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말과 글

자연주의와 계보학(2)-방법론적 자연주의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8-06-23 11:15 조회103회 댓글0건

본문

자연주의와 계보학 (2)


1. 방법론적 자연주의

  라이터의 주장을 한번 살펴보자. 『선악의 저편』 230에서 니체는 "인간이 자연으로 되돌려 번역"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터에 의하면 이 말이 뜻하는 바는, “인간은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니체의 요청”(2002 : 7)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조금 지나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니체는 우리에게 인간 외의 자연에 대해 과학으로 단련되어 있으라고 명시하고, 또한 인간인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그러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너는 그 이상의 것이다! 너는 더 높은 존재다! 너는 다른 혈통을 지녔다!”(『선악의 저편』 230)라고 말하는 “낡은 형이상학적 새잡이의 유혹의 방식”에 눈을 감고 귀를 막으라고 한다. 이러한 니체의 요청은 우리가 인간성의 어떤 부분을 설명할 때, 경험의 장을 배제한 형이상학적 영역을 거부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 말은 과학을 하라는 요청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훈련되라는 요청이다. 이와 비슷한 비유는 『즐거운 학문』 319에서 볼 수 있다. “우리들은(중략) 우리의 체험을 과학 실험에서처럼 매시간, 매일 엄밀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즐거운 학문』 335에는 우리가 어떤 평가를 내릴 때 특정한 방법을 통한 연구를 하도록 촉구한다.


“이것은 옳다”는 네 판단은 네 충동, 호감과 반감, 경험과 비-경험 안에 그 전력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그것이 일어났는가?”라고 너는 물어야 한다. 또 그다음에는 “무엇이 그것에 귀를 기울이도록 나를 충동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즐거운 학문』 335

  니체는 이처럼 자기를 성찰하는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더 섬세하게 사유”하고 “더 잘 관찰”하고, “더 많이 배”우고 마지막으로 “세계의 모든 법칙과 필연성을 배우고 발견하는 일에 최고의 역량을 쏟아야 한다 : 창조자라는 의미에서의 물리학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니체가 자아 발견이라는 필수불가결한 작업을 위해 우리가 직접 물리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자아연구의 훈련과 깊이가 과학적 접근법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유익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주의에 관한 라이터의 다른 글들을 보면 그에게는 니체의 방법이 문자 그대로의 ‘과학적’이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법론적 자연주의자들이 행하는 철학적 탐구는 다음 둘 중의 하나로 진행된다. (a) 각 영역의 최고 과학에서 나온 실제적 결과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또는 정당화하기. (b) 과학이 사물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서 이룬 성과적이고 특유한 방식을 적용 또는 모방하기. 라이터는 이들을 각각 “결과와의 연속성”과 “방법과의 연속성”이라고 부른다. (2002 : 4-5) 그러나 라이터는 니체가 방법과의 연속성만으로 철학적 자연주의의 필요요건을 만족시키려 했다면, 그가 특정 과학적 방법을 - 예를 들어 이론을 시험하는 과학적 방법 - 적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니체가 세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과학적 방법을 모방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그것의 인과론적 결정요인을 설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2002 : 5, 8)

  그렇기에 라이터는 현상의 원인을 찾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방법과의 연속성에 전념하는 사람을 자연주의자라 부르는 것은 과학과의 연속성을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만든다고 본다. 그는 그러한 방식에 기초한 연속성이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우려한다. 크리스트교, 악마숭배, 점성술과 같은 신념체계 모두 원인을 찾음으로써 다양한 현상 설명을 시도한다는 것을 고려해 보자. 우리가 이 이론들을 자연주의의 범주 밖에 놓는 이유는 그들이 과학적 방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주의에게 인과론적 설명을 제시하는 과학적 방법의 단순한 모방만으로도 충분하다면 - 그러한 근거로 니체를 자연주의자라고 분류할 수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듯 싶은데 - 방법과의 연속성에 근거한 자연주의는 매우 관용적인 학문처럼 보인다.

