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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학 리포트 ┃#5 신뢰 없는 신뢰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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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7-19 18:20 조회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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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에도 역시 블록체인과 비트코인과 관련한 현대사상의 글 하나를 번역해봤습니다.

블록체인과 비트코인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사상적 의의,

그리고 이것이 암호학과 어떻게 관련이 되있는지 등등..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음달까지 이어집니다^^







「신뢰 없는 신뢰」의 공식(식론)

고 유오즈미


21세기 초반부터 사람들 간에 유지되고 운용되어 온 신뢰나 신용을 기술적인 알고리즘으로 변환해 고안하려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TRUSTLESS」. 인간 문명은 화폐에 한정되지 않고 법이나 계약, 지능이나 노동에 이와 같은 기계적 자동화를 진행해왔고, 그러한 기술동향의 본질을 꿰뚫는 하나의 축으로서, 나는 그 개념을 제시했다.


신뢰란, 사랑이나 마음과 같이, 불가해하고 복잡한 자연의 성질이다. 그것을 기계화하고 자동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왜 그런 시도가 화폐에 관한 신뢰에서 최초로 실행되었던 것일까. 나는 2015년과 16년에 국내외에서 세 작품을 발표했다.


TRUSTLESS는 비트코인의 전파를 담당하는 상징이고, 분산 합의 형성과 관련된 엄밀성을 빠트린 신화가 그 찬란함에 기여하고 있다. 비트코인과 관련된 암호통화의 약진은 필멸의 발뒤꿈치를 남긴 아킬레우스의 운명을 넘어설 것인가.


앞선 세기에 통일의 꿈이 패배의 잿더미 속에 춤추고, 중심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의식이 희미해진 것은 정의와 사랑의 분열 때문이다. 그 긍정으로서 분산사상에 기대가 걸려 있는 것이라면, 그 지반을 살펴보자. 자아가 서있는 곳은 얇은 유리판, 그 아래에서 혹성의 구름이 넓게 흐르고 있다. 이야기인가? 결과적으로 그 일인칭은,


나는 예술로 사는 하나의 카나리아. 일은 지저귀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한 말을 반복해 나간다. 「TRUSTLESS, TRUSTLESS」






TRUSTLESS ? 그 원리와 역사

“In God We Trust” - 미국의 지폐나 동전에 적혀 있는 표어이다. 신용을 만든 것은 화폐를 교환하는 당사자들이 아니고 신이다.


내가 당신으로부터 빵을 살 때, 당신이 신뢰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건네받은 지폐가 내일에도 내일 모레에도 동등한 가치로 사용될 거라는 점이다. 그 종이조각을 가지고 먹을 것과 교환할 수 있는 이유는 모두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가졌지만 와인을 원하는 내가, 역으로 와인을 가지고 물고기를 원하는 자를 찾아서 필요한 타이밍에 (와인을) 얻게 되는 이중의 욕망의 일치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사람들은 물물교환을 주로 하지 않았으며, 문명의 초기 단계부터 화폐를 만들어왔다고 여겨진다.


화폐는 종교와 동일하지 않지만, 효율성을 좋아하는 우주가 사회의 형태형성과 결합의 설계(디자인)로서 선택한 자기조직화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인간 진화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해보면, 대개 화폐의 발생이 만들어진다.


화폐는, 우리가 공통의 것을 믿고 있다는 전제에서 성립되며, 그 전제의 대체물이 화페이다.



비트코인이란

엔화나 달러와 같은 화폐의 경우, 그 신뢰를 보장해주는 것은, 발행주체나 관리주체인 제 3자, 즉 은행이나 국가이다. 위조되거나 임의로 증쇄되어 가치가 급락할 화폐라면, 누구도 사용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그 주체는 (화폐에 대한) 신뢰를 담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국민적 합의가 이상한 금융정책을 지지하거나, 자금을 전쟁에 이용하거나, 정치적 의도에서 특정 기업을 구제하거나, 역으로 경제활동을 검열하고 차단하고, 예금의 봉쇄가 가능하게 된다면, 이에 연계된 정부를 비롯한 화폐 관리 주체는 강력한 권력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는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게 된다.





비트코인은, 그 신뢰해야할 제 3자가 없이 성립되는 화폐를 목적으로 하고 있고, 암호통화의 문맥에서 자주 사용되는 Trustless라는 말은, 그 말을 본래 뜻으로 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발명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는, 그 설계서에서 「신뢰 없는 암호학적인 증명에 기반한 전자 거래시스템」 이 필요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공개 열쇄 암호를 응용한 디지털 서명으로 거래 기록을 수정하여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며, 이중으로 결재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정합성이 확인된 거래장부를 블록으로 쌓아서 시간계열로 연결한다. 블록의 말미에 계산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증명(Proof of Work이라 부른다)된 것을 승인하고, 증명작업을 행한 노동자, 즉 채굴자(miner)에 보상을 부여함으로써 시스템으로의 참가를 유도하는 인센티브 설계이다. 블록이 추가될 경우 이력이 견고한 연결기구의 모양을 이루데 되며, 이를 블록체인이라고 부르고, 이 프로세스를 소수의 특권적인 서버가 아닌 P2P 네트워크에 분산적으로 처리한다. 비트코인은, 암호와 분산 네트워크의 다양한 기술의 조합에 의해, 당사자 간의 직접적인 전자 거래를 실현한 시스템이다.


