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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숙제방

청공 4기 2학기 최종에세이

게시물 정보

작성자 circle 작성일19-07-07 09:08 조회17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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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신뢰 = 내 고통의 근원, 번뇌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우울해졌다. 첫째로는 내가 기대하던 것들이 모두 망상과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하니 허탈했고, 둘째로는 (설령 그게 망상일지라도!) 내가 기대하던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따져보다 우울해졌다. 나는 기대해서, 내가 기대했던 것(이상)과 현재의 나(현실)에 대한 괴리가 있어서 괴로워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인가’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1. 마이너스 통장

  7월이면 나의 빚 갚기 프로젝트는 끝이 난다. 친구에게 빌린 돈이 781,500원 그리고 카카오뱅크 비상금 대출(마이너스통장)이 50만원 이렇게 총 1,281,500원이었다. 월 20만원씩 갚아나가서 6개월 동안 갚는 것이 목표였다. 친구의 빚은 최근 그 친구와 크게 싸우고 나서 오만 정이 다 떨어져 카카오뱅크 돈 갚던 것을 도로 꺼내 친구의 빚을 몽땅 다 갚아버렸다. 그리고 현재 남은 빚은 카카오뱅크 15만원이다. 

  그런데 이 카카오뱅크 비상금 대출 통장이란 게 내게 이상한 기분을 가져왔다. 이 대출은 사실상 마이너스 통장 같은 것으로 최대 50만원까지 더 인출가능하게 해준다. 그래서 내가 카카오뱅크에 20만원을 넣어놓으면 내 돈은 총 20만원이 아니라 총 70만원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 것이다.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를 대표하게 하는 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2015, 435~436쪽)

 

  그렇다. 대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다음 달에도 돈을 벌 것이라는 믿음 하에 이루어진다. 나는 ‘다음 달에 월급 들어오면 갚으면 되지!’ 라는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현재의 가능성을 숫자 놀음해 보고 싶은 것이다. 나에게 당장의 현물 50만원은 없지만 인터넷 뱅킹 속에는 내 미래를 담보로 50만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이 이용가능하다. 가상이지만 실제 하는 이 신기한 돈은 혁명적이라면 혁명적이다. ‘총 70만원 인출가능’ 이란 말은 내게 든든함과 설렘을 동시에 선사해준다. ‘당장 내가 병원을 가게 된다거나 경조사를 챙겨야 할 때 혹은 듣고 싶은 수업이 있거나 친구와 놀고 싶을 때 돈이 없어서 곤란하진 않겠구나!’ 하는 것이다. 

  가계부를 추적해보니 실제 내 소비지출은 수입을 항상 뛰어넘었다. 그런데 어떻게 원래 계획대로 한 달에 20만원씩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을까? 가계부를 다시 살펴보니 거의 매달 아빠에게 용돈 2-30만원씩을 받았다. 이런. 표면적으로 빛을 갚아나가고 있다는 것 뿐. 내 소비패턴과 마음장은 변함이 없었다. 처음 내가 빚을 갚겠다고 했던 것은 돈에 주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내 기준에 돈의 주인은 스스로 돈을 조절할 줄 알고 돈에 있어서 스스로 떳떳한 사람이었다.  


소비지상주의는 대중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

  쇼핑은 인기 있는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소비재는 가족, 배우자, 친구 관계의 핵심 매개물이 되었다.

(같은 책 492쪽)


  빚은 내가 가진 것 이상의 것을 탐하려는 마음에서 온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 탐닉은 소비지상주의에서는 좋은 것으로 본다. 어찌되었든 빚을 통해 몇 달을 참아야 얻을 수 있는 것을 현재에 누릴 수 있었고, 어찌되었든 빚도 이번 달 월급이 들어오면 0원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돈을 잘 이용하고 조절한 거 아니냐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돈을 빌린 만큼 앞으로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운명에 처할 것이며 그건 미래에 저당 잡힌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냥 이 김에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적극 받아들이며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아 재밌게 살아보면 되는 것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걸리게 하는 것은 소비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사람 관계의 핵심 매개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연애도 못하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도 못 가지는 것이다. 실제 나는 돈의 상당 부분을 관계를 맺기 위해 썼다. 중학교 동창 친구 축의금, 어버이날 선물, 친구들과의 약속에 썼다. 물론 스스로를 위해서도 많이 썼다. 배우고 싶은 춤 레슨, 브랜드 운동화, 알바 후 스스로에 대한 보상으로 간식 먹기 등 어쨌든 나는 나와의 관계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든 돈으로 채워 넣고 있었다. 나는 돈이 없으면 나를 포함한 모든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할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상상이 되더라도 그 과정이 귀찮게 느껴지고 만족스럽지 않다. 내가 원했던 돈의 주인이 된다는 건 과연 무엇일까. 혼란스럽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2. 한의대에 가고 싶어!

