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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3기 청공 3기

청년 공자 3기 2학기 두번째 시간 공자 (2)

게시물 정보

작성자 류수정 작성일18-12-03 10:26 조회107회 댓글5건

본문


쓸 수 있을 때 써야지 후기.


후기도 글쓰기니까 많이 쓰다보면 글쓰기 능력도 길러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글을 쓴다.


첫 번재 시간은 고전으로 여행하는 시간, 가이드는 문리스 선생님. 나라는 노나라, 컨텐츠는 공자의 논어.


가이드인 문리스 선생님의 청공 3기 여행단의 기본적인 예의(??)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행을 시작하기 전에 늦을 수 있지만, 무엇 때문에 늦는지 또는 왜 오지 못하는지 카톡으로 꼭 남겨달라고 하셧다.

왜냐고? 가이드 및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이 궁금하니까 ??!!! (연수가 몸살로 못 온다고 이야기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저번 시간에 같이 하지 못한, 중국으로 출장갔다 온 중국어 능력자 가혜의 소개를 들었다.

역시나 나의 상상속 그대로 센스가 있는 사람이었다.

무튼, 가이드 문리스 선생님과 가혜까지 합류하여 저번 시간에 이야기 했던 공자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석현쌤의 발제문과 다솜의 발제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석현쌤의 발제문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아란 무엇인가? (언어 유희)"

공자에서도 무아가 나오고, 불교에서도 무아가 나오는데 과연 둘은 같은 것인까? 과연 무아란 무엇인가?에 관한 발제문이었다.

다솜이가 물었다. 공자에서 무아의 개념과 불교에서 무아의 개념은 궤가 다른, 결이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요??

나도 이 문제에 대해서 흥미롭게 생각하였고, 나는 같다고 생각하였다.

마침 청공 3기 2학기 2번째 시간 낭송이 "대승신기론?? 대승기신론??"이었고, 둘을 같이 읽어보니 참 닮았다고 생각하였다.

마음에는 진여문이 있고 (본래의 그것?), 그리고 생멸문이 있다 (생겨나고 멸하는 (없어지는 ) 마음)이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대승기신론을 읽어보면서 생멸문이 없어지면 진여문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다. (물론 둘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문의 관계지만)

그래서 나는 생멸문에 해당하는 의 (의도), 필(반드시 해야하는 일), 고(고수하는 것), 아 (나라는 절대성)이 없어진 상태가 무아의 상태이므로, 같다고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설왕설래를 벌이면서 이야기 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인품 좋은 가이드인 문리스 선생님이 공자는 실(실상)의 학문이고, 불교는 허(허상)의 학문이므로 이 둘이 말하는 무아가 다르다고 하였다.

공자는 실질적인 내가 어떻게 좋은 삶을 꾸려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학문으로, 나라는 절대성 없이 계속해서 배움으로써 내가 끓임 없이 변화하여 좋은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실질적인 이야기를 하는 반면에,

불교에서는 나의 존재 상태가 정말 없다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제논의 역설에서 처럼 날아가는 화살이 있는가? A의 지점에서 B로 날아가는 화살을 쪼개고 또 쪼개면 어느 한 점에 존재하는 화살이 있을 뿐

날아가고 있는 화살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도 나라는 존재 자체가 쪼개고 쪼개면 하나의 시점에서 존재할 뿐,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있는가? 10년 전 나와 오늘의 나가 같다고 할 수 있는가 ? (어렵다 어렵다)

그러면서 사실은 군자와 붓다보다는 군자와 보살의 개념이 어찌보면 더 맞닿아 있다고 이야기 하셨는데 그 지점이 놀라웠다.

이를 도출한 논리가 기억이 안난다. (보살은 못 깨달은 중생을 위한 윤회의 고리를 끓지 않은 사람이다.)

그렇게 석현쌤의 발제가 끝나고 다솜쌤의 발제문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 졌다.


""자신의 마음을 미루어서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렸고 (서),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을 끊임 없이 밀고 나갔다가 (충).

무작정 '나는 왜 이렇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라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오늘 내가 맞닥뜨리는 상황들에 충과 서의 태도를 지니려고 하고 그것을 점차 확장해 나갈 것이다. "


사회의 문제 vs 지금 내가 격고 있는 문제, 큰 문제 vs 개인 문제는 같은 것을까? 다른 것일까?

사실 둘은 좋은 삶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게 좋은 삶에 대한 의문과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공적인 지위를 가졌을때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다.

결국 큰 문제, 작은 문제, 사회의 문제, 개인의 문제모두 어떻게 더 좋은 삶을 살것 인가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즉 내가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나의 정치적인 견해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정책이 아닌 오늘 내가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겠다는 행동이 나의 정치적인 견해를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위에 나오는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인 "서"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어서 무엇인가를 주는 것은 자기 만족이고, 또 다른 이름의 폭력이다.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들이 그러하다. 배려없이 주기만 한다. 내가 원하지 않지만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서 행동하신다.

예를 들어" 내가 살아보니, 공부 잘하면 사는게 편하더라, 공부해" 너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대학은 무조건 가야해"

그래서 자기 마음을 미루어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서"라는 개념에 반기를 들었다.

