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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3)-『도덕의 계보』에 있어서 니체의 적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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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8-01 13:07 조회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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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와 계보학 (3) 

 

 

 

 

  _Christopher Janaway?

 

이와 더불어 나는 니체가 몇몇 지점에서 주장한 '힘에의 의지'가 결과와의 연속성과 갖는 관계에 대해 의문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 의문을 본 논문에서 언급은 하겠지만 지면이 부족한 관계로 본격적 추적은 하지 않겠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인간을 자연으로 되돌려 번역하라고 권하는데, 이 때의 자연이란 이 책의 다른 곳에 자주 언급되는 내용을 통해 '힘에의 의지'임을 알 수 있다. (앞의 책 13, 22, 23, 36, 186, 259 참조) 우리도 다른 유기체적 자연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힘에의 의지'를 현시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우리의 진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거짓 낙서를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니체가 '힘에의 의지'를 과학의 주도적 패러다임에 대한 대항물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패러다임을 "특권적이고 자주적인 모든 존재에 대한 천민의 적의"(『선악의 저편』 22)라고 지적한다. 또한 그것은 "지배하고, 지배하려는 모든 것에 반대하는 민주주의적인 특이체질"이자 "생리학과 생물학 전체를 지배하는 것, (중략) 진정한 능동성이라는 근본 개념을 마술로 없어지게 함으로써 해를 끼치"(『도덕의 계보』 II 12)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유기체가 환경에 수동적으로 적응한다는 이러한 주도적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을 보여준다. 그는 유기체적 세계는 모두 즉흥성, 능동적 도용, 해석 그리고 형식과 의미의 부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의 구절 앞부분에서 그는 유기체적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하나에 의한 다른 것의 해석임을 명백하게 시사한다. ("유기체적 세계에서 일어난 모든 생기geschen는 하나의 제압이자 지배이며" "모든 제압과 지배는 (중략) 새로운 해석이자 정돈이다" 『도덕의 계보』 II 12)

 

일별하면 니체는 자신의 과학적 생물학을 내세우면서 결과와의 연속성을 거부한다. 단, 완벽한 과학적 연구가 주도적 과학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면, 이 거부를 철회하리라 예상된다. 그가 기대하는 결론은 제압과 해석이 맺고 있는 관계가 생물학적 과정에게 최고 모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결론이 나오게 될 경우 최근의 과학은 니체를 통해 결과와의 연속성을 제시되지 않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더 깊이 진행하려면 이미 많이 논의되고 있는 '힘에의 의지'에 대해 내가 여기에서 할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는 대신, 나는 니체의 방법에 관해 다른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더 깊은 질문으로 옮겨가겠다. 그 방법들은 여러 면에서 실증적인 과학적 연구와 확실히 단절되어 있다. 니체 책의 어느 부분을 보아도 그것은 과학 문헌과 극명히 다르다. 그는 보통의 체계적인 증거 수집을 거의 하지 않고, 자신이 설명하는 현상에 정확한 시공간을 제시하지 않고, 명확한 직선적 논거나 확실한 결론도 설명하지 않으며, 심지어 결과의 반복성에 무심해 보인다. 대신 그는 문학적이고 개인적이고 정동적으로 관계 맺는 연구 스타일을 선호한다. 니체의 이런 방식은 주도적 과학에 고의적으로 대립하는 것으로 이는 그가 그러한 과학을 객관적이고 비개인적이고 정동적으로 무심한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니체는 몇몇 논평에서 정동적으로 관계 맺는 것의 실패와 가치 근원에 대한 한 사람의 탐구를 개인화 하는 것의 실패는 결국 진실을 밝혀내는 것의 실패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는 그가 자신의 과학과 방법론적인 연속성을 주장할 수 있었더라면 기꺼이 이 거부를 철회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의 근거는 니체가 자신의 연구 방법과 예전에 막역했던 친구이자 훗날 도덕의 계보학자가 되는 파울 레(Paul R?e)의 연구 방법을 비교하는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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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덕의 계보』에 있어서 니체의 적대자들


『도덕 감정의 기원』(1877)에서 파울 레는 우리가 이기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나쁨"으로, 비이기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좋음"으로 판단하는 관습에 대해 설명한다. 『도덕의 계보』 서문에서 우리는 니체가 파울 레를 적수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이 저서를 레가 쓴 책의 구성과 비교하였을 때, 그것이 자신의 옛 친구에 대한 일종의 반격으로 (다른 목적도 있지만) 계획되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레의 책 첫 두 챕터의 제목은 니체의 책과 현저하게 비슷하다. "선과 악의 개념의 기원" 그리고 "양심의 기원". 그 다음 두 챕터는 니체 사유의 다른 주요한 쟁점과 연관되어 있다 : 자유 의지(혹은 그것의 부재), 책임감(혹은 그것의 부재), 형벌, 제지와 응징. 

