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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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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철수 작성일19-11-03 15:25 조회332회 댓글1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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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리토를넬로는 알아차리지만, 생활에서 리토르넬로는 찾기 어렵다.


지난 11 2일 수업에서 많이 나왔던 도식은 이런 거였다.

A ? B ? A’ ? C ? A” ? D - … - A

A에서 시작해서 A’, A”, A’’’로 변해가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 B, C, D와 같이 완전히 다른 것들이 들어가고(만들어 내고), 이들을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주는 A의 계열이 리토르넬로다. A계열은 음악(혹은 삶)을 끌고 가는 반복구에 해당하며, B, C, D와 같은 것이 주인공이 되게끔 묶어주는/이어주는 역할을 해 음악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A계열은 끊임없이 변주되는 반복이며 B에서 C로 이행시키게끔/변하게끔 해주는데, 같은 A, A, A들의 반복이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A, A’, A’’와 같이 차이(A’ vs. A’’)를 만들어 냄으로써 B에서 C로의 이행이 가능해진다.


나는 음악에서 리토르넬로 중심으로 그 음악을 다른 음악과 구별한다. B, C, D와 같이 구별 가능한(하다고 하는) 것들을 비전공자인 나는 잘 잡아내지 못한다. 익숙한 구절, 반복되어 흥얼거리는 구절들만으로 나는 그 음악을 구별하는데, 전공자들이나 음악을 세심하게듣는 이들은 반복구들이 어떻게 바뀌었고, 그 사이에 들어온 새로운 부분이 어떤 것들인지 명확하게 짚어낸다.

음악은 그렇다 치고, 생활에서는 어떤 양태를 띨까? 내가 일상을 겪으면서 리토르넬로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내가 나일 수 있는 것, 항상성. 이러한 항상성은 명백하다. 수업시간에 근영샘도  (1) 내가 끊임없이 차이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며, (2) 시간적으로 끊임없이 뭔가로 이행해가고 있기 때문이며, (3) 다른 배치로 이행해 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내가 나라는 것은 알겠는데, 내가 어떤 차이를 생성해내는지차이를 생성하고 있음에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럴 거 같다.) 너무나 사소해서, 내 생활에 서걱거리지 않고 반복되는 매끈한 지점, 그래서 틀림없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각되지 않는 지점. 그 지점에 힘이 있다고 했다. 그 힘의 방향을 바꾸면 분자적 힘이 그램분자적 차이를 만들어 낼 거 같은데참 거창하고 거칠며 관념적인 말이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지점을 깊이 들어가서, 그것(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이 내 신체, 내 일상에 어떻게 밀고 들어갈 수 있는지를 세심하게 보라는 주문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받고 있다. 적게는 8, 길게는 몇 년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것을 안 하는 걸까?


박자적 삶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면 망하기 쉬운데. 망하더라도 후기니까남기는 의미에서 적어보자.) 회사에서 생활양식, 어떻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대하고 시간을 대하는지. 이것과 남산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텍스트와 숙제를 대하고, 시간을 대하는 방식. 그냥 회사 모드, 강학원 모드, 집모드이렇게 다양한 모드(혹은 페르소나)를 가지고 때에 따라 필요한 것을 끄집어 내어 필요에 따라 생활하는 방식을 /나는/ 바람직한 방식이라 여겼다. 시공간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이 다르고, 그렇게 필요한 것들이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라고 여겼다

(각설하고) 그런데, 들뢰즈/과타리는 이런 것들을 하나의 리듬으로 꿰어내는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 꿰어 하나의 스타일로 만들 것. 물론, 이것을 하나의 에고로 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의 스타일로 만든다는 것과 어떤 하나(에고)로 환원시켜서 작동하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어떻게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일까? 그렇게 해보면 된다라는 답이 나오기는 할 텐데만나는 질문은 언제나 난감하다따지고 보면, 음악을 이해해서 들을 수 있는가? 그냥 몰라도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냥 행하고 실험하면 되는데 왜 이런 앎을 실험하지 못하는 것일까? 저 놈의 가 또 달라 붙는다.


