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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자스쿨 4기 청공 4기

청공 3기 3학기(청공4-1학기) 3주차 후기 (2)

게시물 정보

작성자 류수정 작성일19-03-12 10:32 조회78회 댓글3건

본문

이번주의 낭송은 아함경 초기 불경이다. 우리는 아함경을 절반을 읽어온 사람도 있고, 읽고 싶은 부분만 읽어본 사람도 있고, 물론 ek 읽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낭송 아함경의 특징은 짧은 글 위주로 편집하였기 때문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아함경 낭송의 시작은 내가 골라온 아함경 서문 10 page 였다.

고통을 일으키는 조건이 동시에 깨달음의 조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붓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함경 10 page) 인간 세상의 고통은 해탈의 방해물이 아니라 조건이 된다. (아함경 서문 14 page)

1교시에 스피노자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이제 니체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스피노자는 결핍이 또 다른 조건이 되어, 그 조건위에서 새로운 자유를 생성할 수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꼽추라는 몸의 장애를 결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반 정상인의 몸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새로운 관점에서 예술이 탄생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의 길이 탄생하기도 한다. 무언가를 결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조건으로 상정하면 우리는 또 다른 자유를 생성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고통의 순간은 해탈의 방해물이 아닌 조건이 된다고 한 부처님과 스피노자는 너무 닮아 있었다. 내가 지금 가장 고통 받는 그 지점이 진정으로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지점이다.

자비심은 누구나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들임을 믿는 마음이다. (아함경 10 page)


삼성 이건희 회장이 꼬맹이 였을 때, 삼성에 출근하여도 모두가 그에게 인사하였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나중에 자라서 삼성에 어느 한 자리는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모두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존재이다. 비록 지금 니체가 이야기한 난쟁이와 같은 사람이지만, 우리는 언젠가 거인이 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자비심을 행해야 한다.

자비 그것은 아프지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윤리이다 (아함경 14 page).

붓다는 상황과 장소, 듣는 사람의 수준과 처지에 따라 매번 구체적이고 생생한 비유를 들어 설법했다. 이를 대기 설법이라 한다. 설법의 유일한 기준은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지혜의 문은 그것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 지혜의 문은 그것을 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다.....자기 생각을 절대 바꿀 생각이 없는 자가 물어 오면 붓다는 대답하지도,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았다. 붓다의 자비심은 한편으로 이렇게 가차 없는 것이기도 하였다 (아함경 10 page).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대답하지도, 심지어 쳐다보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제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재확인하기 위해 질문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무엇을 배울 때 있어서, 대답을 들을 준비, 내가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확인해 봐야한다. 재밌는 점은 부처의 자비심은 한편으로 이렇게 가차 없는 것이 기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참 매정하게도 들리지만, 모든 만물이 부처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니더라도 제자에게 다른 부처가 다른 스승이 와서 깨달음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부처는 가차 없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는 세존께서 어떤 나무 밑에 앉아 선정에 들어 계신 모습을 보았는데, 엄숙한 얼굴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모든 기관은 맑고 고요하며, 마음은 극히 조용하여 잘 길들여졌으며, 정관(경계를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 것) 을 성취하여 풍채가 빛나고 의젓한 것이 마치 금산과 같았다.

우리는 정관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경계를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조차 잡히지 않을 때, 지원쌤이 연기론에 근거하여 관찰하는 것 같다고 하였다. 연기론(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무아(내가 없음)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서 궁궐 밖에서 늙고, 병들고, 죽은 자들을 보면서 이것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항상 변하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결핍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는 우리의 모습으로 조건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또 다른 자유를 생성할 수 있다. 우리는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같이 모습이 항상 변하고, 그 변하는 조건에서 우리의 시간과 공간의 장의 이해하고, 새로운 리듬으로 맞춰야한다. 늙어서 몸이 뛰지 못한다는 몸의 결핍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늙어서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면서 못 보던 것들을 볼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이 있다. 노안이 결핍이 아니라, 세상을 새로이 볼 수 있는 관점일 수 있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인식할 만큼 변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계속적으로 우리는 변하고 있다. 숨을 마시고 내뱉는 동안, 단 순간도 우리는 같지 않다. 우리는 몸이라는 물질의 한계성이 있고, 이 한계성의 조건은 매 순간 변한다 (숨을 뱉고 마시는 것과 같이, 늙고 죽는 것과 같이). 그러니 매 순간 변하는 몸의 조건을 바르게 인식하면, 매 순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의 몸이 어느 하나의 상에도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매 순간 변하는 몸의 조건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조건을 잘 이해하고 그 순간 가장 이로운 것을 향해 가면 그 안에 자유가 있다. (부처는 아마도, 숨 쉬고 그것을 인식하는 모든 존재는 모두 해탈할 수 있다고 했을 것이다. 숨 쉰다는 것이야 말로, 항상 마시고 뱉고 하는 단 순간도 정지해 있지 않는 하나의 상으로 갇혀있지 않는, 매 순간의 변하는 몸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행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고집멸도의 이야기를 하였다.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느낌)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법