 

레는 다윈과 공리주의 사상에 영향 받은 꾸밈없는 자연주의적 묘사를 제시하고, 우리의 믿음 및 다양한 사고방식들을 설명하기 위해 연상이나 습관적 훈련 등과 같은 정신적 절차를 사용한다. 니체는 이것을 "영국 심리학"이라 부르고 우리는 『도덕의 계보』에서 그가 "영국 심리학자"와 "영국 계보학자"라고 부르는 대상이 사실상 레 라고 말할 수 있다.

 

레가 해석하는 도덕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요는 다음과 같다. "좋음"과 "나쁨"은 인정과 비난의 용어인데 이는 인간에게 한 대상의 공리성과 비례하여 엄밀히 사용되어야 한다 : 어떤 것도 그 자체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나쁨"을 이기적인 행동과 "좋음"을 비이기적인 행동과 결부시킨다. 이러한 연관은 반복된 훈련에 의해 배우게 되고 먼 옛날 인류 공동체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순한 공리인 이 가치용어의 진정한 기원을 숨긴다. 자연선택은 이기주의에 반대하는 풍습을 갖고 조화롭게 사는 인간무리를 선호했다. 양심이나 죄책감도 이기적인 행위를 반대하는 사고방식의 습관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사례이다. 형벌의 주요 가치는 미래의 이기적 행동을 단념하도록 하고 맹렬히 이기적인 한 개인의 "야생 동물"을 억제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습관적 감정의 기원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형벌을 지난 행동에 대한 응당한 징벌이나 상환이라 여기고 나중에는 징벌이 형벌의 본질 또는 목적이라고 믿는다. 이는 공리에 있어 도덕적 감정의 기원을 망각하게 하는 훈련과 함께 행위자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책임을 지우는 믿음 - 이러한 책임 또한 거짓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개만큼이나 자유 의지가 없다 - 에 기초한 오류 또는 오해이다. 

 

『도덕의 계보』 서문에서 니체는 자신의 적수로 단 두 사람만을 지명한다 : 레와 쇼펜하우어. 그 둘은 각각 다른 시기에 니체 초기 사상에 영감을 주었으나 이제 그들은 그가 기꺼이 의절한 과거로써 소환된다. 레와 쇼펜하우어는 그가 "거의 홀로 대결해야"하고 "결론 하나하나를 마음속으로 부정"(『도덕의 계보』 서문 4,5)했던 대상으로 상징된다. 이 두 인물 모두 기독교의 형이상학을 거부하며 도덕적인 것이 더 큰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이나 인간에게 진정한 도덕적 진보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더불어 그들은 인간 개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자유 의지나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다. 

 

쇼펜하우어는 기독교의 형이상학과 그것에 내재된 낙관론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연민, 책무, 영원한 정의에 관한 자신의 해석을 옹호하기 위해 의지의 초월적 형이상학을 유지한다. 레는 이보다 더 나아가 쇼펜하우어의 초월적 설명을 모두 거부하고 세심한 경험적 자연주의를 지지한다. 레의 강령은 니체의 것을 연상시킨다. "오늘날 라마르크와 다윈이 글을 썼기에, 도덕적 현상은 물리적 현상만큼 자연적 원인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 도덕적 인간은 물리적 인간보다 이해할 수 있는 세계에 더 가까이 있지 않다."(레 2003: 87) 훗날 계보학자가 되는 레는 쇼펜하우어의 인간 동력에 관한 신중한 비역사적 묘사를 우리의 도덕 감정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해석으로 대체하게 된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무슨 근거로 니체는 레의 방법과 결과에 반대하는가? 그것은 레와 쇼펜하우어가 공유하는 가설 : 무사무욕, 또는 레가 "비이기적인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이 도덕의 구성요소라는 것이다. 니체의 적수들은 비이기적인 것을 "가치 자체"(『도덕의 계보』 서문, 4,5)로 평가하는 것에 동의하며 그렇기에 그것이 더 만연해 있는 문제들을 대표한다고 본다. "현대 유럽에서 '도덕적', '비이기적', '사욕 없는'이라는 것을 같은 가치의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선입견이 이미 '고정관념'이나 정신병과 같은 세력으로 지배하고 있다." (『도덕의 계보』 I 2)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와 레는 무사무욕에 긍정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니체에게는 바로 이 가치가 논박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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