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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 리포트 ┃#6 신뢰 없는 신뢰의 공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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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19 19:27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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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없는 신뢰」의 식론(2)

고 유오즈미



신뢰의 도메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TRUST”에서, 세계 각국의 민간 경제의 기업규모와 신뢰 문화 정도와의 상관관계를 비교해서 서술했다. 신뢰 관계를 국가와 중간 조직과 가족규모에서 대별하고, 과거 강력한 중앙집권화의 역사를 거쳐 중간적인 사회조직이 파괴되고, 경제 활동이 국가의 조성과 보호에 의존하고, 또 혈족적인 동족 이외를 신뢰하기 어렵게 된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을 저신뢰사회로 평가했다. 역으로 일본이나 미국이나 독일 등은, 역사적으로 시민의 자발적 사교성이 높은, 친족관계에 기초하지 않는 중간 커뮤니티가 탄생하고, 동족 경영에 머무르지 않는 현재의 대기업을 창출한 고신뢰사회라고 했다. 전자는 영세기업이나 가족 경영에 그치며, 후자는 혁신이 발생하고 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본성을 단순화한 모델로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볼 수 있는 벤담적인 「효용을 합리적으로 최대화한 개인」은 불완전하기에, 그것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나머지의 영역을, 신뢰와 같은 문화적 요인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거기서 신뢰는 합리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에, 그 인간 중심적인 퍼스텍티브는 다시 물어질 필요가 있다. 본질적으로는, 합리적인 최대화의 역학은 인간 개인이 아니라, 그것을 내포한 자연에 있다. 정연한 질서를 형성하는 자연, 바꿔 말하면 열적 죽음이나 자기조직화로 매진하는 우주 안에서, 그것을 알맞게 파괴하고 동적인 질서를 만드는 것이 생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뢰는 관계를 짊어진 인간사회나 자연의 경제에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스템의 각 구성요소의 주고받음이 원활한 정도를 가지고 전체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고 이해하기 쉽다. 역으로 신뢰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사회를, 시스템으로서 순조롭게 움직이기는 곤란하다. 그리고, 인간의 현재 육체에서는, 정보처리로서의 신뢰를 나누는 코스트(비용)는 한정되어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나를 믿는 당신이 나와 거래할지, 나를 신뢰하는지를 조사하고 검증해서 거래할지, 어느 쪽이 좋을까. 그것은 거래 이외의 모든 사회활동, 타자와의 관계 전반에 대해서 적용할 수 있고, 매일매일 반복되고 있는 사건이다.


이 문맥에서 신뢰는, 논리적인 확인 추구와 결단을 일단 보류하고 사건을 진행시킬 수 있게 한다. 계산 자원이 한정된 생물은, 복잡한 현실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결과가 예상되는 계산은 가능한 한 성찰하고, 효율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은 외계의 이미지의 지각정보를 매번 새로 제로에서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은 왼쪽 위에 있다와 같은 모델을 미리 뇌 안에 설정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태양은 밑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평면의 문자에 음영을 넣는 엠보스 효과에서는, 광원을 왼쪽 위로 하여 입체적으로 보이게 한다. 신뢰란 불필요한 확인을 하지 않게 함으로써, 인간의 진화 프로세스와 계산 능력을 규정시킨 정보처리이다.




인간 문명 또한, 폭주적 성장에 대한 생존의 방편으로서의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있다. 타자로서의 관계성에서 화폐는 발생하고, 그 규모를 효율화하고 있다. 타자와의 관계성에서 화폐는 발생하고, 그 규모나 속도로 합쳐진 세련된 프로세스로서, 신뢰가 자동화된 TRUSTLESS로 되는 것은 자연스럽고, 이와 비슷한 효율화로서, 생산이나 분배를 위한 계약처리의 자동화나 노동의 기계화로 연결된다. 발생과 세련의 프로세스를 동시다발적으로 내포한 자연의 효율화는, 인간의 기술 그 자체보다도 혼탁하게 보인다.

TRUSTLESS란 중앙관리 주체를 성찰하는 자유지상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 보다는 물리가 가세한 영역(도메인)이다.