  나는 한의대에 가고 싶다. 수능을 쳐서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2015년부터 극심해진 아토피 때문에 여러 한의원을 다녔다. 양방에서는 스테로이드 밖에 방법이 없었기에 한방 쪽 치료를 내 몸에 실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음양오행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사주 공부에 푹 빠졌다. 그 뒤로 내 사주 명식을 공부하며 나에게 부족한 기운과 과다한 기운을 보면서 양생법을 실천해나갔고, 여러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중 한의대를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몸에 대한 공부라면 평생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그걸 살려 직업으로도 가지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사주적으로 봤을 때 나는 평생 공부를 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사는 것이 필요하단 생각에 대입시험을 생각했다. 

  당장에는 몸부터 건강히 만들고, 하루 책 2시간 읽기부터 시작하자 했다. 섭생을 관리하며 내가 좋아하는 명리학 책부터 읽어나갔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후 부터는 스스로 공부가 잘 되지 않았고 같이 공부할 장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내가 좋아하는 의학과 역학이 같이 있는 딱 좋은 곳을 발견 했다. 지금의 감이당이다.      

  나는 원래 감이당에 와서 사주와 동의보감만을 공부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청년공자스쿨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나에겐 일단 공부 하는 리듬이 필요했다. 계획엔 없었지만 다양한 공부를 해보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매일 같이 일상어로 사주 용어를 쓰는 게 제일 재미있었다. 그걸 살려 강감찬tv에서 ‘사주 이야기 다 털어!’ 신 개념 사주 예능도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청년공자스쿨 2기를 어렵고도 뿌듯하게 수료하게 되었고, 나는 나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1년 더 공부하기로 했다. 청년공자스쿨 4기를 신청했다. 원래는 토요일마다 도담학당에 가서 동의보감을 공부하려고 했는데, 감이당에서 하는 토요주역스쿨이 때마침 청공자를 위해 수강료 반값이라는 파격적 제안도 있었고, 주역이 동양철학의 뿌리라는 이야기에 바로 신청해버렸다! 

  그렇게 한의대를 가기 위해 수능 공부를 하려고 했던 나는 감이당이란 곳에 와서 먹고 자고 돈 벌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 계속 ‘나는 수능을 봐서 한의대에 가고 싶어.’라는 욕망이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나는 이번년도 공부 프로그램들이 끝나면 내년에는 수능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런데 이 인연의 장을 다 끊고 혼자 수능공부를 하러 간다는 게 뭔가 아쉬웠다. 수능 공부는 지금 여기서 하는 식의 공부가 아니라 서로 점수로 경쟁하는 공부이고, 수능이라는 게 몇 달 준비한다고 점수를 잘 맞게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모로 자신이 안 섰다. 그리고 수능 공부를 하며 드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 거며, 스스로 혼자서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 오만가지 걱정만 산더미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여기서 공부하는 것과의 괴리감이 있었다. 감이당에서 내가 지금 하는 공부는 기존의 회로에서 탈주하는 공부이다. 다르게 방향을 틀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 서로 연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능이라니? 아마도 양립불가능이지 않을까.


행복의 관건은 의미에 대한 개인의 환상을 폭넓게 퍼진 집단적 환상에 맞추는 데 있을지 모른다. 내 개인적 내러티브가 주변 사람들의 내러티브와 일치하는 한 나는 내 삶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으며, 그 확신을 통해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꽤 우울한 결론이다. 행복은 정말로 자기기만에 달려 있는 것일까? 

(같은 책 553쪽) 

  내가 한의학을 공부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국가가 인정해주는 의사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은 마음에는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인정해준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과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일치한다면 나는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몸은 수능공부를 위해 전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이 괴리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의 이상과 현실, 그 괴리감

  내가 이 책을 통해 발견하게 된 내 모습은, 내가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그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사고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 없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따라서 지금 현재에서 다음 한 스텝이 무엇인지 무지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빚을 갚겠다고 해놓고 마이너스 통장을 계속 해서 쓰며 마음 한 구석에는 수능 공부를 품으면서 감이당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실 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고 같이 공부하고 어울려 지내는 것이 그냥 내가 원하는 게 아닐까. 근데 그걸 어떻게 오직 기존의 질서 안에서만 실현시키느라 이런 괴리감이 오고 번뇌가 오는 게 아닐까. 만약 이 모든 게 상상이라면 나는 어떤 상상을 해야 할까? 나는 어떤 존재인가? 스스로 상상한 질서에 스스로가 갇힌 느낌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느낌이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호모사피엔스_에세이_최연주.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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