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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공 4기 2학기 에세이

게시물 정보

작성자 연주 작성일19-07-06 16:56 조회11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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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공4기 2학기 / 호모 사피엔스 에세이 / 2019.07.04. / 이연주


내가 사는 것이 즐거운 이유


 학교에서 오이디푸스 비극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 있다. 인간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예언을 들어버린 그 시점부터? 예언을 듣고 끔찍한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 출가한 시점부터? 어느 순간이 시발점이 되었든,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들어버렸고, 자신의 행동으로써 그 운명의 조각을 맞춰버렸다. 이미 들어버렸다는 것에서부터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것은 내가 남산강에서 공부를 하면서 축의시대, 호모 사피엔스와 같은 책들을 ‘읽어버린’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대, 오늘 날 ‘공부’라는 것은, ‘앎’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배움으로써 행복해지나? 나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이성을 만나 연애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가부장제라는 억압적 구조를 실감하게 되면서 더 이상 이러한 구조에 내 자신이 소모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자유주의관점에 대해, 자본주의의 무서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소비의 즐거움이라는 허상을 깨닫고 이를 경계하게 되었다. 

 이 자본주의라는, 가부장주의라는 구조적 모순과 억압을 ‘알아버린’ 나는 행복한가?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사피엔스는 과학기술의 힘을 입어 이제는 신의 흉내를 내려고 한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또한 이 사회의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피엔스는 지적인 설계자가 되었고, 이러한 기술력으로 우리 스스로를 파괴해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함을 갖춰버렸다고(p562). ‘이렇게 까지 기술발전을 이룬 우리 사피엔스 여러분. 우리 행복합니까?’ 하고 저자는 묻는다. 이러한 질문을 내게로 가져와 봤을 때, 위에서의 질문과 같이 나는 대답할 수 있다. ‘나는 매우 행복합니다.’


 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이렇게나 암담한데. 우선 배움이라는 행위는 나에게 매력적인 것이다. 무지를 자각하는 그 순간, 나에게는 무수한 기회가 주어진다. 오늘의 세상은 나에겐 어제와 다르다. 동일한 자연현상, 사회현상을 보고도 나는 어제의 배움을 통해 다른 시각으로써 바라볼 수 있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기회와, 내가 다른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심리가 현대 과학이 무지를 받아들이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현대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이 크게 확대되었다.(p359-360)


  물론 배움의 영향만으로 이 세상이 핑크빛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내가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힘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이 견고하게 굳어져있는 사회를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구조적 모순을 깨닫는다 해도, 개인의 행위로는 구조적 변화를 야기하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한 개인은 누구라도 그 존재를 위협할 수 없다. 만일 나 혼자 달러나 인권, 미국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해도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며, 이를 변화시키려면 수십억 명의 의식을 동시에 변화시켜야 한다. ... 그러니 현존하는 가상의 질서를 변화시키려면 그 대안이 되는 가상의 질서를 먼저 믿어야 하는 것이다. ... 상상의 질서를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우리가 감옥 벽을 부수고 자유를 향해 달려간다 해도, 실상은 더 큰 감옥의 더 넓은 운동장을 향해 달려가는 것일 뿐이다. (p177)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행위의 힘을 믿는다. 내가 4년 반 동안 대학생활을 하면서 한국 사회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촛불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정권을 교체시켜버린 경험과, 남북한이 정상회담을 통해 종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개개인 한명 한명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나오는 행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정권이 바뀌어버린 사회, 종전선언을 하고 난 후에 거시적으로 다가올 우리 세대의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짜릿하다. 오늘을 살아가는 내 개인의 행복과는 별개로, 변화한 세상이 어떻게 다가올지, 그 사회에 대한 무지는 또 나에게 어떤 기회를 줄지 생각해보면 두근거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라는 개인이 남들이 이해 못할 정도로 낙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관점에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구조적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한 번도 사회로부터 자유로워 본 적이 없다. 오늘날의 나는 대학 졸업예정자로서, 앞으로 취업준비를 주구장창 해야할 시기이다. 대학 들어간 순간부터 교수님들은 우리의 졸업과 동시에 시작될 지옥의 취업관문에 대해 너무 잘 알려주셨기 때문에 벌써 망한 것 같은 느낌이다. 교수님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이미 경제 불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얼마나 암담한 경제사회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잘 이야기 해줬다. 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모르는 정말 이 사회에 던져진 스펙 하나 없는 무능력자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회가 나를 어떻게 무능력자로 만들어 가는지를 알고 있다. 그간 해온 인문학 공부와 대학에서 쌓아온 배움의 경험을 통해서 말이다. 이제 나는 이렇게 나라는 개인을 상정하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며, 이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배움의 이유와 방향은 바로 그러한 길을 다져주는 것으로 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사회 이렇게 암담해, 자본주의가 우리는 모두 노예로 만들고 있어’ 이러한 감상만을 느낄 시절에 나는 이렇게 배움이 즐겁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 하면 할수록 불행해지기에 곧 잘 매너리즘에 빠지곤 했다. 다만, 이 배움과 무지의 마주침이 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옴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배움의 즐거움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내가 호모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도 기회에 대한 희망 덕분이었다. 유발 하라리가 그리는 사회는 매우 암담하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이다. 실제로 사피엔스종이 스스로 인류를 멸망해버릴 단계까지 도달했음에 의심이 없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얼마나 암담하고 무서운지 묘사해놓고 인류가 어디로 흘러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지도 않은 채 사라져 버렸다. 다만, 이 공부가 던진 단하나의 질문이 나에겐 앞으로도 공부해야 할 의미를 주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p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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