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안녕하세요.
첫 입발제 시간에 혼자 30분이나 썼던... 호정입니다.
(다음 분들은 20분동안 훨씬 더 알차고 재밌게 해주시리라 기대하며^^)
드디어 고대하던 가을학기 철학학교가 개강했습니다~~! 와~~~!!!☆★
『천 개의 고원』 첫 표지를 보고 있으면 아직 너무 낯설게만 느껴져요.
'어떻게 내가 이걸 읽고 있지??!' 크~~ 영광입니다!
책 표지를 열고 페이지로 들어가 만나는 글들은 아직 뭔 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한 설렘을 주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
책이 무엇과 더불어 기능하는지,
책이 무엇과 연결접속되었을 때 강렬함을 통과시키거나 가로막는지,
책이 어떤 다양체들 속에 자신의 다양체를 집어넣어 변형시키는지,
책이 자신의 기관 없는 몸체를 어떤 기관 없는 몸체들에 수렴시키는지,
하나의 책은 바깥을 통해서만, 바깥에서만 존재한다.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새물결, 13-14쪽)
내 눈 앞에 가만히 있는 책과 이런 일들을 펼쳐낼 수 있다는 게 아주 멋지지 않나요?
ㅎㅎㅎ '서론 : 리좀'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슴 속에 품고 가고 싶은 부분입니다.
그런 열정을 담아 입발제를 멋지게 준비해보고 싶었으나...의욕만 앞섰지요.
수업 때 근영샘이 말씀해주신 '소통의 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어떤 이야기가 논리적이거나 매우 자세하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동학들과 배움을 나누는 장인만큼 입발제는 자신이 탈영토화한 지점,
무엇을 배워서 기존의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이라도 떨어졌는지! 하는 부분을 가져오는 것이
가장 좋다는 근영샘의 말씀을 다음 입발제 주자들께 남깁니다~ ^^
입발제 주자가 4명이라 다양한 부분들이 등장했는데,
이번 주 제가 특히 재밌게 들었던 부분은 석영이와 (작은)수정언니가 준비해 온 '늑대' 부분이었어요.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인용문 함 보실까요?
나는 무리의 가장자리에, 주변에 있어. 그래도 나는 무리에 속해 있어.
나는 내 몸의 한 끄트머리로, 손이나 발로 거기에 매달려 있어.…
"…무리 안에 있는 각 녀석들은 절대로 서로 똑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아.
그러니 나 역시도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셈이지.
이런 모든 것은 고도의 긴장을 요구해.
하지만 그러고 있으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격한 행복감을 느껴."
이것은 빼어난 분열증적 꿈이다.
충분히 무리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바깥에,
아주 먼 곳에 존재하기.
버지니아 울프류의 가장자리에 있기, 또는 산책하기
("나는 이것이다, 나는 저것이다라고 다시는 말하지 않으리.").
(들뢰즈·가타리, 『천 개의 고원』, 새물결, 65쪽)
석영이랑 수정언니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버전으로 들을 수 있어 좋았던 부분인데요.
아.........쉽게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ㅜㅜ
정말로 가을 학기 동안 쭉!
입발제자들의 이야기에 긴장 상태로 집중하는 훈련!이 절실히 필요할 듯 합니다.
그렇게 돼서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진짜 재밌을 것 같아요.
우리 모두 같이 훈련해보아요 샘들~! ★_★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근영샘 말씀은 귀에 쏙쏙 들어와서 좀 정리를 해보았는데요.
'늑대-되기에서 중요한 건 집단의 설정이다.'
늑대는 혼자 사냥하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무리를 이루고 그 위에서 살아가지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랑은 좀 다르네요.
늑대에게 있어 '행동한다'는 것은 곧 '무리를 생산하는 일'을 뜻합니다.
몸의 한 끄트머리로 매달려 있든, 손이나 발로 매달려 있든 그래도 '무리'에 속해 있는 것!
이것 참 우리(특히 2-30대는 더더욱)에겐 익숙치 않은 방식이죵?
들뢰즈와 가타리는 왜 하필 『천 개의 고원』에서 '무리'를 얘기하고 있는 걸까요?
앞으로 읽어가면서 탐구해볼 만한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ㅎ
또 늑대가 무리 안에서 취하고 있는 자세도 어딘가 굉장히 독특한 데가 있지요.
녀석들은 계속 이리저리로 움직이고
그러면 나(늑대) 역시 부단히 움직이는데, 그 움직임은 고도의 긴장을 요구하는 상태.
무리 안에서 이런 상태를 느낀다는 건 어떤 걸까요?
공동체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라 이런 부분들이 더욱 와닿았을 수 있을 것 같아요..ㅎㅎㅎ
저도 덕분에 문장을 한번 더 곱씹어보게 되네요.
2장의 제목은 '1914년 ― 늑대는 한 마리인가 여러 마리인가?' 입니다.
들뢰즈·가타리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 마리도, 여러 마리도 아니다!'라는 것이었던 것 같은데요.
무리로써 존재하는 늑대를 '한 마리' 혹은 '여러 마리'로 분류시켜놓음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는 정말로 생각해볼 만한 지점 같아요.
"너는 한 마리야."
정신분석가의 입에서 그런 류의 말이 나온 순간부터 우리가 스스로를 그렇게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나는 무리에 있어."라는 들뢰즈·가타리의 말과 함께
무리가 되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호호호. 늑대-되기 실험!
재밌을 것 같아요. 그런 실험이 우리를 어떤 세계로 이끌게 될지 궁금합니다~~
함께 해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