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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 5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brisa 작성일19-10-06 21:43 조회172회 댓글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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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공정하게 발제자들의 가위바위보 결과를 통해 후기작성의 영광을 맡게 된 박주영입니다. 천개의 고원 5주차에는 6기관없는 신체에 관하여:“인간은 자신이 본래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7얼굴의 정치학 : 얼굴의 권력, 권력의 얼굴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서형샘과 유리샘은 6장과 관련하여 희영샘과 저는 7장의 내용중에서 발제를 했는데요. 이번에는 발제 내용보다는 저희 발제 스타일 및 토론과정에 대해 근영샘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내가 강렬하게 만난 부분에 대해 발제해야 하는데 해석 위주로 하거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천개의 고원을 사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도 강조되었지만 이 책은 이해하거나 해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우린 참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내가 이 내용을 알면 잘 하겠지, 일단 이해해야 사용할 수 있다는 강한 습을 버리기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6, 7장이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강렬하게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내 문제로 연결시키지 못했어요. 즉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에 빠져 내가 책과 만났다고 착각만 하고 이 책을 통해 내 삶의 변화를 가져올 질문 하나 끌어내지 못했네요. 발제 외에도 토론시 6, 7장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장에서 들뢰즈/가타리가 하는 얘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이 주제에서 잠깐 나오는 개념(ex: 되기의 문제 등)에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원시인의 얼굴 없음과 보편적이지 않은 얼굴성과 관련하여 저희가 되기를 논의할 때 되기서양인-되기와 같이 잘못 사용했던 것이죠. ‘되기는 다수적인 것에 사용하면 안 됩니다. ‘되기는 중심에서 벗어나는 소수성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호랑이-되기’, ‘유목민-되기는 가능하지만 부자-되기’, ‘백인-되기는 모순적인 것입니다.


    6장은 CsO(기관없는 신체)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저희는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처음 접한 CsO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CsO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욕망과 쾌락의 관계였는데요. 정신분석은 욕망이 출산이나 생식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욕망에 결핍이라는 부정적인 법칙을, 쾌락이라는 외적 규칙을, 환상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새겨 넣는 새로운 수단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들뢰즈/가타리가 말한 욕망이 외척 척도인 쾌락과 맺고 있는 사이비 관계, 마치 욕망은 쾌락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처럼 생각해왔습니다. 즉 나의 미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케익을 욕망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연인을 욕망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들뢰즈/가타리는 쾌락은 긍정적 욕망의 연속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지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천개의 고원297p)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쾌락이 우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네요. 이와 관련된 내용은 300p에서 더 자세히 다뤄집니다. 외적 쾌락의 포기나 지연, 쾌락에서의 무한한 멀어짐은 오히려 욕망의 승리를 나타낸다고 하네요. 저희가 생각하는 욕망과 쾌락의 관계와 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쾌락의 달성이야 말로 욕망의 목적일 것 같은데, 쾌락과 멀어지는 것이 욕망의 승리라니. /가는 쾌락이 인격, 주체와 관련 있다고 합니다. 쾌락은 인격 또는 주체의 변용이며, 인격이 자기를 되찾기 위한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실제 우리에게 자아라는 주체는 너무 견고하며, 우리는 쾌락을 통해서 자아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는 자기를 되찾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궁정풍 연애를 들어 설명하며 자아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 서로 마음의 통하는 것으로서의 환희(joi), 시험 등 쾌락적이지 않는 사랑법에 대해 알려줍니다. /가는 오히려 오르가슴같은 강렬한 쾌락은 욕망에게 오히려 난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쾌락이 욕망 자체의 흐름, 즉 내재성의 흐름이 되도록 하는 것에 있고, 욕망이 쾌락을 척도로 삼지 않는 것은 결핍 때문이 아니라 욕망의 긍정성, 욕망이 진행과정에서 그리는 고른판 때문입니다. 항상 강렬한 쾌락을 향해 질주하고 그 다음에 공허를 느끼는 이러한 반복 속에서 지내왔기에, /가가 얘기하는 욕망 자체의 흐름으로서의 쾌락은 지루하고 권태롭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강렬한 쾌락에 중독되어 왔기에 소소하고 작은 쾌락은 느끼지 못하고, 과정은 목표달성이라는 강렬한 쾌락을 향하는 길의 수단으로서만 존재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예를 들어 오르가슴이 목표인 연애에서는 서로 마음 통하는 것으로의 환희는 별로 느끼지 못하고, 마음 통하는 것은 오르가슴으로 가는 길의 하나의 단계일 뿐이겠죠. 시험 합격이 목표인 공부에서는 앎을 습득하는 기쁨은 약하게 느끼거나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러한 기쁨도 시험합격으로 가는 길 속에 묻힙니다. 사실 그렇게 과정이 중요하다고 듣고 배웠으면서도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쾌락을 향해 달려가고 쾌락 달성 후 과정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글쓰기, 읽기가 최고의 과정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듭니다. 글은 강렬함의 기록이며 내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 드러납니다. 내 자신이 강렬함을 생성하지 못하면 글이 밋밋할 수 밖에 없죠. 이번 저희의 입발제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과정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물음중 하나는 목적은 없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것이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달성해야 할 목적은 없지만, 강렬함에 대한 비전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비전은 닿을 수 있는 것을 잡지 않는 것인데, 지평선처럼 결코 도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비전은 우리를 멈추지 않게 합니다.


