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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감시와 처벌 1부~2부-김은영

게시물 정보

작성자 멀리보기 작성일17-09-01 15:28 조회130회 댓글0건

본문

<푸코의 감시와 처벌/감옥의 탄생>


8월 20일 푸코 첫 번째 시간

죄를 지으면 교도소에 집어넣고 형을 부과한다. 이게 이상한 형벌인데 우리는 당연하게 여긴다. 살인이나 절도죄에 상당한 것을 해야 하는데 아무 상관없이 사람을 어디다 넣기 시작했다. 감금했다는 사실이 정신병원의 역사랑 같이 간다. 감금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특이한 사건이다. 푸코의 놀라운 점은 우리가 당연히 그렇지, 너무나 당연해서 우리가 질문한번 던져보지 못했던 지점에 우리를 데려다놓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감옥. 감옥은 감금의 장소, 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지는 어떤 장소가 내부에 생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 내부에 생긴다. 예전에는 도시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어 추방형이 가능했다. 지금은 비어있는 공간이 없어 추방형이 불가능하다. 이런 외부적인 형태가 내부에 자리잡기 시작했는데 그게 감옥이라는 형상으로 자리잡는다.

책 읽을 때, 교화의 어느 부분에서 어느 부분으로 강조점이 이동했나, 처벌의 지점들도 어떤 지점으로 리듬들을 새롭게 조율해 나갔는가 보아야 한다.

신체형의 핵심은 권력의 주권자이다. 권력의 소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주권이다.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가, 힘이 누구에게 있는가,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주권이다. 이 주권적인 권력으로는 오늘날의 권력에 접근할 수 없다고 푸코는 말한다. 이것은 과거의 군주제의 형식인데 군주가 가지고 있었던 권력을 상처 낸 형벌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권력이 상처받았다는 분노와 복수. 분노와 복수가 정밀한 절차에 의해 잔인함을 통해 권력을 다시금 활성화시키데 사법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의 불균형을 다시금 되찾는 것이다. 이 사회가 불균형이니 다시 균형 잡자고 형벌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주가 소유하고 있었던 강력한 힘의 불균형을 다시 회복하려면 강력하게 그 힘을 보여주어야지 불균형이 된다. 역전 불가능할 정도의 불균형. 이걸 통해서 그걸 보는 사람들은 교화가 이루어진다. 역전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신체형이고 잔인하고 아주 화려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다. 신체를 해체하는 방식이든 소멸시키는 방식이든 죽음 쪽으로 다가가는 방식으로 권력이 작동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게 변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이성이 점점 더 발달하고 우리의 인도주의적인 휴머니즘의 발전에 의해서 잔인성이 줄어들었다. 과거와 같이 강력한 권력이 아니라 지금은 권력이 더 많은 견제를 받고 있고, 무조건적인 권력으로 작동할 수 없는 어떤 힘의 약화가 휴머니즘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여기서 푸코는 두 가지 질문을 한다. 그게 정말 휴머니즘의 발로냐? 인권, 인간성의 발로냐? 정말로 권력이 약화된 거냐? . 결론을 말하면 점점 이성적으로 되고 점점 더 강한 휴머니즘에 의해서 형벌제도가 개선되었다. 그거에 반비례하면서 권력이 점점 약화되고 권력자체가 감시되어졌다는 방식이 우리가 느끼는 근대, 현대에 대한 감각이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발견되었다. 인간, 인간성이라는 것이 발견되었다. 과거에는 그런 방식으로 어떤 세계를 바라보거나 범주화해서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오히려 권력이 미세한 부분까지 침투해 들어가는 더 확장된 형태가 되었다.

안전조치의 목적은 범죄를 처벌하는 데 있지 않고, 개인을 감독하고 그의 위험한 상태를 제거하고, 그의 범죄적 소질을 변화시켜서 그러한 범죄를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너무 무서워 그래서 범죄 못 저지르겠어, 가 아니라 성향, 소질을 변화시킨다. 공포, 무서워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어서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재판관은 범죄 이외의 것을, 즉 범죄자의 정신을 재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재판관이 하던 세 가지, 첫째는 범죄의 인지, 범죄는 일어났는가, 정말로 일어났는가, 두 번째로 그 범죄를 누가 저질렀는가, 주동자인가, 즉 책임 주체의 인지, 실제 형법상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즉 법률의 인지를 하면 되는데, 실제로는 이제는 형사재판에 그것들과 전혀 다른 진실의 문제가 추가된 것이다.

이 책의 목표가 근대적 정신과 새로운 사법권력과의 상관적인 역사를 밝히는 것이다. 근대적 정신의 핵심은 휴머니즘, 인간, 인간성이다. 우린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인지한다. 나는 인간이다, 라고 말한다. 예전에도 인간이었지만 푸코는 우리를 인지하는, 나를 문제화 하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동일한 물음은 계속 있었지만 매번의 역사들은 서로 다른 문제화의 방식을 보여준다. 근대화의 문제화의 핵심이 푸코는 인간, 휴먼이라고 한다.

