는 이를 볼 수 있는 적절한 구절이다. 니체는 그 구절에서 연구 방식을 무사무욕의 방식으로부터 개인적 개입의 방식으로 전향하도록 자신이 설득한 유일한 사람이 레 임을 은밀하게 암시한다. 

 

 

어디에서건 인간의 결함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유약하고, 미미하고, 활력을 잃고, 자신을 부정하고 부인하는 인격은 좋은 일에도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 특히 철학에는 가장 쓸모가 없다. "무사무욕"은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아무 가치가 없다. 모든 위대한 문제는 위대한 사랑을 요구한다. 그리고 위대한 사랑의 능력은 오직 자기 자신을 확고히 지니고 있는 강하고, 원숙하고, 굳건한 정신의 소유자만 지니고 있다.어떤 사상가가 자신의 문제에 개인적 인격으로서 마주하여 그 안에 자신의 운명, 자신의 고통, 그리고 자신의 최상의 행복을 지니고 있는 것과, "비개인적"으로 문제를 대하는 것, 즉 냉정한 호기심의 더듬이로 사상을 더듬어 파악하는 것 사이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후자의 경우에는 아무리 많은 것을 약속한다고 할지라도 그로부터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사 그것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위대한 문제들은 개구리나 나약한 자들로서는 붙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위대한 문제들이 지닌 영원한 취향이다. - 이러한 취향은 또한 모든 건강한 여성들의 취향이기도 하다. (중략) 나는 개별적인 경우에서 이런 종류의 역사를 탐구하는 데 필요한 성향과 재능을 고무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 하지만 이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 도덕사가들(요컨대 영국인들) 역시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들은 대개 아무런 의심 없이 어떤 특정한 도덕의 명령을 받고 있어, 부지불식간에 그 방패지기나 시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이들은 도덕적 행위의 특성이 무사무욕, 자기부정, 자기희생, 혹은 공감과 동정에 있다고 말하는, 기독교의 유럽의 민중적 미신을 여전히 충직하게 지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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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니체는 레가 무사무욕이라는 도덕 개념을 고수하였기에 결국 철학적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메마른 연구 방식에 부지불식간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위 구절에서 두 개의 은유는 『도덕의 계보』에서 유사하게 나오기에 눈길을 끈다. "늙고, 차가운, 지루한 개구리"에 관한 묘사는 『도덕의 계보』 1장 첫 부분에서 이른바 "영국 심리학자"를 가리킨다. 여기서 비판하고 있는 이론이 레의 것이 명백하기에 우리는 니체가 "영국 심리학자"라는 단어로 장난스럽게 그를 지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은유를 살펴보자. 『도덕의 계보』 3장의 한 구절에서 지혜는 "근심 없고 조롱하고 난폭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여성이라고 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유약하고, 미미하고, 활력을 잃"은 사람의 반대 지점을 의미한다. 

 

그 경구를 통해 우리는 금욕주의적 이상이 갖는 의미를 설명하는 니체의 에세이를 보게 된다. 그 에세이는 궁극적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현대 사상가들은 기독교와 유신론 및 초월주의 모두를 버린 것을 자랑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동시대에 만연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이란 단지 절대적이고 반신성한 어떤 것, 즉 진리 앞에서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이고 금욕적인 자기부정에 대한 형이상학적 믿음을 표현하고 있을 뿐임을. 레가 가진 "영국적", 노골적으로 실증주의적이며 반형이상학적이고 무신론적이며 다윈적인 접근은 니체가 금욕주의적 이상에 맞섬에 있어 고발하고 있는 당시 방법들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예이다. 

 

레가 사용하는 방법은 『도덕 감정의 기원』의 마지막 부분을 통해 그의 말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는 "철학자에게 진실 외에는 아무것도 신성하지 않다"고 선언하고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만약 사심 없는 지식이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더 좋게 만들거나 더 비이기적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어떤 특정한 공리(nutzen)는 그것과 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지식은 본래 평화적이다 : 모든 사람은 경쟁이나 적대감 없이 한 종류의 지식에 헌신할 수 있다. 그러나 욕망은 항상 호전적이다 :  두 사람은 상호간 적대감 없이 같은 것을 욕망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에게 진실되고 아름다운 것(그렇지 않을 경우 쓸모없는)에 관한 진리를 고취하도록 하는 글과 예술작품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욕망 때문에)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활동들로부터 평화로운 활동들로 이끌어 가는 공리가 있다. 

레 2003:164-5

 

이러한 주장을 하는 레는 니체에게 냉철하고 개구리 같은 인간 유형 혹은 적어도 가장 친밀하게 아는 인물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레는 도덕의 최후의 것으로 무사무욕을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연구자인 자신에게도 최후의 것으로 만들고자 열망하는 실수를 범한다. 니체는 무사무욕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과 무사무욕을 기반으로 하는 연구 방식 모두 반대한다. 

 

과학자가 연구란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무심하고 비인격적이라는 시각에 묶여 있는 한, 니체에게 그러한 연구는 무사무욕으로부터 파생된 가치로 시급히 재평가해야 할 대상이다. 그가 행하는 엄격한 자기 진단은 비인격적 연구를 선호하는 우리의 정서적이고 역사적인 기초를 폭로하고 약화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우리들은 각자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비인격적이고 영향받지 않는 진리 추구의 이상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애착은 어떻게 부상하였는가?",  "나로 하여금 그 이상을 따르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은 우리가 갖는 경향과 혐오 그리고 그것들의 역사 이전의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이유로 니체가 실증적 연구와 방법과의 연속성을 갖길 원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과학에 있어 지배적인 진실 탐구의 개념에 대한 니체의 관점을 고려해 볼 때, 그는 우리가 그 개념과 얼마나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한다. 따라서 니체는 좀처럼 그의 모델로 과학적 탐구를 상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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