b1f7cfb97e1c9a407c31b6d197df6cb0_1529546

  이러한 문제는 결과와의 연속성을 적용함으로써 배제될 수 있다. 방법과의 연속성과 결과와의 연속성 두 방법에 전념하는 사람을 자연주의자라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현상을 원인에 기반하여 설명하려 노력하는 것과 더불어 라이터의 말을 인용하자면 “철학적 이론이 과학의 결과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또는 정당화할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여기에 라이터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최고과학의 뒷받침을 받지 못한 이론은 단순히 나쁜 이론이다”(2002 : 4). 이 “뒷받침 또는 정당화”로 반드시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학과의 “연속성”에 더 강한 의미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라이터의 해석에 의문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도덕적 믿음과 태도의 기원에 대한 니체의 가장 중요한 설명적 가설을 살펴볼 때, 과학적 뒷받침이나 정당화를 찾을 수 없거나 선뜻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요한 시험 사례로 『도덕의 계보』 제1 논문에 있는 니체의 가설을 보자. 비이기주의적 무대책, 겸손과 연민에 “선함”이란 라벨을 준 것은 사회 열등계급의 개인들이 자신들의 주인들에 대한 원한감정ressentiment에 새로운 가치 차이를 창조하는 동기를 부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가설은 도덕적 현상을 그것의 원인 면에서 설명하지만 어떠한 과학에 의해 정당화되고 뒷받침되는지, 혹은 그러한 정당화나 뒷받침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다른 사례도 같은 방식이다. 제2 논문에 있는 양심의 가책의 기원에 대한 니체의 결정적인 가설을 보자. 니체는 다른 이들에 대한 표면적 표현이 차단되자 본능은 자신 내부로 향하게 되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라고 한다. 이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뒷받침하는 과학적 결과 역시 모호하다. 우리가 이러한 니체의 도덕에 관한 설명이 과학적 결과에 의해 정당화되거나 해명되는 것으로 본다면, 그 뒷받침 또는 정당화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줄 책임은 라이터에게 있다.

  한 지점에서 라이터는 19세기 중반 독일인들의 뇌리를 사로잡은 어느 특정한 “결과”와 - “인간은 나머지 자연과 ‘더 높거나 다른 기원’을 갖지 않는다” (2002 : 7) - 니체 철학과의 연속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것의 “결과”로써 자격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인류에게 독점적으로 있는 경험적 본성이 19세기에든 다른 어떤 시기에든 과학적 조사의 결론 또는 추정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은 나머지 자연과 다른 기원을 갖지 않는다”가 과학적 정당화를 갖고, 니체도 그렇게 여겼다고 가정해보자. 그때 우리는 다음의 질문과 대면한다. 도덕적 개념, 양심의 가책과 기타 등등의 기원에 대한 니체의 설명 그 자체가 “인간은 나머지 자연과 다른 기원을 갖지 않는다”에 의해 뒷받침되거나 정당화되는가? 이 일반적인 계획에 따른 주장이 니체의 설명에 타당한 이유를 제공한다기보다는, 좋은 인과론적 설명이라 여기는 것을 제약하는 배후 상정으로 기능한다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다. 이 주장은 철학에 있어 설명이 단지 우리의 최고의 과학과 호환되거나 우리의 최고의 과학에 호소함으로써 조작되지 않기를 요구하는 라이터의 주장보다 더 약한 결과와의 연속성을 제시한다. 다시 말해 철학에서 주어진 어떤 설명이 과학의 결과와 이 정도만의 연속성을 갖는다는 의견의 이론가는 자연주의자라는 타이틀을 어느 정도 가질 수 있다. 그는 적어도 단순히 철학이 인과론적 설명을 제시함으로 과학을 모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갖는 방법과의 연속성 이론가만큼의 권리를 갖는다. 나는 더 약한 “자연주의”가 - 자신의 가설이 가치 차이에 있어 변화를 설명하는 원인을 제시하도록 하고, 고고학, 역사학, 문헌학, 심리학, 생리학 심지어 물리학에 의해 조작되지 않은 - 『도덕의 계보』에 있어서 니체의 입장을 라이터가 그에게 돌리는 것보다 더 잘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X를 설명하면서 Y와 Z를 그것의 원인으로 찾는 이론화의 분류에 전념하지만 Y와 Z가 X의 원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최고 과학에 의해 조작되지 않았다는 정도까지 니체는 자연주의자이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