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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신문 기사 속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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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홈피지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6-03-13 14:39 조회1,0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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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을 위한 학교>① 인문학공동체, 지식ㆍ삶 결합 꿈꾼다

송고시간 | 2016/03/10 08:10



                             우응순 박사가 '2016 트랜순 맹자 강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임귀주 기자


<※ 편집자주 = 수월하게 풀리는 인생은 없다. 살다 보면 강의실에서 배운 적도, 시험으로 풀어본 적도 없는 문제들에 직면한다. 전쟁같은 삶의 터널을 지나고 있거나 은퇴할 나이가 되면 나는 누구인지, 왜 태어나 무엇 때문에 살았는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어른들이 또다시 학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의 공부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다. 학무지경(學無止境), 배움에는 끝이 없다.‘어른을 위한 학교’에서 또다시 배움의 길을 떠난 어른들을 만나본다.>


(서울=연합뉴스) 신재우 기자 = 지난 2월 14일, 일요일 오후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남산강학원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인문학 지식공동체 수유너머가 그 뿌리인 남산강학원은 '배움의 길 위에서 자신에게 묻고, 심신을 수련하고,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목표로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는 공부방이자 강의실이다.


이날은 학원이 기획한 '2016 트랜순 맹자 강독' 수업 첫날이다. 맹자 강독은 전쟁의 시대에 부국강병의 길을 거부하고 인간답게 사는 길을 설파한 맹자의 '왕도정치론'을 원문으로 배우면서 크게는 한자로 형성된 중국의 문명사, 학술사를 이해할 수 있는 수업이다.


강독이 거의 일 년 내내 진행되고, 수강료(80만원)도 싸지 않지만, 스물여섯 명이 수강신청을 마치고 출석했다.



남산강학원 강의실. 사진/임귀주 기자


강독은 대학에서 30년 이상 한문학을 강의해 온 우응순씨가 맡았다. 교재는 조선 선조 때 만들어진 맹자 언해본이다.

첫 문장은 쉰두 살의 맹자가 여든한 살의 양혜왕을 만난 사건에서 시작한다.


"孟子見梁惠王(맹자견양혜왕)하신대 王曰(왕왈) 不遠千里而來(수불원천리이래)하시니 亦將有以利吾國乎(역장유이리오국호)잇가"


강독은 원문을 먼저 읽고 뜻을 천천히 풀이해나가는 방식이다.


맹자께서 양혜왕을 보자 왕이 말하기를 "노인이 천 리를 멀다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일이 있겠습니까."


강독 수업은 문형을 파악해 해석이 수월해지면, 당대 문맥에서 문구가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파악하고, 동양문화사적인 의미를 짚어내고, 마지막으로는 학생 나름의 설명구도를 갖추는 것으로 단계가 발전한다.


표정이 진지한 학생들은 전공자가 아니라 20대에서 60대 사이의 일반 대중이다. 처음 한문 공부를 시작한 사람도 있지만 일부는 남산강학원에서 논어, 대학, 중용, 맹자, 장자, 노자 등 동양고전을 수년째 공부해 온 사람들이다.


인문학 지식공동체 남산강학원에서는 기획세미나, 직장인을 위한 '퇴근길 인문학', 동양고전을 공부하는 '삼경스쿨', 글쓰기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임귀주 기자


30년간 다닌 회사에서 재작년 은퇴했다는 안형선씨도 작년에는 장자, 올해는 맹자로 공부를 이어가고 있는 경우다. 직장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때 즈음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깊어졌고 고전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오늘의 베스트셀러가 50년 후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고전은 세월을 이긴 책이고 맹자는 무려 2천300년 이상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고전을 탐구하면 내가 가졌던 질문을 풀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은퇴 전부터 공부계획을 세우고 곧바로 실천했죠."


