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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공 4기 2학기 에세이

게시물 정보

작성자 약수 작성일19-07-06 21:52 조회1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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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7./청공42학기 에세이/최재윤

 

행복, 자신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

 

 

나에게 가치를 부여해줘!

 

인간의 삶은 절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류는 목적이나 의도 같은 것 없이 진행되는 눈먼 진화과정의 산물이다. 우리의 행동은 뭔가 신성한 우주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다. 내일 아침 지구라는 행성이 터져버린다 해도 우주는 아마도 보통 때와 다름없이 운행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부여하는 가치는 그것이 무엇이든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552~3pg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출판

 

나는 이 부분이 <사피엔스>의 핵심이자,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상상의 질서, 공통의 신화, 집단적 상상력 등등. 여러 표현과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길게 풀어놓았지만, 결국 한마디로 이야기 하면 이거다. “네가 믿고 따르고, 추구하는 그것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건, (, 국가, , 인권 기타 등등) 모두 다 우리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뇌를 벗어나면 그것들은 어디에서도 존재할 수 없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게 너무 어렵다. 머리나 입으로는 얼마든지 , 인간의 집단적 상상력이 이러한 문명을 가능하게 했구나.’라고 떠들 수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거북했다. ‘우리의 주관과는 상관없이 외부의 객관적인 가치와 질서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고집을 부렸다. 왜 이런 거북한 마음이 들고,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지 스스로 설명하다 보니, 좀 많이 옛날로 돌아가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왕따를 당했다.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자주 하던 말이 이거였다. “, 너 왜 사냐? 나 같으면 진작 죽었다.” 너 같은 건 살 가치가 없다는 식의 말을 끊임없이 내 의자와 머리를 툭툭 치며 내뱉었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이 내게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놈들 덕분에 내 주변에 다가오는 친구들은 없었다. 위협만 할 뿐, 멍이 남거나 뼈가 부러지는 식의 폭행을 당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도 별거 아니라는 시큰둥한 반응이셨다.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고립된 내가 들을 수 있는 나에 대한 평가는 그 아이들이 내뱉는 말들뿐이었다. 정말 나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떨치기 위해 내 가치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11살의 나는 객관적인 수치가 나오는 성적과 등수를 끌어들였다. 학원을 다니고 성적이 잘 나오고 그 아이들이 공부 잘하는나를 괴롭히기가 어려워졌다.

사실 이러 저러 했다라는 구체적인 사건들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의 존재를 외부의 가치를 통해 증명해야한다는 발상을 하고, 그런 믿음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알게 모르게 계속해서 내 행위와 존재를 인정해주고, 의미를 부여해 줄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학위, 자격증, 돈 등등. 내 마음 속에서 성적의 자리를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계속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사회질서의 허구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가치를 부여해줄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행복, 자신의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

 

행복이란 불쾌한 순간을 상쇄하고 남는 여분의 즐거움의 총합이 아니라, 그보다는 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아기 독재자의 비참한 노예로 볼 수도 있고, ‘사랑을 다해 새 생명을 키우고 있는 사람으로 간조할 수도 있다. 그 큰 차이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체계이다.

-552pg, <같은 책>

 

11살의 나는 왕따 당하는 자신의 불쾌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성적이라는 외부의 가치체계를 끌어들였다. 전략은 유효했고 나는 성적이 잘 나와서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났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구성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문제집을 풀고 영어단어를 외우는 순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지만, 나는 그 순간들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시 11살짜리가 중학교 수학공식을 외우면서도 불행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나는 나보다 앞선 시대를 산 사람들이 엄청 힘들고 어려웠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근데 한편으로 그들은 나보다 손쉽게 행복해질 수 있었다. 중세 카톨릭 사회에서 매일 밭고랑을 메느라 허리가 휘는 농민은 하느님천국이라는 집단적 환상을 통해 자신의 삶을 총체적으로 의미 있게 인식할 수 있었다. 외부의 가치를 끌어와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작업이 너무나도 잘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아무도 그와 다른 이야기를 펼치지 않았다. 자신의 믿음이 깨질 위험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런 안정성과 연속성을 기대할 수가 없다. 나는 삐삐를 드라마 속에서나 보고, 나보다 조금만 어린 아이들은 전화버튼이 왜 수화기 모양인지 모르는 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속도다. 더구나 우리는 한꺼번에 많은 가치들을 볼 수 있다. 옛날에는 해봐야 평생 살아가면서 한 두 개의 종교만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슬람, 기독교, 유대교, 유교, 불교, 힌두교 등등을 모조리 다 접해볼 수 있다.

너무 많고, 너무 빨리 변한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의 가치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중세 농민이 자신을 행복하다고 느꼈던 방식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쓴 내용은 나에게 수동적으로 외부의 가치가 부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과 이제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는 행복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랑이나 성공과 같은 가치들이 좋아 보이고 추구하고 싶다. 이런 가치들을 통해 내 삶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의미화를 해내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외부에 이미 만들어져있는 사랑과 성공이 아닌, 나의 사랑, 나의 성공을 새로이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연애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지? 라고 안절부절 못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나한테 연애라는 게 뭐지? 나는 성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지? 라고 질문해보는 것이다.

어쭙잖지만 내 입으로 사랑은 무엇이다’ ‘성공은 무엇이다라고 계속 풀어보는 거다. 물론 20, 30, 40대의 내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내가 구성하는 그 가치들도 매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할 것이다. 결론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최종 결론 같은 게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떠한 가치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되도록 많이 알고, 깊고 넓게 이해하려는 것이다. 확고한 결론을 채택하고 논의를 마무리 지으려는 마음은 <사피엔스>를 쓴 유발 하라리의 태도와는 정반대되는 마음이다.

이 끝없는 작업을 긍정하고 기꺼이 할 수 있는 것이 지금으로썬 내가 풀어놓을 수 있는 내 삶에 대한 의미이다.

 


사피엔스 최종.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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