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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공4기 2학기 에세이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서형 작성일19-07-06 21:53 조회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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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과 쾌락 그리고 불확실성 사이에서

 

1. 무기력하지만 편안한 게 좋아

요즘 부쩍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아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강렬하게 오는 게 딱히 없고, 강렬한 끌림조차 금방 시들어 버린다. 그런 것들을 강하게 추구하면서 무언가 해나가기 위해서는 힘이 드니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독립도 집 나가면 고생이고, 하기 싫은 알바도 해야 하고하면서 계속 미루게 된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서 이걸로 생계를 위한 일을 해볼 마음도 딱히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면서도 조급해진다. 조급증에 걸린 듯 불안함과 무기력, 가끔 명랑해졌다가 어느새 무기력의 상태로 돌아온다. 나를 내버려두지 못하는 망상들-자아를 확고히 하려는 몸부림이나 하기 싫은 것들에 대한 단순한 회피, 이걸 인식하는 순간 그 감정에서 벗어난 듯 보이지만 어느새 다시 그 늪으로 빠져버리는 습관이다. 그럴 때면 나는 무기력과 우울함과 결국 아무생각도 하기 싫어지고 시시껄렁한 유튜브로 생각을 차단해버린다.

환경오염을 걱정하면서도 (텀블러는 무겁고 귀찮으니까) 플라스틱 컵에 담긴 버블티를 마시고, 마음이 아프지만 움직일 공간도 없는 곳에서 성장촉진제를 맞아 살이 오른 닭이 튀겨진 패티가 들어간 햄버거를 (편하고 맛있으니까) 먹고, 새끼를 낳자마자 새끼와 떨어져 인간을 위한 우유를 생산하기위해 갇혀 사는 젖소의 우유로 만든 치즈가 들어간 빵을 (저렴하고 간편하니까) 먹고, 아이스 라떼를 (맛있으니까) 마신다. 나는 정말 환경을 걱정하고 희생되는 동물들에게 마음이 아픈걸까?

 

2. 사피엔스가라사대~ 행복하려면?

유발 하라리는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힘이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강해지고, 인간(세계)은 점차 더 하나가 되었는데 우리는 더 행복해졌는가?”하고 질문한다. 현대 인류는 현재 엄청난 힘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과 두려움, 우울감을 느낀다.

우리가 시간을 절약하기위해 발명한 것들은 오히려 우리의 인생속도를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과거 수렵채집인들의 일상보다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여유가 있어도 불안하고 때문에 그 여유를 걱정으로 채운다.

불행히도 지구상에 지속되어온 사피엔스 체제가 이룩한 것 중에서 자랑스러운 업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주위 환경을 굴복시키고, 식량생산을 늘리고, 도시를 세우고, 제국을 건설하고, 널리 퍼진 교역망을 구축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의 고통의 총량을 줄였을까? 인간의 역량은 크게 늘어났지만, 개별 사피엔스의 복지를 개선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른 동물들에게는 큰 불행을 야기하는 일이 되풀이되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p.587)

농업혁명과 함께 사피엔스의 진화적 성공은 개체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졌다. 외견상 성공을 구가한 것이 개개인의 큰 고통과 나란히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하게 될 것이다.(p.147) 세계의 연결망이 촘촘해지면서 우리의 비교는 세계적이 되었고 기대치는 올라갔다. 우리들은 점점 더 우리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며 우리의 물질적 환경에 만족하지 못한다.

하지만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의 행복은 외부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고 내부의 생화학 물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우리의 생화학 시스템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고 생존본능 때문에 만족은 오래가지 못하게 우리 몸은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만약 인간의 기술로 생화학적 시스템을 바꾸면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의 생화학적 시스템을 바꿔 우리가 쾌락적 기쁨을 느낄지라도 아마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 할 것이다. 이 가정은 행복과 쾌감이 동일하다는 생물학적 가정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쾌락은 더 많은 것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외부환경에 대한 영향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충만한 만족감은 삶의 의미를 찾으면 가능할까? 우리가 아는 한,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p.552) 우리가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무엇이 되었든 망상이라고 한다. 환상 속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고 결국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쾌감이든 의미이든 행복이란 주관적 느낌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된다. 불교에서는 감정은 매 순간 변하는 순간적 느낌일 뿐이다.

사실 우리가 스스로의 주관적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우리는 더 많이 집착하게 되고, 괴로움도 더욱 심해진다. 부처가 권하는 것은 우리가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는 것이다.(p.559)

내가 무기력한 이유는 농업혁명 이후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했지만 결국 행복에 이르지 못한 힘과 성취에 여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것들을 추구하기에 힘이 들고 결국 제대로 한 건 없지만 걱정과 불안으로 기력을 다해 무기력에 빠져버린 게 아닐까.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는 나와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나는 결국 무기력하다. ‘나 하나 실천한다고 달라지겠어?’하는 마음이 무기력인 것이다. 환경오염에 따른 지구온난화는 전 세계가 변하지 않으면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그 속에서 무언가 우리를 위협하는 사건이 터질 때까지 무책임하게 쾌락에 빠져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3. 불확실성, 질문의 회로를 바꾸는 훈련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정답, 확실성에 집착한다고 한다. 그는 인류에게 미래는 있는가?라는 강의에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무지함도 받아들이고, 정답 없는 질문에 대해서도 편하게 느끼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교육에 대한 방향을 이야기했다. 과학에서 배울 수 있는 확실한 것은 우리는 모른다.’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p.588)

내가 플라스틱을 쓰지 않거나 고기와 우유를 먹지 않는다고 세상이 바뀔지는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자포자기적 쾌락(무기력)과 완벽하게 제로플라스틱의 실천화, 비건이 되는 것 두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내가 실천 가능한 무엇이 있다.

문탁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내가 계속 쳇바퀴 같은 질문 속에서 정답을 찾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와 같은 식의 질문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 ‘나는 (스마트폰, 친구, 변화하는 이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을 수 있을까?’를 고민해 보자.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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