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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숙제방

청공4기 2학기 최종에세이 이준혜

게시물 정보

작성자 준혜 작성일19-07-06 21:42 조회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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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42학기 1교시 / 에세이 / 2019.07.07. / 이준혜

 

 

울타리 밖에서의 나

 

울타리 안에서

나는 을 진로선택 조건의 우선순위로 두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솔직히 한심하다고 까지 생각했다.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 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사피엔스 p.537)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돈만을 쫓아가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서 해주셨던 말들이다. ‘을 우선시 하지 않는 것은 부모님의 교육관이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은 내 기억 속에서 정말 그렇게 살고 계셨다. 내가 진로선택 조건으로 을 우선순위로 둔 친구들을 한심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부모님의 교육관, 정확히는 부모님에 대한 동경이 가장 큰 이유였다.

내가 12살이 되자 통장관리를 직접 하게 되었다. 명절에 받은 용돈이나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 같은 것들을 어떻게 쓸지 내가 직접 결정하게 된 것은 12살짜리에게 엄청난 일로 다가왔지만, 사실 특별히 하는 것은 없었다. 정기적으로 받는 용돈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가끔 내가 쓸 돈을 조금 빼서 입출금 통장에 넣어두고 나머지는 모조리 적금통장에 넣는 일이었다. 오가는 곳이 학교랑 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내가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은 용돈을 주셨다. 필요한 것이나 필요하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것도 대부분의 경우 사주셨기 때문에 솔직히 크게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그저 시간이 갈수록 쌓이는 통장잔고를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하는 일에 전부였다.

통장잔고에 집착하게 된 나

최근 몇 년 사이에 나의 씀씀이가 빠른 속도로 커졌다는 것을 느낀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의 씀씀이가 다르고 6개월 전의 나와도 다르고 어쩔 때는 어제와 오늘의 씀씀이가 다르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요즘에 일주일에 한번 씩 서울을 오가게 되면서도 역시 씀씀이가 커졌다. 씀씀이가 커질수록 나에게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통장잔고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입출금 통장에 여기저기서 받은 용돈들을 넣어두고 쓰고 있는데, 돈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돈을 쓰고 내가 얻은 것에 대한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아깝게 느껴진다. 정확히는 통장잔고가 줄어드는 것이 아깝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단순히 아까운 것이 아니라 통장잔고가 줄어들수록 내가 누군가에게 짓밟혀지는 기분이다. 문제는 그 이유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돈은 모두 누군가가 주신 돈인데, 그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나 그 분들의 마음 씀씀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냥 통장잔고 숫자가 내 씀씀이가 커질수록 점점 더 중요하게 느껴지고, 숫자가 줄어들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기분이 든다. 이 사실을 모른 척하다가도 어느 순간 마주하게 되면 나 자신이 너무 파렴치한 것 같다는 생각에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사치품과 필수품

앞으로 내 씀씀이가 얼마나 더 커질지, 지금까지는 어떻게 커져왔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분명히 나에게 5천원은 큰 가치로 여겨졌는데, 지금의 나에게 5천원은 친구와 밥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수 있는 정도로 여겨진다.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사피엔스 p.135)

사피엔스에서 유발하라리는 사치품이 필수품이 되고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하였다. 어쩌면 나의 씀씀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사치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필수품이 되면서 점차 커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나는 얼마나 많은 지금의 사치품들을 필수품으로 여기게 될까. 앞으로의 내가 커피를 즐겨마시게 된다면 하루에 5천원을 커피 값으로 지불하는 것은 아주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사치에 길들여지면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5천원을 주고 마시는 커피가 전혀 아깝지 않을 테니까.

 

울타리 밖에서 내가 느낀 것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건축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고 건축에 나름 관심이 있으니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 예전이라면 이해할 수 없다고 한심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날 나는 친구를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까지만 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사피엔스 p.537)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내가 점점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통장잔고가 많이 쌓인다면 지금처럼 통장잔고가 줄어들 때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짓밟히는 기분이 들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나는 이 막연한 기대를 할 자격(?)조차 없다. 지금 내가 사회에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은 사실 아직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다들 나에게 자립에 대해 걱정을해야 하는 나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도 나는 부모님 아래에서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나는 계속해서 통장잔고에 집착한다. 그리고 부모님이 주신 돈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막상 보면 내 통장에 들어있으니 내 돈이라는 착각에 빠져버린다. 굉장히 오만하고 부끄럽고 우스운 착각이다. 이런 착각을 하는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인다. 한가지, 이 착각으로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내 친구들을 한심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부모님 교육관 안에서 안전하게 이상적인 것들만을 보았다. 때문에 내가 말하는 한심해질틈이 없었을 뿐이다. 나는 부모님의 교육관을 조금만 벗어나도 돈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절실히 원하게 되고, 그만큼 통장잔고에 짓밟힐까봐 두려워하고 내가 말했던 한심한에 가까워진다.

 

요즘 나의 생각

그렇다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일까. 그저 돈을 따라가는 게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그리고 만약에 내가 통장잔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나는 자유로워지기를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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