그런데 공자는 "서"라는 것을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베풀지 말거라"라고 정의 하셨다.

저 "서"라는 것은 "나를 미루어서 남을 헤아리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나를 미루어서 남을 헤아려서 남이 좋아하는 일을 해주기 보다는,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이다.

좋은 친구란 좋아하는 일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 많은 이야기를 한 시간동 나누었고, 그리고 쉬는 시간에 각자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양햇살 나이스 캐치)


나는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싫어했고, 석현쌤은 안그래도 바쁜데 옆에서 빨리하고 압박하고 재촉하고 쪼는 것을 싫어했고

은규는 비둘기를 싫어했고, 의형이는 표상을 넘어선 돈을 싫어 했으며, 가혜는 마초적인 남자를 싫어했다.

그러고 보니, 현지, 해살, 아미, 다솜이는 뭐를 싫어 했지. 무튼 우리는 각자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쉬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는 각자가 읽고 좋았던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아미는 "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라는 뽑아 왔다. 알고,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무엇일까.

즐기는 것 (樂)은 무엇일까? rock and roll? 공자는 왜 락이라고 했을까?

가혜는 포함관계라고 하였다. 나는 연애의 진도라고 생각하였다.

문리스 선생님이 "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 이 제비가 지져귀는 소리와 비슷하여 논어를 공부하는 학자들이 제비조차 논어를 안다고 농담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지는 " 자로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줄까? 이나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 "를 뽑아왔다.

그리고 문리스 선생님의 논어에 나오는 여러 구절을 알려주시면서 자로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자로는 왈인(깡패였다). 자로가 공자의 제자가 되었을 때, 공자의 비방이 사라졌다. (왜냐하면 자로가 공자를 비방하는 자를 주먹으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용맹한 자로에게 공자가 가르치는 방법이나, 배움을 주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그리고 은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해야 한다."를 뽑아왔다.

(어려운 구간이 왔다 기억이 안난다, 그러므로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기억이 아닌 생각난대로 쓴다)

문리스 선생님은 공자의 논어는 지인(사람을 알아보는 것)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였다.

논어의 맨 처음 구절인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떳떳하다면 된다. 나의 행동과 판단 기준은 나에게 있다.

그렇다면 내안에 있는 판단 기준은 제멋대로 세워도 되는가? 예를 들어 물건을 훔치는 것이 좋으면 물건을 훔쳐도 되는가?

내안의 판단 기준에도 기준이 있다. 그것은 좋아하는 마음 好, 싫어하는 마음 惡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내가 행하는 행동이고, 내가 싫어하는 마음이 내가 행하지 않는 행동이다.

나아가 좋고, 싫음의 판단기준은 앞서 이야기한 "나를 미루어서 남을 헤아리는 마음인 "서"이다.

예를 들어 내가 물건 훔치는 일이 떳떳하고, 좋으면, 남도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 내 물건을 남이 훔쳐도 좋다는 것이다.

남이 나에게 해도 좋은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그 기준으로 행동하면 남이 나를 알아봐 주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며서 문리스 선생님이 한마디로 정의해 주었다.

우리는 도덕적 인간이 되기 보다, 윤리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든 도덕적 규율에 대해 동의하기 보다, 자신에게 묻고 물어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윤리를 가지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 좋잔아 공자 양반... 그리고 이를 듣기 쉽게 잘 풀어 설명해주는 문리스 선생님 감사합니다 (꾸벅 꾸벅).


시간이 없어서, 문리스 선생님이 제일 좋아하는 공자의 제자인 자공 이야기를 못 들어서 아쉬었다.

그러나 맹자를 이야기를 할때에, 공자를 이야기하고, 그러다 보면 자공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오니 너무 실망하지말라며, 여행을 마치었다.


- 1교시 끝-


석현쌤 나머지를 부탁할게요. (p.s 술을 먹어도 얼굴이 안바뀌는 소주 2병 swag를 꼭 써주세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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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홍석현님의 댓글

홍석현 작성일

ㅋㅋㅋㅋ 아니 글못쓰신다고 하신분 맞나요?ㅋㅋㅋ 이렇게 잘쓰면 2교시 어떻게 쓰라고 ㅋㅋㅋ

양님의 댓글

작성일

후기 너무 좋잖아요 언니~
다시 일요일로 돌아간 기분이였어요 ㅋㅋㅍㅋㅋ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래서 햇살이 뭐 싫어해 ?

양양님의 댓글

양양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제가 기억나는 현지는 누가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거 싫어한다고 말했던 것 같구..
저도 현지랑 비슷하게 강요받는 거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내 생각으론 납득이 안가서 안하고싶은데 설명해주지 않고 일단 해야된다고 밀어붙이는거...? 
근데 생각해보면 저도 다른 사람한테 그랬던 적이 있던 것같아서 남한테 제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 만도 힘들군... 이라는 생각을 하하ㅏ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러게 남한테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네. 나도 아직도 사람들한테 안물어보고 서프라이즈로 선물주고, 다시 또 반성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