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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번역가다

제국.유교,동아시아 33-34 수정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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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산빛공주 작성일14-10-14 08:47 조회8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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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원점으로 돌리면, 중국사상의 경우 폭력 및 폭력에 대한 대응 동기가 근저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성곽 도시를 더욱 견고하게 하려고 하는 힘이 춘추전국시대에 매우 강했다고 하는 것이지요. 도시국가간의 전쟁이라고 하는, 즉 카라타니씨의 구도에서 말 슴드리면 ‘호수성’의 단계입니다. 그리고 이런 물리적인 성곽의 증강과 동시에, 성곽도시의 안과 밖 세계의 분할, 또 그것에 뒤따르는 신분제의 틀에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있어서 노장, 법가, 불교라고 하는 각양각색의 요소가 투입되고, 그것들을 종합하여 최종적으로 유교라고 불리는 장치가 성장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어쨌든 각각의 사상은 각각의 상호비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라타니씨는 連載에서도 우선 노장자사상에 대해서, 여러 사상의 선행형태로서 받아들여 졌다고 언급하셨습니다. 다른 견해로는 이 시기의 경우 성곽도시를 더욱 굳건하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성과 함께 그러한 현상에로의 발전이 원동력이 되어서 노장적인 사상이 흡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노자사상이라고 하는, 성곽을 만들어야 했던 성곽도시 이전의 세계 즉, [禮制]가 강화되는 성곽도시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감각이 토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대를 내려가다 보면 청나라 말기의 강유위의 대동사상(유토피아 사상)에 연결됩니다. 폭력이 만연된 사회에 있어서는 성곽도시를 강화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에, 성곽도시 이전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회귀성이 생깁니다. 이러한 사상이 도시국가를 초월하려는 것, 즉 제국을 형성하려는 힘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상상해 보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유교 속에 투입되었던 것으로 가라타니씨가 말씀하셨듯이 법가도 중요합니다. 법가도 도시국가간의 전쟁, 즉, ‘호수성’의 단계를 초월하려는 사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성곽 도시의 안과 밖을 초월하려는 단계로서의 ‘법’, 이것도 제국형성에는 불가분의 사상이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법가사상에 대해서는 문화혁명 말기, 모택동에 의해 칭송되었던 경위가 있습니다. 문화혁명의 내전 속에서 손상된 국내의 질서에 대해서, 위로부터의 법적인 조처에 의해 중국 전체를 재생시키려고 하는 시도라고 생각됩니다. 문화혁명의 중기였던 중국은 보복전쟁에 의해서 피폐해졌고 그런 이유로 ,다시 말하자면‘호수성(보복)’의 논리가 너무 강하였다ㅡ 그 해독제로서 모택동은 그 시기에 법가사상을 자주 칭송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실험이 있었기에 전국일치의 체제 속에서 ‘개혁개방’이 준비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카라타니씨는 ‘철학의 기원’에서 도시국가의 문제에 손을 댔습니다. 도시국가와 그 이전, 혹은 도시국가와 그 밖이라고 하는 ,시.공간적인 회귀의 다이나미즘 속에서 철학의 생성을 생각하셨습니다. 또 더욱이 이러한 문제 설정과 관련해서, 그것을 보편적인 것으로서 카라타니씨 자신이 이전부터 취급해 왔던 네 개의 교환양식이라고 하는 틀, 혹은 제국, 주변국 그 주변국이라고 하는 공간적인 틀에 의거해서, 사상을 정리하고 재조립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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