안씨는 이날 강독한 '養生喪死 無憾 王道之始也'(양생상사 무감 왕도지시야) 구절을 예로 들면서 "맹자는 그 옛날에 이미 정치가는 민생에 힘을 써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가 아니냐"고 강조했다. 그는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를 고전에서 찾을 때 큰 만족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돈을 좇으면서 아파트 평수 늘리기에 휩쓸려 있을 때는 그게 우스운 일인지 모르지만, 그 흐름에서 한 발짝만 뒤로 물러나면 허망한 일이죠. 물신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평범한 사람들이 균형을 찾기 어려운데 공부는 인생의 의미, 균형 찾기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withwit@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3/10 08:1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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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의 자유인] "18세기 조선은 '백수'들의 전성시대였죠"

김성현 기자


입력 : 2016.03.09 03:00 | 수정 : 2016.03.09 07:28

[고전문학 연구자 길진숙]


책 '18세기 조선의 백수…'서 실학자 이익 등 '노는 남자'로 지칭

인문학계 잔잔한 파장 일으켜 "그들처럼 창의적인 시간 보내라"



냉면집과 한옥마을로 유명한 서울 중구 필동 골목에서 남산 방향 오르막길로 15분쯤 걸었다. 남산 산책로 입구에 이르러서야 '남산강학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아담한 3층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강학원은 공부방과 세미나실은 물론, 주방과 식탁까지 공유하는 인문학 연구 공동체다. 고전문학 연구자인 길진숙(51) 남산강학원 연구원은 2011년부터 6년째 당송(唐宋) 8대가와 '조선왕조실록' 등을 주제로 매주 4~5차례씩 세미나를 열고 있다.


길 연구원은 최근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북드라망)라는 책을 통해 국내 인문학계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 성호(星湖) 이익(李瀷), 혜환(惠寰) 이용휴(李用休),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등 조선 후기의 실학자 4명을 '백수 지성'이라고 지칭했다. 지금까지 이들은 벼슬하지 않은 선비라는 의미에서 포의지사(布衣之士)나 산림처사(山林處士)로 불렸다. 하지만 길 연구원은 이들을 '백수'와 '노는 남자들'이라고 표현했다. 길 연구원은 "실학자들을 고상한 선비로만 규정하다 보면 자칫 역사적·학문적 권위 때문에 실체를 보지 못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들을 생기 있는 인물로 되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미 부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를 펴낸 길진숙 남산강학원 연구원이 강학원 서재에서 포즈를 취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길 연구원은 18세기의 대표적 실학자인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학문적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이들 실학자 4명과 만났다. 김창협은 독창적이고 생생한 문체를 통해 노론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재야의 경세가였던 이익은 균전제 등 제도 개혁을 주창했으며, 이용휴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비범한 가치를 발견하는 글쓰기를 선보였다. 홍대용은 중국 여행을 통해 천체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중화와 오랑캐의 구분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다. 길 연구원은 "이들에게 '백수'는 자유나 창조와 같은 말이었으며, 18세기 조선의 지성은 이들 백수에게서 나왔다"고 말했다.


길 연구원의 문제의식은 그 자신의 학문적 궤적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 대학원에서 '조선 전기의 시가(詩歌) 예술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 도중에 그는 민족문학사연구소와 수유너머연구소 등에서 별도의 공부를 계속했다. 자연스럽게 학문적 관심도 박지원과 사마천, 장자와 맹자에서 프랑스 철학자 푸코와 들뢰즈, 러시아 문학가 푸시킨과 고골 등으로 넓어졌다. 그는 "일정한 틀과 한계 내에서 해야 하는 전공 공부가 즐겁지 않고 답답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교수 채용 심사 과정에서 서너 차례 고배(苦杯)를 마신 뒤, 강단에 정착하려던 꿈을 접었다. 길 연구원은 "학계에서 비주류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컸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자 고전 번역과 저술, 강단 밖 강좌라는 새로운 길이 보였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학자'라는 점에서도 이익과 홍대용은 그의 선배였던 셈이다.


길 연구원은 "'청년 백수 100만명 시대'에 18세기의 선배 백수들에 대한 면밀한 벤치마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산층에 편입하지 못할까 평생 전전긍긍하고 사느니, 차라리 눈치와 속박에서 벗어나 청년 시절을 창의적이고 알차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 낫다"는 조언이다. 길 연구원은 "백수 시절은 지성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먼 훗날 축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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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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