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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년 공자 3기 2학기 네번째 시간 맹자 (2)

게시물 정보

작성자 류수정 작성일18-12-24 16:53 조회38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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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전 TMI (too much information)

오늘의 후기는 다소 짧을 예정이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공부 시간의 절반 이상을 심도있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적지는 못하지만 역시 생생한 사례를 가지고, 이론에 적용하니 심도 있는 공부가 되었다. 생생한 사례를 가지고 와주신 **선생님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그런데도 너무 적고 싶어지만, 참아보도록 하겠다.


네 번째 청공 시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진짜 2학기 딱 절반까지 왔다)


날씨도 춥고, 마음도 춥고, 손도 춥고, 발도 추웠다. 오늘도 잠 없는 청공 2기 늙은이 2명이 먼저 와서 먼저 따뜻한 난로를 쬐고 있었다. 그리고 문리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그리고 차례차례 청공자들이 들어왔다. 은규 쌤의 발제문을 읽고 토론하였다.


사람들이 그 선한 마음을 놓아 버리는 것 역시 도끼로 날마다 나무를 베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떻게 아름다워질 수 있겠는가? 사람의 선한 마음도 낮과 밤으로 자라난다. 새벽에 맑은 기운에는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한낮의 행위가 그 선한 마음의 싹을 흩트려 없애버린다. 이렇게 없애기를 반복하면 그 싹을 키워주던 밤의 맑은 기운도 없어지게 되고, 밤의 맑은 기운이 없어지게 되면 사람이 아닌 금수에 가까워진다. ”


선한 마음을 지켜주는, 그 싹을 흩트려 없애지 않는 행위란 무엇일까? 싹을 키워주는 맑은 기운을 헤치지 않는 일, 그런 일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함과 그렇지 않음을 정한 걸까? 이런 질문에 용기라고 대답하였다.


그대는 용기를 좋아하는가 내 일찍이 스승님꼐 큰 용기에 대해 들었다. 스승님께서는 스스로를 돌이켜봐 정직하지 못하면 누더기를 걸친 사람 앞에서도 벌벌 떨게 된다. 스스로를 돌이켜봐 정직하다면 천만 명이 몰려와도 당당히 대적할 수 있다.“ 라고 하셨다.


스스로를 돌아봐 정직한 행동을 매순간 할 수 있으려면 자신만의 기준, 행동하는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그 기준을 잡기 위해서 학문을 배우는 것이다. 매순간 정직하기 위해서 노력해야한다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 않는게 아닐까


무엇이 사람 마음에서 동일한 것인가? 도리이고 의리이다. 성인은 우리 마음에 동일한 것을 먼저 체득했을 뿐이다.

이 마음을 체득해야하는 것이고, 끝엇이 정직한 선택을 요구한다면 정말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일까?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일까? 인가의 본성은 왜 선해야 할까? 인간의 본성은 꼭 선해야 할까? 인간의 본선은 선하다고 믿으면, 우리의 행동은 변할 수 있다. 만약 인간이 선하지 않은 존재라면, 우리는 좌절할 것이며, 더 이상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선하지 않다는 것은 저번 시간에 이야기 한 것처럼 내 마음에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어떤 기준일까? 어린아이에게 약과 사탕을 주면서 고르락고 하면, 어린아이는 당연히 사탕을 고를 것이다. 그러나 사탕을 먹은 아이는 이가 썩을 것이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이라는 형용사에 있어서, 기호나 감각을 이야기 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그러한 것이 아니다.