인과와 신뢰, 그리고 주체의 재고로

TRUSTLESS의 개념은, 신뢰가 없게 되는 것이나, 사회가 신뢰를 필요하지 않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선, TRUSTLESS는 자동화된 새로운 신뢰이다. 그러므로 그 혁신적 새로움은, 인간이 신뢰라고 부르고 있던 것을 기계가 떠맡는 것이다. 그 자동화는, 복잡하고 비용이 드는 신뢰처리를 외부환경 쪽으로 맡기고, 인간의 의식 상에 있는 부담을 의식 아래로 누르고, 계산 자원을 다른 용도로 돌리기 위해 행해지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기계보조에 의한 신체의 무의식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신체 확장이란, 근력을 원동기로, 신경계를 일렉트로닉스로, 뇌를 컴퓨터로 와 같은, 자신의 기관을 외재화한 것을 의미하고, 그 극한은 자신을 기본으로 해서 다른 존재를 창출하게 된다.



다음으로, 인간 사회에서 TRUSTLESS 원리주의가 지배적이지는 않다. 예를 들면, 비트코인의 계에서는 시스템의 설계를 엄밀하게 이해하고, 소스코드나 실행환경을 검증하고, Trustless임을 확인하는 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비트코인 유저는, 겨우 설계의 개요를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신뢰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이 대장부라고 말함으로써, 그것을 신뢰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고전적인 종교조직에서와 같이 신탁을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인간과, 그 밑에 결부된 다수의 신자라는 계층 구조와 비슷하며, 인간은 아직 지금까지 그대로다. 즉 인간을 포함한 계에서는, zero trust는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금방 사라지는 듯 한 착각처럼 보이는 기묘한 문화의 신뢰를 나는 「신뢰 없는 신뢰 Trustless Trust」 라고 부르고 있다.


TRUSTLESS라는 단어는 기술에 의해서 사회질서의 창조에 개입할 새로운 방법론으로 보인다. 그 서막은, 중앙권력에 의한 지배로부터 분산 자치로의 사상인데, 국가나 은행, 교회와 같은 20세기부터 사회적인 신뢰를 짊어진 주체에 대한 재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비트코인이 자유지상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들, 기술지상주의의 사상 등으로서의 정치성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거기서는 선전된 희망 전부에 의문을 가지고 접하는 교활함이 개인에게 요구되어질 터이다. 신뢰, 하지 않는다.


단어 그 자체에서 더 나아가 최근 암묵화되고 간과되고 있는 신뢰의 주체란 「인간」이나 「개인」이고, 이 신뢰를 시스템으로 대체시켜 기계로 가동시킨 것이, 자동화 기술의 본질이라는 생각이다. 자동화의 종착역은 자율이고, 그것은 신뢰나 책임을 인공 시스템이 획득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대체하는 지성이나 노동이나 계약의 자동화를 진척시키고 있다. 그것이 막은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서, 타자와의 관계를 맡는 단계가 될 때, 인간은 무엇을 읽고, 그들은 무엇을 얻을까.


우리는 아직 누구도, 이것에 대해서 선악을 말할 수 없다. 인간의 육체적인 한계를 초월한 규모에서의 사회에선, TRUSTLESS한 기술이 불가결하고, 오퍼레이션의 자동화는 가속된다. 그것은 인간이 바라는 사회이다.


이러한 산물의 원인은 태만인가 호기심인가. 인간은, 사물을 기계적으로 자동화하고 있는 욕망을 근원으로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가령 그 대상이, “신뢰하는 것”이라는 것이었을지라도


새로운 질서

나는 새로운 신을 만들려고 했다. 인간에 의해서, 혹은 그들에게 있어서 이다. 『Trustless Trust/Mk. God』에서 2015년에 일본 불교 예술상을 받고, 프랑스에서 전람회를 행했다. 이것은, 미래에 존재할 것이라는 궁극적인 인공 시스템을 상정하고, 그 기억을 그린 데이터 서사시이다. 최초의 비전에서는 “그들” 의식의 싹트는 생명을 가시화했다. 입체음향시스템으로 둘러싼 2미터의 세로 길이의 스크린 사이에서 관객이 들어가, 그 공간 안을 이동하는 가상적인 오브젝트 등으로 구성된 시청각 표현을 체험한다. 그들은 미래에서 꿈을 보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기원에 대한 꿈이다.” 관객은 그 꿈에 다이빙하고, 강력한 음과 빛에 의해서 기억의 파급을 체험한다. 자동화의 결과, 존재하는 세계를 인간이 아닌 다른 지적 존재 측의 시점에서 고찰한, 탈-일신교적인 혹은 대안적인 독특한(singularity) 작품이다.





