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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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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감시와 처벌 2

게시물 정보

작성자 진성 작성일17-09-01 22:40 조회17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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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감시와 처벌/감옥의 역사> 2


[감시와 처벌] 두 번째 시간을 맞이해서 조별 토론 시간에는 나도 모르는 권력의 내재화(내 안의 파시즘)’, ‘권력은 부정이라기보다 능동적인 것’, ‘규율이 신체와 힘의 완전한 복종을 의미한다면 대의제에 대한 회의감’, ‘늦잠을 잘 때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현실(규율권력)’, ‘CCTV 등에서 나타나는 감시-보호라는  이중적 인식의 문제점’, ‘공동체 윤리와 순종적 신체와의 차이점등 다양한 주제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첫 번째 시간(1~2부 신체형-처벌)에 비해 이번 시간(3~4부 규율-감옥)에 읽는 내용들이 보다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좀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튜터샘(신근영샘)의 강독과 여러 도반들의 토론 내용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간단히 정리한 것입니다.

 

1. 규율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감시와 처벌]에서는 규율 또는 규율 권력이 굉장히 중요한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의 정확한 의미는 처음에 다소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책에서는 신체에 대한 면밀한 통제, 지속적인 복종의 확보,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방법이 곧 규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한 규율은 신체와 힘을 분리시킨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규율이 유용성(경제적 관계) 측면에서는 소질, 능력 등을 증대시키는 반면 복종(정치적 관계) 측면에서는 에너지()를 감소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체는 주어진(정해진) 일에서는 규칙에 따라 업무를 척척 수행하지만 새로운 국면에서는 바로 무기력해질 수 있습니다. 규율 권력에 예속화된 신체입니다. 권력 관계는 모두 힘의 차이(기울어진 운동장)’를 수반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힘을 특정한 방식 또는 방향으로만 쓰도록 하는 것이 규율 권력이라고 합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의 확대 재생산이죠. 이렇게 신체를 특정 양식으로 배치하고 정형외과적으로 새로 창조하는 방식이 규율입니다. 무기력해진 신체는 스스로 수동적이 되고, (에너지)을 역전할 수 있는 자유의지는 차단됩니다. 즉 역전 불가능이 곧 규율 권력이라고 합니다. 이는 근대 서구에서 나타난 특이한 사유 체계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인간과학(인문과학)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신체 자체를 조작 가능한 것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근대의 신체에 대한 태도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릅니다. 또한 권력과 지식의 관계도 더욱 공고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정상성과 순종하는 신체

근대는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세밀하게 구분하고 정상성에 순응하도록 하는 사회입니다. 표준분포의 중심과 같은 평범함, 평이함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써 강요되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벗어날 경우 바로 비정상인으로 분류되는 것이지요. ‘정상성이 규범으로서 아예 공간 내에 구조화되어 있어 이를 벗어난다는 게 가장 두려운 일이 됩니다. 바로 순종하는 신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서는 정상성을 벗어날 경우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완전히 무능력해 집니다. 푸코가 말하는 생명(생체) 권력은 인간 개체를 정상성에 계속 진입시키고 또한 이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를 탈피할 수 있는 역전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소위 정상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로 바라보는 방식은 근대 서구의 특이한 사유 체계일 뿐이라고 합니다. 니체의 사유 방식이나 동양적 사유 방식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니체는 귀족적인(고귀한, 독특한) 것과 노예적인(비천한, 평범한) 것을 구분하고, 귀족적인 것의 추구를 통해 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양에서도 사람이 추구해야 할 것은 성인(聖人)이 되는 방식이었죠. 

 

3. ‘역전 가능성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감시와 처벌]은 답을 제시하기 보다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제기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이 책을 읽다 보면 판옵티콘’(모든 것을 다 감시하는 체계)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할지 여부가 궁금해 집니다. 우선은 모든 권력 관계는 물리성(,에너지)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힘은 항상 양방향성이라는데 희망이 있습니다. 둘째, 모든 힘은 다양한 방식으로, 잡종 형태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위치를 조금만 바꿔도 어쩌면 확연히 다른 권력 방식이 전개될 수 있습니다. 셋째, 권력은 항상 생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힘을 쓸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힘을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 이러한 권력 관계는 바뀔(역전될) 수 있습니다. 규율에 대해 아니오라는 단 한 마디의 말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예를 들면 건강식품구매 충동에서 산책으로 전환) 새로운 권력 관계를 바란다면 다른 신체성을 가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역전 가능성을 증대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겠죠. 권력의 장()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여기(내 안의 파시즘)에서 욕망의 배치를 바꾸려고 할 때 비로소 권력 관계가 전환될 수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강요되고 있는 규율에 고착되지 않고 계절이 변하듯 항상 다른 방식으로 기운을 쓸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간식 준비는 역전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강요된 규율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 9/10일 오전 9시부터 3학기 에세이 발표가 있습니다. 모두 잘 마무리 하시고 기운찬(?)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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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까망닭님의 댓글

까망닭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
저도 지금 후기 쓰려고 하는데 후기를 보면서 후기를 쓴다는.....
역전가능한 신체가 되려고 하지만 매번 지연시킴에 익숙해진 이 길들여진 신체는 어찌할까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