맹자가 남긴 글 35000자 중에 선이라는 단어는 단 두 번 나온다. 그에 반면에 공자의 논어는 15000자 중에 인이라는 단어는 백 번이 넘게 나온다. 맹자의 글에 나온 단 두 번 나온 글자인 선을 우리는 왜 맹자의 사상의 기반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람은 모두 선하다라는 대 전제를 가지고 맹자가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성선설의 대표주자 맹자를 논할 때, 우리는 항상 사람이 선한가 아닌가라는 토론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이 우리 마음에 있는가 없는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이다. 책임은 그 사건의 원인이 되겠다는 마음이 있는가? 라는 것이다. 내가 나의 삶의 문제의 원이이 되어 그 문제를 일으키는 사건들을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논리구조가 헐겁군 더 생각해 봐야지)


그렇다면 내가 나의 삶을 책임지지 않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군자도 구해줄 수 없는 사람이다. 논어에서는 태어난 순간 아는 사람이 있고, 배워서 아는 사람이 있고, 어려움을 겪은 뒤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아래다. 이 마지막에 사람이 자포자기한 사람이다. 우리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 태어나면서 모르면, 배우면 되고, 배워서 모르면 여러번 익히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이다.


공자가 가장 아끼었던 안회는 잘못을 했으면 고치고,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같은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은 공부를 통해 같은 문제를 다르게 보기 위해서 이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를 하는 이유이다. 공자는 70세에 종심소욕불유구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마음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마음대로라는 것은 제멋대로 했다는 뜻일까? 무엇일까. 우리는 눈과 귀가 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충무로역에서 남산강학원에서 올라오는데 전봇대는 몇 개일까? 미용실은 몇 개일까? 식당은 몇 개일까? 충무로역에서 남산강학원까지 수많이 지나다녔지만, 전봇대가 몇 개인지 모른다. 우리가 전봇대를 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머리 자를 때가 되면, 미용실만 보이고, 배가 고프면 식당만 눈에 보이게 된다. 우리의 눈과 귀가 듣고,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듣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음의 길을 잘 내야한다. 그 길을 따라서 우리는 듣고, 보고, 익히고, 행동하게 된다.


이렇게 좋은 논어와 공자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먼저 깨우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깨워야한다. 그런데 우리가 깨우쳤다고 생각하는 데, 사실은 깨우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알지. 서양의 계몽과 동양의 계몽은 다르다. 서양의 계몽은 핀 조명을 비추는 것과 같이, 계몽의 주체는 어둠으로 사라지고, 계몽의 대상은 빛을 받는다. 그러나 동양의 계몽은 그 빛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민동락이다. 루쉰이 이야기 하기를 여기에 사방이 철로 둘러 쌓인 방이 있다. 한 사람은 자고 있고 한 사람은 깨어 있다. 사철방은 나갈 수 없다. 깨어난 사람은 잠든 사람을 깨워야 하는가? 이 방을 나갈 수 없음을 알아도, 잠이 든 사람을 깨워야 하는가? 루쉰은 그렇다고 했다. 루쉰은 선택하였다. 사람들을 깨우기를. 그리고 깨어난 사람들이 철로 둘러 싸인 방에서 나갈 수 없음을 알고 루쉰에게 욕을 했음에도 루쉰은 책임을 지었다. 감내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깨우친 것이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 자기 확신은 어디에 오는 것일까? 그것은 자기에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사로운 마음이 아닌, 자기에게 옳은 것이라는 마음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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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다솜님의 댓글

김다솜 작성일

후기의 마지막 부분과 관련해서, 상대방에게 충고를 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좋은 길로 인도하려는 행동이 타당할 수 있는지 세미나 시간에 이야기 했었던게 생각나요.
정말 상대방의 삶을 안타까워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인도'와, 나의 올바름에 상대를 맞추려고 하는 '인도'는 얼핏 보면 비슷할 수 있지만 천지차이라는 걸 느꼈어요.
그간 나의 인도들이, 상당 부분 상대의 방식이 나와 같지 않으니 상대를 나에게 끼워 맞추고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이 부분과 관련해 언니가 경험을 예시로 들었던 것 덕분에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 예시 이야기 했을 때, 갑자기 눈물이 나올 뻔해서 당황했잔아 ;; 그리고 집에와서 후회했잔아. 그냥 울어버릴 것을 ㅋㅋ. 다솜쌤 덕분에 그간 잘 정리되지 않았던 선한 의도에 대해서 정리가 된 것 같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