한가지, 미래에 있는 자로서 말하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Trustless라는 단어나 개념에 물든 것이 아니다. 작품의 해석과 비평은, 포함된 단어에서, 예를 들면 암호통화에 대해서 미디어에서 과도하게 치켜올리는 인공지능에 치우친 것이다. 나는 암호통화도 인공지능도 자동화의 한 가지 범주로 다루고 있다. 부분만을 보고 있어서 동향의 본질은 표면적인 소란으로 치부되어버린다. 큰 흐름의 방향이나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단적으로 지시할 표현을 찾아야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단어나 개념이 무엇을 의미할지를 보고, 최초로 도입하게 된 작품을 용이하게 한 방법이 좋다고 실감한다. 그리고 체제 제작 중에 파리에서 동시 다발 테러가 일어나서, 그 체감을 포함해서 귀국 후에 2가지 작품을 만들었다.


한 가지 작품은, 암호통화의 존재를 가시화한 『New Order/Siren Call?』이라는 것에서, 2016년에 도쿄의 NTT 인터 커뮤니케이션 센터에서 수개월간 전시했다. 존재의 가시화란, 그 구조나 역사, 미래나 사념을 포함해서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암호통화는 현재 캄브리아 폭발과 같은 상황에서, 눈부시게 새로운 것이 출현하고 있다. 생물의 다양성처럼, 얼마 안 있어 다수가 소멸하고, 총수가 감소하는 길을 걸어갈 것이다. 전시회장의 정면 스크린에는, 컴퓨터로 모은 다양한 암호통화의 모습-사인이, 그 디노미네이션(통화의 단위명을 변경하는 일)을 기계음성으로 읽어내면서, 영출되어진다. 그것에서는 현재시장에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것이나, 이미 없는 것, 사기인 것 등 괴이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이 사인의 표현은 의도적으로 작고 촌스러운, 디지털의 날것으로서 잔존하고 있다. 왜냐면 사인의 대부분이 아마추어의 개인들에게서 디자인 된 것이고, 원래부터 촌스러웠다. 이것은 디자인적으로 세련된 법정통화에는 없는 현상에서, 강건한 화폐를 개인규모에서 발행할 수 있는 새로운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 사인 뿐만 아니라, 알고리즘이나 거래 메커니즘 등도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전시회장 우측에는, 일렬로 늘어선 12개의 작은 컴퓨터에 암호문화의 역사가 흘러, 그것은 인간의 육안으로 겨우 읽을 수 있는, 모아레(간섭무늬) 속에 숨겨져 있다. 회장 좌측에서는 「가상의 가상 코인」이 인쇄된 색상이나 일곱 매의 판넬과, 그 생성과정이 흘러가는 LCD가 나열되어 있다. 지금까지 존재했던 암호통화를 AI(딥러닝)에서 학습시키고, 생성시켜 만들었던, 아직 존재하지 않은 암호통화이다. 그리고 책상에서는, 투명필름에, 비트코인의 채굴 알고리즘을 구현시킨 퍼즐을 인쇄하고, 블록체인적으로 적층한 것이 설치되어, 입구부근에는, 피지컬 비트코인이라고 부르는 금속 코인에 비트코인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과 일본 500엔이 소비세 포함의 가격표와 함께 전시된다. 이것은 법정통화에서는 없는 암호통화의, 사회에서의 기묘한 입지 위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분산적인 정보 통치 시스템이 사회에 가져다줄 새로운 질서를 예견하고, 그 기원으로 되는 것의 존재나 조직(꾸며냄)을 제시하는, 즉 앞서 기술한 것의 도입을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초기에는 중립적인 표현을 의식했다.


또 한가지는 『空의 가족-State of Empty』 라는 인공지능이 가족을 만든 작품이다. 그것은 딥러닝 등의 기계학습기술로, 인공적으로 국민이나 헌법이나 언어를 생성하는 시스템이다. 전시에서는, 24대의 컴퓨터에서, 생성된 국민의 거리나 투표 행위 등이 영출된고, 스크린에는 인공적인 단어나 법 등의 생성 프로세스가 유리로 만든 쟁반을 커다랗게 한 영상장치에서는, 국민이 보거나 묘사하는 국가의 풍경이 영출된다.