   7장은 얼굴성에 관한 것입니다. /가가 만든 얼굴성이라는 개념은 저에게 매우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얼굴을 흰벽-검은 구멍이라는 체계로 보는 것도 신선했고, 이 개념을 통해 여러 가지 현상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죠. ‘얼굴성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면 교육 등을 통해 훈련받고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얼굴은 신체로부터 절대적으로 탈영토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체와 감정이 완전히 밀착되어 있던 원시인에게는 얼굴이 없었고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죠. 얼굴에 대해 이해가 잘 안 된다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감정노동을 떠올리면 됩니다. 원시인에게 있어 화가 날 때 웃음짓는 얼굴은 있을 수 없어요. 화가 나면 바로 화를 내거나 공격을 하겠죠. 우리는 사회적인 얼굴인 페르소나가 너무 익숙하기에 오히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물질과 관련없는 표정들인 얼굴, 광고는 얼굴 위에서 움직입니다. 상품의 세계는 그야말로 얼굴의 세계라고 보면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미지’, ‘평판등 일체의 것들이 얼굴입니다. 그리고 얼굴에서 중요한 것은 얼굴에는 타자가 없으며 중심으로부터의 격차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나치 등 인종주의자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수 있는데, 이들은 백인과 백인을 기준으로 해서 나뉜 황인, 혼혈인, 흑인 등으로 분별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백인으로 되어야만 하는 즉 얼굴화되어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나치 뿐만 아니라 국민’, ‘학생’, ‘직장인으로서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는 우리는 이 얼굴에 적합한 이미지를 갖고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즉 신체로부터 탈영토화된 얼굴이 오히려 신체를 억압하는 기체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한편 얼굴과 함께 출현한 것이 풍경입니다. 우리에게는 대상으로서의 자연, 즉 풍경이 너무나 익숙합니다. 그러나 원시사회와 비교해보면, 자연의 수많은 흐름들이 원시인들을 통과했습니다. 즉 자연과 교류하는 세계로 호랑이를 통해 호랑이의 용기로 내 몸을 채울 수 있고, 자연의 흐름이 나를 통과하듯이 내 흐름도 자연을 통과하는 그런 세계였습니다. 흐름들이 막힌 대상으로서의 자연, 객관적 세계로 출현하는 것들(비록 사람일지라도), 이런 것들이 다 풍경입니다. 예를 들어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나오는 건후와 같은 아이들은 풍경인데, 나는 그 아이들을 대상으로서만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아이들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거죠. 대상으로서의 아이는 너무 천사같이 예쁘지만, 직접 대면하는 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삶으로 존재하고 내가 직접 행했던, ‘육아’, ‘연애’, ‘효도’, ‘친구들과의 수다등 온갖 것들이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명목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보면서 풍경이 점점 확대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와 함께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얼굴이 강화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는 검은 구멍의 바닥에 있는 얼굴 같은 구릿빛 홍조. 그것에서 예술, 즉 정신으로가 아니라 삶, 실제의 삶으로 빠져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천개의 고원356p)라고 말하며 얼굴성이 아닌 실제 삶으로 들어가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책을 대상으로 읽기보다는 책이 우리를 관통해가는 것, 내가 책을 관통해가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네요. 이 문제가 저에게는 숙제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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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이라는 문구^^
맞아요. 뭔가 이해한 거 같으면 거기서 끝. 더 안 돌아보게 되는 거 같아요.
뭔가 손에 안 잡히는 구절이 있어야 그 구절을 가지고 오늘은 이렇게, 내일 저렇게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래 생각하다 보면 문득 길이 살짝 보이고 내 경험과 쬐끔 연결이 되고요.
그 과정이 즐겁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은 글은 조금은 또 달라지는 거 같기도 하고요.
일주일 동안 샘도 저도 각자 꽂힌 문장을 가지고 이리저리 잘 놀다가 만나 보아요.
선생님의 명쾌한 어휘들 덕분에 뭉쳐 있던 내용들이 정리되었습니다.