이번 주 발제는 엇비슷한 부분을 해오셨는데, 충무샘, 미자샘이 첫 부분을 나와 호정샘, 지안샘이 뒷 부분을 해왔다. 충무샘, 나, 지안샘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 받았다. 크고 멋진 그림인데, 혹은 너무나 많은 재료를 사용한 그림인데.... 실제로 경험하기에는 거친 부분이 많고, 하나로 엮어내기에는 좀 힘이 모자랐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호정샘에 대한 코멘트에서 제가 적은 부분은 이렇습니다. "매순간 자신을 탈영토화 시키려는 힘을 가진 것이 리토르넬로, 혹은 화두!" 호정샘에겐 니체의 영원회귀가 그런 부분인가 봅니다. 영원회귀의 방식이 분자적인 측면, 과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당연한 이야기인데, 우리는 그램분자적인 층위에서 과정보다는 벌어진 사건(결과, 그램분자적 현상)에 방점을 찍다보니 제대로 몰라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후기를 쓰면서)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미자샘의 코멘트는 근영샘이 해주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런 거 보면... 미자샘의 발제가 이번주 "勝!!"이라고 선언해봅니다. 


요청: 수업 시작 시점에 번역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셨는데, 그걸 제대로 필기를 못했네요. 꼬리말로 달아주시면 아주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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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오 철수샘, 이렇게 빠른 후기~
아직 어제 배운 것을 정리도 못했는데 후기를 읽었네요.
요청하신 번역만 먼저 올립니다.
593쪽 6번째줄 방향적 성분과 내부배치물->차원적 성분과 내부배치물
596쪽 3번째줄 리듬을 갖는 것은 차이이다. 또 반복은 분명 차이를 낳지만 리듬을 갖지는 않는다->리드미컬한 것은 차이이지 반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은 차이를 생산한다.

철수님의 댓글

철수 댓글의 댓글 작성일

은경샘의 꼼꼼한 메모, 대단히 감사합니다. 킹왕짱!!!

에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에민한코끼리 작성일

저도 철수샘과 같이 수업 이후로 박자적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박자적 삶과 분주함, 리듬을 타는 삶과 간소함.
변용, 변주를 리듬과는 잘 연결짓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단절과는 다른 변주, 일상을 관통하는 리트로넬라의 차이 나는 반복이
이렇게 안 와 닿는 건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거 같습니다.
어떤 반복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씀도 있었네요.
일상을 지층화된 영토성의 반복과 이행하는 과정의 반복이라는 말과 연결지어서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후기 감사해요~

철수님의 댓글

철수 댓글의 댓글 작성일

말은 알 거 같은데, 쓰려면 써지지 않는 지점인거 같습니다. 리듬과 박자도 그렇네요.
일단 지르기... 지르기로 저는 방향을 정해 봅니다. ㅎㅎㅎㅎ

중성미자님의 댓글

중성미자 작성일

저에 대한 코멘트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 얘기를 저의 독립상황과 연결을 해서 발제를 했는데, 발제를 하면서 리듬이 중요한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고민을 했으나 제 나름대로 정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한가지 드는 생각은 리듬이 둘 사이에서 생긴다고 하는데 왜 사이라고 한걸까 의아해 했는데, 이제 보니 박자가 단절의 방식이라면 리듬은 박자와 박자 사이에서 흐름을 만드는 것이니 둘 사이에서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발제를 준비할 때 박자는 '안주하는 삶이야'라고 정말 퉁 치면서 지나가 버렸는데요. 내가 정말 고민해야 할 지점을 여전히 놓치고 있었습니다. 철수샘 말대로 거기를 보라고 여러 번, 몇 년을 들었는데도 보지를 않으니(애써 안 볼려고 하는 건지)어찌하면 좋을지--;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전제가 무엇인지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철수님의 댓글

