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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6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코스모스 작성일19-10-17 02:38 조회327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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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8장 1874년 - 세 개의 단편소설, 혹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와 9장 1933년 - 미시정치와 절편성을 공부했습니다. 입발제는 내용에 충분히 들어간 다음 그것을 통해 무엇을 만났는지 말하는 시간인데, 저는 8장 요약 정리를 해서 근영샘께 더 이상 책과 따로 놀지 말고 삶으로 빠져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선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나서야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제 말만 고집하는 습관도 있는데 그래서 더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8. 세 개의 단편소설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근영샘은 소설은 '사건의 세계'를 보여준다고 명쾌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사건입니다. 그렇다면 사건은 어떻게 발생할까요? 중요한 것은 어떤 것과 짝을 짓느냐, 계열화입니다. 다른 것과의 계열화를 생성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사건이 아닌 사고일 뿐입니다. 나라는 자아역시 하나의 사건, 즉 어떻게 계열화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계열화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계열화의 양상이 달라지면 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정된 과거가 있거나 미래가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계열화에 따라 가치가 결정되고 사건은 가치값을 가집니다.


소설은 또한 비밀의 형식, 망각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기존의 자아를 해체하는 것, CsO를 통과하는 망각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건들을 겪으며 우리는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형식도 그림자도 없고 섬광만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단절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암시와 확증이 있고 외부로 향하는 흐름들, 유연한 분할선이 있습니다. 이 분할선은 잘 짜여진, 견고한 분할선과 끊임없이 간섭하고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9. 1933년 미시정치와 절편성

우리는 모든 곳에서, 모든 방향으로 절편화됩니다. 그램분자적인 절편성과 분자적 절편성은 모든 사회와 개인을 가로지릅니다. 이 두 절편성은 항상 서로를 전제합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인데 거시정치인 동시에 미시정치입니다. 파시즘 또한 분자적인 체제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계급적이고 그램분자적인 층위에서는 반파시스트일 수 있습니다. 남녀차별에는 누구나 반대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분자적인 층위에서는 파시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저 몇 년 전 담임을 하면서 동성애자인 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담임했던 학생들 중에서 제일 힘들었던 경우였는데 돌이켜 보면 학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 자세에 파시스트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과 여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남성안의 여성,여성안의 남성, N개의 성이 있다고 하는 지점에서 저는 어느 순간 걸려 넘어진 것 같습니다.


세 가지 선-견고한 분할선, 유연한 분할선, 도주선이 갖는 위험이 네 가지 있습니다.

공포,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분자적인, 미시층 층위에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버릴 때도 얻는다는 조건에서 놓습니다. 근영샘이 하신 말씀 중에 싫어하는 마음으로는 아무 향기도 맡을 수 없다고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계산하는 순간 우리의 변신능력은 사라집니다. 보상의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사랑에 빠집니다. 무의미 속에서 사랑은 생명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잃는 것이 두려울 때 사랑은 지옥이 됩니다. 이항적 선택지 위에서의 사랑은 자유가 아닙니다.

두번째 위험은 명확함입니다. 미시파시즘은 현미경적 시선을 가졌습니다. 미시파시즘은 유연한 선 위에서 떠다니며 세포 하나하나에 젖어듭니다. 세번째 위험은 권력입니다. 권력은 반드시 자기 안에 공백, 결핍을 만듭니다. 즉 고장나는 것이 권력의 내적요소입니다. 안전이라는 권력 때문에 끊임없이 공포, 불안이 재생산됩니다. 이것이 권력의 근본적인 무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혐오가 있습니다. 죽이고 죽고 싶다는 욕구가 혐오입니다. 파시즘은 혐오입니다 . 결핍에서 출발하는 혐오는 다 싫고 귀찮고,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것이며 다 죽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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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저역시 네 가지 위험 중에서도 공포, 그 중에서도 '조건부 잃음'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의미화를 시키고 그걸 전제로만 잃을 수 있다는 말에 엄청 찔렸어요.
근영샘 말씀대로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아주 근원적인 곳, 무의식 깊은 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공부의 의미를 묻게 될 때가 있는데, 공부를 통해 무엇을 얻게 된다는 생각 자체가 필요 없다는, 누누히 들어 왔던 말을 다시 한번 새기고 갑니다. '닥공'^^
무의미에 몸을 담갔다가도 금방 견고한 선분성에 갇히게 된다니,
내가 의미화하고, 합리화하고 있는 언표를 끝까지 추척해 파헤치는 일이 공부요, 글쓰기 과제일 거 같습니다.
핵심만 뽑은 깔끔한 정리, 감사합니다.