43~59쪽을 주로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1) 억압적인 효과와 제재의 측면에 집중하지 말 것. 우리에게 있는 권력은 못하게 한다, 막는다, 부정적인 것, 푸코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 우리는 억압당한다고 생각하지, 누가 우리를 억압하지? 우리는 언제부터 권력을 억압당하는 것으로써 느끼게 되었는가, 이것이 근대적 정신이다. 처벌을 복합적인 사회기능으로서 파악할 것, 즉 처벌은 단지 우리를 못하게 하는 억압과 제재가 아니라 뭘 하게 만드는 복합적인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2)기술로 파악할 것, 징벌은 정치적인 테크놀로지다. 정태적, 이론적, 추상적으로 보지 않고 전술로 보아야 한다. 이 시기부터 푸코는 정치를 전쟁의 모델로 생각한다. 권력은 나와 너 사이에 이루어지는 어떤 합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폭력, , 힘과 힘의 충돌, 누가 힘을 쟁취할 것인가, 의 문제다. 힘 싸움이다. 권력은 누가 소유하고 있지 않다. 누군가가 권력을 소유해서 나를 압제하는 방식이 아니다. 권력은 어떤 특정한 힘의 배치이다. 어떤 관계도 힘이 동등하게 갈 수 없다. 모든 관계는 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푸코는 말한다. 권력은 누가 소유해서 줄 수도 없고 양도할 수도 없다.

푸코는 지금의 사회에서 외부가 없다. 외부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외부자의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나는 권력속에 들어와 있고 권력 밖에 있지 않다. 나는 권력을 생산하는 신체이지 누군가 생산한 권력에 당하는 입장이 아니다. 내 자신이 권력이고, 내 자신이 권력의 배치를 유지시켜주고 있어서 권력밖이 없다. 내가 권력의 거점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는데 그 권력의 거점은 나다. 나를 억압해서가 아니라 내가 적극적으로 그 권력을 생산하기 때문.

(3)인간과학, 인문과학은 인간에 대한 과학이다. 근대정신의 탄생을 어떤 앎의 정신과 관련시킨다. 인간에 대한 과학이 탄생했다는 것.

(4)신체를 다루는 방식에 어떤 지식이 결합하면서 이후에 근대적인 권력의 배치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 신체가 없어지고 정신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신체와 정신이 같이 간다는 것, 분리된다는 것이 특수한 것이고, 정신은 신체이기도 한 것이고 어떻게 신체를 다룰 것인가, 어떻게 이 신체와 접속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전의 권력은 신체 자체를 목표로 삼지 않았다. 내 신체를 어떻게 하겠다, 관리해주겠다, 생명을 잘 관리해주겠다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신체를 수단삼아 자신의 강력한 권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잔인함이 목적이었다. 군주는 힘이 관심이었지 신체에 관심 없었다. 푸코는 신체와 정신을 구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신체에 작동하는 권력은 아니었다. 지금은 정신에 작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신체에 작동하고 있다. 여러분은 권력, 어떤 힘의 배치가 생산한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다. 그 신체를 가지고 이 권력의 배치를 재생산하고 있다. 우리는 힘 덩어리다. 우리는 만나면 힘의 충돌이 생기고 뭐가 일어난다. 정신을 바꾼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힘의 배치를 바꾸는 것이다.

이 게임판 외부는 없다. 이 게임을 다르게 둘 수는 있다, 푸코한테는 자유는. 이 게임을 그만둘 수도 없고 이 게임판 밖에 자유가 있지도 않다. 우리의 자유는 인간과학시대에 인간을 다르게 가지고 얘기하는 방법이 필요. 밖에 있는 누군가를 상상한다면 그런 존재는 없다. 윷놀이에서 고스톱으로 바뀌어야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해서 고스톱치고 싶다고 하는데 이건 불가능하다. 그런 자유는 환상이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 우리한테 있는 자유는 이렇게 게임하기 싫다는 것이다. 권력 없는 세계는 유토피아고 어디나 권력관계 에 들어가 있고, 지금은 이런 권력관계다. 이 게임판의 규칙이 뭔지 알아야 게임을 다르게 가지고 놀든 뭐든 한다. 맞으면서 게임을 배울래? 맞다 죽어. 맞기 전에 게임규칙을 알려준다. 게임을 다르게 운용할 수 있다. 게임의 규칙은 어떤 사람이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양한 장치와 지식들이 있다. 누구 하나에 의해 완벽하게 뒤집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소적으로 서로 다른 리듬들이 만들어지는데 순간적으로 공명하면서 이전에 없던 것이 부상하게 된다. 그래서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지만 모두의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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