철수 댓글의 댓글 작성일

'그냥 하면 되잖아!!!'
'뭘 알아야 하죠.'
'뭘 하든 질러봐야 그 다음을 알지... 그냥 알 수 있는 게 있을 거 같애?!!'
- 이 소리는 머리속에서 들리는 가상의 대화였습니다. 누구와의 대화인지는 모두들 아실 듯.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작성일

철수샘 후기 감사합니다!
토요일에 밥당과 발제와 후기까지 생일 맞으셔서 ㅎㅎ 축하해드렸는데
깨알같은 후기 읽으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흐르네요. ㅎㅎ

지난 시간 '되기' 장에 이어 저는 이번 장도
발제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재밌고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비록 잘 전달이 안되었음에도...(쩝)
역시 재료는 한 가지만 써야 한다는 것을 '몸소' 겪었지요. 왜 그런 경험들 있으시잖아요.
글쓰기 할 때도 다 쓰고 나면 그때부터 '이걸 써야겠다' 라고 느끼거나,
결론 지점에서야 아 처음부터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라고 느끼게 되는 것.
긍정적 마인드로 사태를 바라본다면,
글을 썼기에 잘못된걸 느끼고 발표를 했기에 망한 지점을 느꼈다는 것이겠죠.
간소함의 태도가 생성에서 필수적이다는 얘기를 이보다 더 비-간소하게 말할 수 없었겠다 싶었던.. 
구체적인 예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적, 실제적인 예시라는 것에 대해 저에게는 다큐나 신문기사보다 시가 훨씬 실제적이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사실 구체적으로 드러난 일화 자체가 저한테 어떤 새로움을 주거나 변용을 주지는 않았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가 현상을 너무나 피상적인 것으로만 여긴 것이 문제 같기도 합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인데...)
실제로 텍스트가 제게 올 때 그것이 만나는 지점이 실체적으로 구체화되기 이전의 느낌과 감성에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추상적이지 않게 전달,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구체적 상황에 환원되지 않으면서도 '통'하게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항상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출발은 작고, 사소한 간소함으로부터!

철수님의 댓글

철수 댓글의 댓글 작성일

"글을 썼기에 잘못된걸 느끼고 발표를 했기에 망한 지점을 느꼈다는 것이겠죠."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지점을 일케 콕 찝어낼 수 있는 행운~~~.
이걸 능력이라고 이야기하면 너무 샘이 나니까요.
과정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잘못이나 망한 지점을 느낀 것은 부산물 정도로 여기게 되겠지요.
물론, 이 부산물이 다시금 되먹임되어 과정을 풍성하게 만드는데 거름이 되어야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그나저나... 전쟁기계는 언제 읽나. -.,ㅡ

줄자님의 댓글

줄자 작성일

수업후 ㅈ모임에서 저희는 리듬을 만드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아요.
구체적으로 다솜이가 제기한 자신의 문제 - '늘 허겁지겁 다닌다" 이 박자에서 벗어나 어떻게 리듬을 만들수 있을 것인가?
8명이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정말 깊이 들어가기 쉽지 않더라고요. 철수샘이 강조하신 것 처럼 그냥 하면 될텐데, 웬지 몰라서 못하는 것 같고. 더이상 지각은 하지 않으면 리듬이 된 것인지, 다른 박자를 만든 것은 아닌지. 박자와 리듬은 나무와 리좀, 지도와 사본처럼 계속 왔다갔다 할텐데...
그냥 실험을 안하고 싶어 몰라서 안한다 라고 '퉁'치며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철수님의 댓글

철수 댓글의 댓글 작성일

'퉁~'치며 사는 삶!!!
너무 익숙한 방식이네요. ㅎㅎㅎㅎㅎ
여기에 힘이 있지 않을까요? 절대 안서걱거리니까요.
어떻게 퉁치는지를 살펴보면 되겠다. 어떤 퉁~~~이냐... 그걸 잘 보면 수가 보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