쓰담쓰담님의 댓글

쓰담쓰담 댓글의 댓글 작성일

저도 '이해하는 쾌락'이란 말에 탁 꽂히네요~
꽂힌 문장이 있어도 거기 등장하는 개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정작 문장은 안 보고 다른 데서 개념 찾기에 바빴던 것 같네요;;
문장을 가지고 노는 과정에 집중하기~ 책읽기에 필수적인 비전이겠습니다!!ㅎㅎ

석영님의 댓글

석영 작성일

ㅎㅎ 샘의 ‘자기 문제 풀기’ 숙제를 격하게 응원합니다!!
‘욕망의 승리상태’-즐거움을 어떻게 계속 지속시킬 수 있을까요?
조모임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작고 구체적인 땅뙈기에서!
예를 들면 밥을 하는 태도, 친구를 대하는 태도, 낭송을 하는 태도에서부터,
내가 쾌락과 그에 따르는 멈춤을 찾는지, joi 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거 같아요! ㅎㅎ
그런 의미에서 샘, 담주 낭송 빠이띵 ^^!

서형님의 댓글

서형 작성일

책이 실제 삶으로 빠져나오는 게 가능하단 걸 자꾸 잊게 되는 것 같아요.
조모임 하면서 나눴던 구절이 있었는데, '서쪽은 고른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사제는 알고 있었지만,
이 방향은 헤라클레스의 기둥들로 가로막혀 있으며, 출구도 없고, 사람도 살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이곳에 욕망이 숨어 있었으며, 서쪽은 동쪽으로 가는, 그리고 재발견되거나 탈영토화된
다른 방향들로 가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었다.'
항상 좋아하는 일이 생업이 되는 걸 욕망해왔는데, 알바를 해오면서 과정을 즐겁게 가지 못하고
늘 이상을 바라보면서 현재에 있지 못했었어요. 곰샘도 글쓰는 일이 생업이 되시는데 15년이 걸리셨다고
하신데서 희망을 얻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은 뭔가 있어. 나는 안 될 수도 있잖아.'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저에겐 헤라클레스의 기둥들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반드시 둘이 일치되어야 하는 게
아닌데 습관적으로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렇게 조모임에서 얘기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 말들이 멀게 느껴지네요. '실제 삶으로' 빠져나오도록!

단호박님의 댓글

단호박 작성일

쾌락이 우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이라는 근영샘 강의에 약간의 전율을 느꼈었는데
입담좋은 후기를 읽으니 이미 가물거리는 강의내용과 주영샘 서형샘 등의 발제내용까지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지난 주에 바빠 얼굴성부분을 잘 못읽어서 그런지 주영샘이 자아비판처럼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이라고 말씀하신 행위가 저에겐 유익했었네요..ㅎ

오티에 참여안해서 그런지 바빠서 그런지 아니면 봄학기 때처럼 근영샘의 강의위주의 공부패턴을 기대해서 그런지 유독 가을학기가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니면 살아온 연식만큼 두텁게 껴입거나 두르고 있는 얼굴과 풍경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암튼 샘들과 함께라서 힘내어 가 보기로 합니다.. 담주는 또 방학이고 하니..ㅎ