비유하자면, 사내가 하나의 독화살만 맞고 두 번째 독화살은 맞지 않은 것처럼, 그런 때를 당하면 오직 한 가지 느낌만 일으키니, 몸의 느낌만 일으키고 마음의 느낌은 일으키지 않는다. (중략) 즐겁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고, 괴롭다는 느낌과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서 해탈하여 묶이지 않는다. 무엇에 묶이지 않는가? 탐욕, , 어리석음에 묶이지 않고, 태어남, 늙은, 병듦, 죽음과 근심, 슬픔, 번민, 괴로움에 묶이지 않는다.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에 우리는 모두 공감을 하였다. 우리는 물리적인 첫 번째를 화살을 맞고 난 뒤, 두 번째 정신적인 화살을 일으킨다. 몸과 정신의 리듬은 같이 간다고 하는데, 당연히 몸의 화살을 맞았으니, 정신의 화살도 그 리듬에 따라 두 번째 화살을 맞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물리적 아픔을 넘어선 더 큰 감정을 만들어 낸다. 그 화살이 어디서 왔는지, 그 화살을 쏜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쏘았는지를 생각하면서 더 큰 미움과 화를 키우면서, 자신에게 독을 만들어 낸다. 첫 번째 독은 물리적으로 치료 가능하다. 그러나 두 번재 화살은 물리적 치료가 아닌, 스스로 만든 감정이므로, 스스로 치료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으면 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욕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법

욕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법

만일 어떤 사람이 꾸짖으면 꾸짖음으로써 갚고, 화내면 화냄으로써 갚으며, 때리면 때림으로써 갚고, 싸우면 싸움으로써 갚는다면, 그것은 준 것이 되고 받은 것이 된다. 빈기가야, 꾸짖어도 꾸짖음로써 갚지 않고, 화내도 화냄으로써 갚지 않으며, 때려도 때림으로써 갚지 않고, 싸워도 싸움으로써 갚지 않는다면 그것은 준 것도 아니요, 받은 것도 아니다. (중략)

화낼 마음 없는데 무슨 화냄이 있느냐/ 바른 생활로 화냄을 항복 받고/ 바른 지혜로 마음이 해탈하였으니/ 지혜로운 사람은 화냄이 없느니라// 화냄으로써 화냄을 갚는 사람/ 그가 바로 나쁜 사람이니/ 화냄으로써 화냄을 갚지 않으면/ 항복받기 어려운 적을 항복받으리.

이렇게 그 사람이 행한 그 마음대로 갚지 않으면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 화냄을 화내지 않고, 싸움을 싸움으로 받지 않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알고 행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사람들이 나 화나지 않았어라고, 이야기 하면 사람들은 말로만 저렇게 하고 사실은 화가 난 줄 안다. 겉으로 화를 내지 않아도, 마음으로는 화가 나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화를 내지 않아서, 화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한 것은 세존이니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남동생이 누나에게 시비를 걸어오면, 그 시비가 얼마나 유치한 것인 줄 아니, 화도 나지 않느다. 내가 유치원 조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유치원 조카에게도 화를 낸다) 이미 깨달은 세존(부처)가 보기에 이것이 얼마나 유치한 것 인지 알기에 화를 낼 마음도 없다고 이야기 하였다. 다른 대화도 오갔지만, 나는 이 대답이 가장 좋았다. ㅋㅋ (열정이 왜 수동의 감정인가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지만, 개인적 이야기 많아서 생략)

세존이시여, 그 사람들이 저를 죽인다면, 저는 모든 세존의 제자들은 몸을 싫어하여 칼로 자살하기도 하고, 독약을 먹기도 하며, 노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기도 하고, 깊은 구덩이에 몸을 던지기도 한다. 저 수로나 사람들은 어질고 착하며 지혜롭다. 썩어 무너질 나의 몸을 조그마한 방편으로써 곧 해탈하게 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

훌륭하다 부루나야 너는 인욕을 잘 배웠구나.

너는 인욕을 참 잘 배웠구나. 누군가가 나에게 모욕을 주면 나는 그 모욕을 모욕으로써 갚는다. 그러나 부루나는 그 모욕을 자신의 해탈의 조건으로 삼는다. 모욕을 통해 해탈의 조건으로 삼는 순간, 우리는 인욕을 배울 수 있다. 인욕을 배운다니, 너무 신선하고 좋은 표현이고, 깨달음이다. 우리의 장애, 결핍의 대상이 사실은 우리를 해탈로, 자유로 가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사진 수업은 오늘 이론 수업이었다. 셔터 스피드, 조리개, 심도 등을 배웠다. 그리고 7개의 프레임에 대해서 배웠다. 사진 수업은 후기를 남길 수 없는, 감각적인 강렬함이 있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나의 감각을 인식할 수 있다. 내가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어떠한 형태로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아 내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인식하는 구나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숙제로 내준 인물의 7개의 사진을 제출하는 것은 작곡과 같다고 하였다. 하나의 리듬을 갖춰야 한다고 했다. 그 리듬은 천편일률적인 감정이나 모습이 아닌 사진이 찍히는 그 사람의 리듬을 잘 보여주는 작곡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보는 우리 엄마는 어떤 리듬의 사람일까 열정적인 라틴리듬일까, 한 많은 굿거리장단일까, 아니면 고풍스러운 바로크 음악일까 또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음악일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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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엘림님의 댓글

김엘림 작성일

처음 접하는 경이라 저는 너무 좋았답니다~~~ 수정쌤이  어머님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음악이고 예술이네요^^ 이번주에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저도 한번 고민해 봐야겠어요~ 사진이라는게 글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번주도 정성스런 후기 감사드려용!^^

류수정님의 댓글

류수정 댓글의 댓글 작성일

엘림쌤 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야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야식을 멈출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였어요. 감정은 힘이고, 힘은 물리학입니다. 그렇기에 야식을 먹어서 만들어지는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보다, 야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더 큰 기쁨을 생산해야 합니다. ㅋㅋ 그런데 야식을 먹는 기쁨이 너무 큰데, 어떻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을 생산하죠? ㅋㅋ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장서형님의 댓글

장서형 댓글의 댓글 작성일

야식을 먹는 기쁨보다 큰 기쁨을 생산하는데에 동참하고 싶습니당~~
저도 저를 드러내는게 두려울 때가 종종 (사실 많이) 있는데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나를 드러내는 지점을 찾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