호호미님의 댓글

호호미 댓글의 댓글 작성일

'닥공'..ㅎㅎ 오랜만에 듣는 말인데 반갑네요!
(상해공항 14시간 체류 중 읽으니 넘 재밌는 후기와 댓글)

김미솔님의 댓글

김미솔 작성일

저도 이번에 처음 입발제를 하면서 그 묘미를 알게되었습니다(부끄러움의 묘미..^_^!)
무슨일이 일어났는가?가 다름아닌 단절이라는 것을 알고나서 어찌나 황망했는지요
당황했던만큼 평소보다 엄청나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 내려놓고 현재를 살려고요 흐흐흐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호미님의 댓글

호호미 작성일

바다샘(맞지요?)께 어떤 계열화가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어떻길래 샘이 천개의 고원의 단편소설을 궁금해하시구 계속 읽게 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조별모임에서 앞으로 어떤 말씀들을 새롭게 들려주실지~ 기대합니다!!!

단호박님의 댓글

단호박 작성일

대충 봐서 그런지 단편소설부분도 매혹적인데 구체적으로 나와 줄긋기가 잘 안되었는데 선생님들의 입발제 덕분에 '계열화'와 '단절'을 알게 되었어요..

'내'가 바뀌면 '과거'도 바뀐다는 말이 피상적인 말이었는데 '계열화'와 더불어 생각하니 구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도마뱀이 꼬리를 끊고(절단하고) 달아나는 것은 자신의 변형생성 없이 순간을 모면한 것이지만 카멜레온이 풀잎되기를 하거나 바위되기를 하여 자신의 몸을 바꾸는 것은 과거 자신과의 단절이 되는 것이겠지요?

늘 순간만 모면하며 관계맺고 공부하는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지만 그 또한 6강이 선물한 귀한 깨침이라 생각합니다.

샘들 모두 고생하셨고 감사해요~

솜다님의 댓글

솜다 댓글의 댓글 작성일

'순간만 모면하며 관계맺고 공부하는 내 모습'이라는 문장이 참 공감되네요. 지난 시간에 배웠던 단절과 절단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를 하나의 선을 새로 긋는 단절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 들다가도. 사실 방법을 모른다기 보다는 하기 싫어서 (힘 들이기 싫고 지금도 그럭저럭 살만 하니) 계속 내가 뜸들이고있는 게 더 큰 문제이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허허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작성일

지난시간 함께 한 부분을 한 큐에 정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바다샘. 계산하는 순간 변신의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말씀이 많이 와닿습니다.

지난시간 저의 질문, 나는 왜 여기서 공부를 하는가? 라는 질문에서 '나는 왜 이 질문이 드는가?' 까지 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보았는데요. 일차적으로는 발제 때 언급한 변형과 변신, 혹은 절단과 단절간의 착각이 있었습니다. 내가 하는 공부는 변신이 아니라 변형에 머물렀고 단절이 아니라 절단이었구나 하는 자각. 그래서 발제를 마칠 때 쯤엔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왜 변신이나 단절이 안되지? 무엇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있을까...그리고 근영샘의 강의를 들으며, 또 조별 토론 시간에 호정샘의 질문 '샘 공부하실 때 재미있지 않으세요?' 을 들으며 이 문제가 조금 정리가 됩니다.

즉 '의미화'란 것은 매우 은밀하고도 강력하게 내 삶을 지배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 어쩌면 문제는 이 '재미'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저는 제가 지금까지 공부에 특히 이 곳에서 하는 공부에 어떤 의미를 찾지 않는다고 스스로 여겨왔습니다. 예컨대 누가 저에게 너 정말 열심히 산다. 주말에도 공부하고. 이렇게 말했을 때 저는 늘 아 글쎄 열심히 한다기보다 난 그냥 재미가 있어서 하는거야. 라고 말했고 실제로도 저는 공부를 할 때 재미를 느낍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 아마도 처음에 제가 가진 문제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을 시점부터 차츰 이 재미라는 것이 또다른 하나의 의미화로 자리를 잡아 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재미라는 것이 의미화되는 것은 꽤 기묘한대...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아요. 절대 목적처럼 여겨지지 않고 어떤 자연스러운 생성물처럼 느껴지지요. 그리고 분명 그렇게 기능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몸이 안 좋거나 여러가지 상황들이 겹쳐 좋지 않으면 순간 이 재미라는 생성의 기쁨이 의미화와 목적으로 포섭되면서 앞의 상황들과 힘겨루기를 하게 되는데 이 때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나는 공부를 왜 하지? 내가 이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이 시점에서 재미는 이미 목적이 되었기에 추구하는 것이 되는데) 지금 이 상황보다 중요한가? 이런 문제들로 환원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이 의미화의 순환고리에 일단 들어가면 바다샘께서 마지막에 잘 정리해 주신 이 '위험들'의 구멍에 빠지게 된다는 것. 재미가 의미화되어 계산되는 순간에 벌어지는 일들이 이러하다는 것을...아... 이제 깨닫습니다.

백명자님의 댓글

백명자 작성일

고미숙 선생님 유투브를 자주 들어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를 배우고는 싶고 어떤프로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60이 넘은 사람도 배울 프로그램이 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