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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공 4기 2학기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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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수 작성일19-07-06 21:52 조회1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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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 42학기 / 사피엔스에세이 / 2019. 07. 07 / 현정희


기로에 서다

 

불멸을 향한 탐구, 길가메시 프로젝트

우리가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 비유기물공학을 이용해 자연선택의 법칙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면서 인류의 신체와 마음까지 조작할 능력이 발달되고 있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후계자들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을 지닌, 우리의 의식을 넘어선 차원의 신 비슷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 최종 목적인,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를 결국 성공시킬 것이라고 한다. 영원한 젊음을 얻고 창조와 파괴라는 신의 권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히 사는 게 좋을까?

게다가 인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무한한 혜택을 누릴 것인지, 아니면 멸종의 길로 접어들 것인지의 중요한 갈림길에 와있다고 한다. 우리의 선택에 따라 인류의 미래가 완전히 다른 두 방향으로 갈리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과 북쪽 사람들이 동일한 조건에서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 중요한 기로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지구적 통일 과정에 이를 수 있었던 이유, 협동

화폐 질서, 제국의 질서, 보편적 종교의 질서라는 세 가지 보편적 질서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세계 전체와 인류 전체를 하나의 법 체계로 통치되는 하나의 단위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공통의 신화를 기반으로 한 상상 속의 질서와 허구를 말할 수 있는 언어능력으로 인해 인류는 낯선 사람들과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다. 협동 덕분에 인류는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었고 지구에 혁신을 가져왔다.

농업의 산업화로 인해 노동에서 풀려난 수십억 명의 손과 두뇌로 도시의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로봇이 모든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게 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노동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진 전 세계의 인류가 모여 연구하면서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협력해 기존의 풍부한 에너지를 우리의 필요에 맞게 전환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협력이 필수적일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람들과 여러 조건들이 인류의 다음 단계로 접어드는 데 일조하게 될 터이므로 이들의 태도가 중요할 것이다.

 

소통으로 이끄는 길, 무지를 인정하기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시간과 에너지가 많아진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서 연대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협동해서 무얼 할지도 봐야하겠지만 우선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사람들과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현대 과학은 라틴어로 표현하면 이그노라무스ignoramus-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론도 신성하지 않으며 도전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356>

 

유발 하라리는 현대 과학이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 세 가지를 열거하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이다. 세상에 대해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여기던 때에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고 그것을 인정하는데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지의 혁명이었다. 현대인은 자신들이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새로운 지식을 찾아볼 필요성을 느꼈고 과학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해는 지적인 케노시스 뒤에야, 즉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우리의 마음에서 이미 받아들였던 관념들이 비워졌을때에야 찾아온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교양인, 668>

 

무지라는 위대한 발견을 함으로써 과학혁명이 가능했듯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존의 관념들을 비워내 주관적인 판단을 멈춘 상태에서 상대방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상대나 상대방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기비움을 통해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진실한 모습을 찾아서, 우리는 하나다

인류가 연대해서 서로 공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따뜻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자. 그런 상태에서 서로를 위해 행복한 삶을 사는 불멸의 신인류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영원히 산다는 것이 행복감을 가져다줄까?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사는 게 정말 좋을까?

육체가 있으니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고, 편의에 따라 생각하고, 이해득실을 따지거나 심신의 안락함을 추구하게 된다. 번뇌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의식적으로 깨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렇듯 산다는 건 계속 마음을 들여다보고 순간순간 도를 닦으며 수행하는 것인데 영원히 살고 싶을까? 오히려 이 숙명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 신들은 집착에서 고통이 일어난다는 법칙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모든 집착에서 해방되었다면, 어떤 신도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일단 어떤 사람의 마음에서 집착이 일어나면, 우주의 어떤 신도 그를 번뇌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김영사, 322>

 

마음에 집착이 일어났을 때 어느 누구도 구해주지 못하는 반면, 자신이 모든 집착에서 해방된다면 어떤 것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결국 해방에 이르는 길은 나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다. 번뇌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영원히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해서 번뇌를 떨쳐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영원한 젊음을 얻으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불교에 따르면 보통 사람은 진정한 자신에 대해 모르며 따라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감을 쾌락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느낌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부처의 중요한 통찰은 진정한 행복은 주관적 느낌이나 감정과도 무관하다고 보는 점이라고 한다. 외적 성취의 추구뿐 아니라 내면의 느낌에 대한 추구 역시 중단하라는 것이다.

행복을 얻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 즉 자신이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데 있다고 한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이 뭘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우리가 하나라는 믿음이 아닐까? 전 인류가 하나로 이어져있으며 결국엔 공생해야 한다는 믿음이 아닐까. 상상의 질서로 인해 가능해진, 커지는 파이의 존재도 알게 되었으니 공생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상생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이 중요한 기로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올바른 답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미래의 인류가 무엇을 욕망하도록 설계해야 할까?”라는 질문이 그렇게 섬뜩하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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