여기에 문제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신뢰해야할 제 3자에 대한 의존이 시스템의 방해물로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완전하다해도 완전한 관리자는 가능하지 않고, 공격하면 시스템이 파괴될, 즉 거래(기록)가 변경될 위험성이 있다면, 이는 최대한 풀어야할 문제이다. 즉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고도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고, 비트코인은 그것을 실제로 구동시키려고 한 최초의 프로토타입으로, 공격될 여지를 0%로 만들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직 실현 되지 못한 본질적인 Trustless의 기구를 사이토 켄지(?藤賢爾)는 「공중 약속 고정장치空中 約束 固定裝置」라고 부른다.


이렇게 관리자가 부재한다는 점에서 블록체인은 자유지상주의나 아나키즘, 분권사상과 관련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중앙관리주체를 가지지 않은 분산 시스템」, 「정부의 컨트롤 하에 있지 않는 자립된 화폐」라고 선전되어, 암시장 ‘실크로드’, 위키리크스로의 기부, 키플러스 금융위기, Mt.Gox 파탄, 이더리움 출현이나 ICO스타트업 거품, 대기업은행이나 중국 자금 대이동 등, 다양한 사상과 함께 시대의 물결을 타고 있다.





이 물결은 여러 혼탁한 사상이 뒤섞여 있으며, 교의도 통합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비트코인의 생존을 위해서 모두가 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의 위약함을 커버하고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강건함이다. 이를 위해서 커뮤니티 공통의 이념을 미국 화폐를 모방해 “In Proof We Trust”라고 표현하려한다. 상징적인 예로서, 2015년에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한 크레이그 S. 라이토 사건을 들 수 있다.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중요 인물이 그가 진짜라고 발언함에 따라 그는 자신이 사토시라고 다른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있었다. 과거 본인의 발언 등 여러 가지 자료가 수집되어 인격을 재현해보이고, 다른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사기로 충분히 가능하고, 역으로 수사관이 그것을 행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진위를 비판하는 것은 단순히 사토시 본인이 보유한 코인을 실제로 움직여 보여주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공개 열쇠에 대응하는 비밀 열쇠로 작동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본인이라면 사토시의 코인을 이전할 수 있을 터이고, 가능하지 않다면 그가 사토시 본인이 아닐 것이다. 즉, 커뮤니티가 믿는 것은 사람보다는 증명이었다.


여기서의 증명이란 말도 다의적이지만, 원리는 “수학”이다. 인간이 논리적인 증명의 추구로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최고로 객관적인 검증이다. 그 검증성과 관련해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실적(實績)”과 유사한, 코드를 써서 실장(實裝, 실제로 장착해서 시험해보는 것)하는 것이다.



암호문화와 화폐

비트코인의 탄생의 배경에는, 암호문화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사이퍼 펑크(chiper punk)이고, 비트코인은 그 흐름을 이어받은 The Cryptography Mailing List로의 설계서 투고로부터 시작되었다. 2008년이다.




사이퍼 펑크는, 사회적 정치적 혁명에 도달할 수단으로서, 암호 등의 사용을 선도한다. 1990년대 초기에 설립된 이 운동은, 1990년대의 「암호전쟁」과 2011년의 인터넷의 봄春 이후에 가장 활성화되었다.


암호기술은 1970년부터 군사기밀이었고, 정보화 사회에서 발휘된 일종의 무력이다. 강한 권력인 국가나 기업에 의한 침해를 막고, 그 힘을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힘이 독점된 디스토피아의 상징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한 ‘빅 브라더’일 것이다. 정보가 장악된다면, 국민들은 완전히 감시되고 지배될 것이다. 그것을 막고, 사상이나 행동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암호기술은,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보호막이다. 때문에 이렇게 게재된다. 「강자에게는 익명성을, 약자에게는 프라이버시를!」





과격한 무정부주의자들이 주창한 것도 있지만, 이용가능한 암호나 관련기술이 국가예산에 의해 연구나 교육제도에 실현된 성과도 있기 때문에, 이 운동은 ‘힘의 재분배’라고 부를 수 있는 운동일 것이다.


이와 같이 자유 사회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사이퍼 펑크에서는 화폐의 중요성을 토대로한 활동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1985년의 데이빗 차움의 논문 “security without identification : Transaction Systems to Make Big Brother Obsolete”으로 시작돼서, 에릭 휴즈에 의한 1993년의 사이퍼 펑크 선언에서는 「열린 사회에서의 프라이버시에는 익명의 거래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DigiCash나 Bit gold, b-money등, 몇 가지 암호통화가 만들어졌지만, 앞선 언급한 신뢰해야할 제 3자의 문제 때문에 실패했다. 비트코인은 실제로 이 문제를 최초로 해결한 경우다.