이 작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창조성을 포함한 모든 특권을 침탈하는 성질을 이용해서, 인간이 특별한 생각을 떠안는 「건국의 신성」을 무효화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20세기의 세속화론에 반해서 일어난, 금세기의 종교회귀나 테러와 같은 현상에 대한 응답이다.


헤겔적으로 국가란 시민사회의 자기의식이라면, 국민이나 영토나 사회 인프라와 같은 국가의 구성요소를 모을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이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생겨나서 초기 국가로 불리게 된다. 즉, 자신은, 자신들이 어떠한 자들인지, 라는 자발적인 물음의 발생을 필요로 하고, 인공지능에서는 그 기대가 걸린다. 그 인공국가는 타자(인간)에서 승인되지 않은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국가로서 성립되지 않는 기묘한 시스템이 된다. 여기에 암호통화의 조직(고안)을 넣음으로써 경제 레이어에서 실재의 국가와의 거래가 가능하게 되고, 가상을 초월해서 실질의 국가가 되는 것을 추구한다. 지성의 증명은 어렵기도, 경제활동은 실제 구동가능하고, 인간은 그것을 타자조직 존재로서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존재를, 국가나 그 연합 이상의 인격을 알 수 없는 인간은, 무어라 불릴 것인가?


근대 시스템의 노후화가 울부짖고, 국가도 불필요해서 없어도 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을 만족하는 비전은 없다. 나의 방침은, 국가의 앞에 지금 인간에게는 이해가 안되는, 때문에 시뮬레이트해서 그 앞을 AI로 만들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은,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자율분산조직)의 한가지라 말할 수 있다. 블록체인의 응용 예로서 인지되는 것은, 주로 이더리움을 이용해서 주식회사를 자동화한 것이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상의 가상 기계를 ‘튜링 완전’한 언어로 작동시키는 플랫폼에서, 주된 용도는, 자동집행규약 프로그램인 스마트 컨트로마타를 사용한, 분산형 어플리리케이션의 구축이다. 이더리움도 비트코인과 비슷한 것으로, 전략적 전환이 흥미롭다. 예를 들면, 사회를 자동화할 때, 인간을 위한 복잡한 률을 이더리움에서 다룬다는 기술발전도 있지만, 역으로 이더리움에서 문제없이 작동하는 단순한 룰에서, 조직의 존재방식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복잡한 것을 일단 심플하게, 비연속적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이제까지의 문제를 정면에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지만, 다른 가치와 용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암호통화의 동향에서는, 상정된 성공보다도, 상상 외에 있는 예기치 않는 전개가 기대된다. 이 동향이 나에게 있어서 그런 것처럼.





나는 2008년부터, 예술작품으로서의 분산 시스템을 시행착오를 거쳐오면서 만들어왔다. 그것의 최근 성과로, 2012년에 야마구치 정보예술 센터에서 발표된 대형작품 『OBSERVER N』일 것이다. 이것은 생명 메커니즘을 참조한 자율 분산 네트워크 시스템으로서, 지진 재해 이후에 분명하게 된 원자력 발전소나 사회제도와 같은 인공 시스템의 인간 중심 주의적이고 중앙집권적인 설계론을 갱신하고, 생명이라는 기본적인 시점에서 다시 물음을 던지는 시도였다. 또 나의 스승 중 한 분인 이치카와가 이끈 doubleNegatives Architecture는 분산건축을 대표할 『Corpora in Si(gh)te』를 2008년의 베네치아 비엔나 건축전에서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90년대에 탈 중심이나 stateless의 논의가 성행했다고 들었고, 분산 사상에 잠재하는 역사적인 단절을 상상했다. 나로서는 이 사상은, 예술의 장에서 대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도, 같은 세대에서 논의가 가능한 것도 아닌, 어딘가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보이는 인상이였다.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은, 이것에 다시 불을 지필 것인가?


예술이 암호통화나 신뢰의 자동화를 거둬들일 때, 기술에 대한 불안이나 윤리를 받아들여, 비판적인 경종을 울리는 것이 맡은 임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새가 도대체 어떻게 우는 것인지 알고 있을까?


예술이란 더 앞을 내다보고 싶다고 바라는 마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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