희영님의 댓글

희영 작성일

저도 '이해하는 쾌락'이라는 문구에 스스로 많이 찔립니다. 아직도 '사용하기'보다는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는 나를 계속 만나게 되네요. 그래도 이런 습성이 나올때마다 근영샘이 바로 피드백을 해 어서, 스스로를 자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풍경'에 대해서 지난주 발제를 했습니다.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풍경'을 좀 더 파고들어 생각을 해 보지 못했다는 후회가 드네요. '환경'과 대비한 '풍경'의 차이, 얼굴성의 성질인 동일성/단일성이 풍경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설명했어야, 제가 이야기하려는 CEO의 악세서리가 회사내의 조직원들에게 풍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 전달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입발제는 처음 해 보았는데, 힘들었지만 확실히 책을 더 강렬하고 꼼꼼하게 읽게 되어서 좋았어요. 단 질문과 토론이 잘 안 되는 것은 저처럼 발제자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른 샘들이 책을 같은 강렬도로 읽어오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 이번주에는 강렬한 토론의 장으로 가 보아요~

줄자님의 댓글

줄자 작성일

저는 이번주 읽은 부분 중 특히 '얼굴성'이 재미있었어요.
원시 시대에는 없었던 얼굴성. 우리와는 떨어질 수 없는 얼굴성. 감정노동자들이 힘든 이유가 이해 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그동안 나는 내가 강렬한 감정이 많지 않아 표현을 안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반대로 나는 나의 얼굴성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얼굴성을 유지 시키기 위해 나의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을 누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라고 생각해 봅니다.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작성일

저도 지난주에 함께 얘기 나눈 부분 중 욕망과 쾌락이 어떻게 다른지, 심지어 상반되는 것으로까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매우 흥미롭게 또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면서 어쩌다가 나에게, 우리에게 욕망이 곧 쾌락으로 환원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구요. 욕망은 애초부터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마치 쾌락을 위한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애초에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채우는 것이 아니기에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더 큰 쾌락을 원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극도의 허무함도 함께 생겨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욕망은 원할 수록 더욱 커진다-라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여 이제는 그것을 누르려고 의지니 뭐니 하는 것들을 억지로 발동시키려고 하죠. 그렇게 삶은 점점 무겁게.. 내가 만든 욕망=쾌락이라는 잘못된 굴레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것은 아닌지. 깨달았네요. 지난시간에 ^^

수정수정님의 댓글

수정수정 작성일

근영샘이 책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는 코멘트에서 저도 아차 싶었어요.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고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책과 삶을 연결시키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구나(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어려운데 말이죠!),
그리고 그것 역시 쾌락이었구나...! 라는 것이요.
게다가 쾌락이 자아의 먹이(?)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연시켜야 한다는 들뢰즈 과타리의 주장도 참 감명 깊었던 것 같아요.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지만, 서로 통하는 환희를 느꼈는가 질문했을 때 아닌 때가 참 많았었어요.
지금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데 들/가의 이야기들을 새기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같이 고민하며 책을 관통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주영샘~ㅎㅎ

유리님의 댓글

유리 작성일

입발제를 하면서 그리고 근영샘 코멘트를 들으면서 내가 너무 책을 겉핥기로 읽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 근영샘께서 들뢰즈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책을 읽고 딱! 떠오르는 것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들뢰즈가 그렇게 강렬도를 말했건만 강렬도는 커녕 이해하는 부분은 좀 더 깊게 생각하는 대신에 안일하게 쉽게 생각하여 넘기고, 어려운 부분은 이해를 못해서 넘기면서 책을 읽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영샘께서 쾌락이 우리의 과정을 중단시키는 것이라는 문장을 들으면서 아 들뢰즈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결코 제가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한 내용이 아니구나.. 더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구나라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남은 시간동안은 작은부분이라도 집중하여 들뢰즈가 말하는 강렬도를 한번이라도 느껴봤으면 좋겠네요..ㅎㅎㅎ

영신님의 댓글

영신 작성일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는 문구가 참 와 닿네요.
책을 읽고 공부할때 항상 해석하는 즐거움, 이해하는 쾌락에 빠져 있었고 그것에 대한 의심도 없었던것 같아요.
남은 고원들은 쾌락을 지연 중단시키고 한 문장이라도 나의 삶과 연결접속하여 강렬도를 만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들었어요.

지난시간 내내 들었던 의문은 나의 삶에서 쾌락을 지연시키고 진정한 joi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었어요. 항상 쾌락을 추구하고 하나의 쾌락을 충족하고 나면 또 다른 쾌락을 설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에 익속한 삶이 나의 삶이었던것 같아요. 검은 구멍에 빠지지 않고 잘 관통하여 진정한 joi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이번 저의 책읽기의 숙제인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