사토시의 정체는 불분명하지만, 정치사상이나 경제학적으로 소박하게 악의가 없는 인상을 가진, 계산기 과학의, 분산 시스템보다도 암호학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단순하게는 강하게, 혁명적으로는 사려 깊음을 결여한 일종의 야만의 세력이 필요하다. 비트코인의 여명기인 사토시와 폴 휘니의 기술 구축의 관계로부터는 사상의 확립이나 과격함보다는 지적인 호기심이 작동케한 창작과 새로운 시스템의 발명이라는 기술 혁신에 대한 기대가 엿보인다. 그 후, 마르티 마루미에 의한 정치사상적인 프로파간다의 후원(백업)등이 더해지고, 이윽고 자유지상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 기술-지상주의자 등이 내거는 새로운 기치가 되었다. 모두 제각각 생각과 의혹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트코인은, 타자를 강하게 이끌기 보다는, 타자에게 맡겨버림으로 성립될 수 있었던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암호 문화는 이처럼 정치색이 강할 뿐만이 아니라, 순전한 암호학이나 일반기업의 정보 보안 등의 다양한 것으로 구성되었다. 단, 거기서는 공통적으로 세계는 착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공격자나 고장 등의 발생을 전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그 이상으로 한다. 암호문화는, 모두를 의심해서 성립하는 것을 지향한다. 의문을 논리적으로 굴복시키고, 공학적으로 위약함을 해소시켜가는 역학이 근저에 있다. TRUSTLESS는 끊이지 않음과 이어받음의 문화적인 사고로의 귀결이다.


그러면서 암호문화의 전투는 대국적으로 강대한 권력에 패배하고 있다는 것이 2013년의 에드워드 사이드의 고발로 명확해졌다. Google, Microsoft, Facebook, Yahoo!, Apple, Skype 등이 협력한 PRISM 계획을 시작으로 NSA에 의해서 세계의 광범위한 곳이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졌다. 비트코인이 그러한 역사 속에서, 중앙 권력을 향한 대항책이 블록체인이라는 익명성의 공개장부였다는 점은, 그리고 그것이 전략적 전환으로 해석되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과장해서 말하면, 비트코인은 모두를 보는 자에 대한 저항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오리지널한 블록체인은 글로벌한 장부이고, 거래이력은 전부 공개되기 때문에 추적성이 높고, 또 많은 경우에는 현금보다 익명성이 낮기 때문에 범죄 이용에 적합하지 않다. 이것이 만약 지역 통화형의 완전한 분산대장이나 익명성보다도 은닉성을 완비한 기구에서 출발한다면,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을 연루시킬 아이콘적인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 그것의 신빙성이 물어져야 함에도 비트코인은 그 기술의 과장을 통해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분산시스템의 난제 등을 해결하지 않고, 유사해결로서 극복함으로써 제작자의 상정을 넘어선 가치나 용도가 발견되어왔던 예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실장(실제로 작동시켜보는 것)하는 것을 평가하는 문화의 산물이다. 시스템이란, 만들어서, 작동시켜 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암호문화의 역사적 배경을 끼워넣어 비트코인을 암호통화라고 부르고 있다. 단, 비트코인은 암호기술과 문화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거래 그 자체의 암호화가 아니다. 그 때문에 Crypto의 숨기다라는 뜻에 적합하지 않는 「암호통화」보다는, 「디지털 통화」가 정확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설탕물과 정제수 어느 쪽을 선택해야할까의 문제처럼 학술적인 경우나 뉴스 미디어등 에서는, 후자(디지털 통화)를 사용해야할 것이다.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는 것은 코카 콜라이다. 거래의 익명성이 불완전하다는 점은, 원래의 블록체인의 이점이고 문제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거래를 교란하는 서비스나, Zcash나 Monero, Dash 등 익명성이나 비밀성의 향상을 꾀하고자하는 Altcoin(이 경우는 파생 블록체인에 의한 비트코인의 아종)이 주목되며, 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암호통화라는 이름은 그것들에 적용된 것으로서 적절히 사용될지도 모르고 혹은 장래에는 비트 코인에 그 성과가 기입되어 문자 그대로 암호통화가 될지도 모른다.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함께 범죄이용의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술을 “감추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대로 암호의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노든 쇼크 때 오바마 대통령이 발언한 것처럼 「100퍼센트의 안전과 100퍼센트의 프라이버시 존중은 양립될 수 없다」 그때에 우리는 무엇을 중시하고,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할까, 혹은 어느 쪽으로 극한까지 추구해야할까. 당신은 무엇을 신뢰하는가.


의심 많게, 증명을 구하고, 배반자가 있어도 움직이는 것이 옳다. TRUSTLESS는, 정보환경 속에서 생존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정신이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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