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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오이디푸스 5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조정희 작성일19-03-19 23:30 조회75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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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읽생 철학학교 5주차 후기를 맡은 조정희입니다. 이번주는 수업 시작 전에 바다샘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설명하는 부분을 낭독해주시며 시작했습니다. 혼자 묵독하며 읽는 것이랑 다른 분이 낭독하시는 것을 듣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져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ㅎㅎ


그럼 읽기 반 후기부터 작성하겠습니다.


1. 영토화

근영샘께서 오이디푸스화를 이해하신 방식은 영토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존재적 층위에서 영토화, 내부화, 에고를 만드는 것이 자아이기 때문에 자아는 기본적으로 영토화된 존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자아를 생산하는 것이 가족인데, 문제는 이런 식으로 생기는 영토화 자체가 자신을 세계로부터 소외시키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아는 끊임없이 불안과 불만족감을 줍니다.

욕망기계는 영토화하지는 않지만 특정 조건 하에서는 영토화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엇나가고자 할 때도 있는데요. 이때를 탈영토화, 돌연변이, 차이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들뢰즈는 엇나감을 중시했는데요. 이 엇나감 덕분에 차이가 생기고, 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함으로서 순환합니다.


2. 구별

구별된다는 것은 경계에서 등장합니다. 이 경계가 차이(거리)를 생산하고, 구별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 구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구별이 일어난다는 것은 보통 분별하기 위해라고 생각하지만 들뢰즈는 결합시키기 위해라고 합니다. 즉 경계는 분리하면서 합치는 것입니다.

거리 생산으로 둘 사이의 결합을 생산합니다. 예를 들어 남성과 여성은 동시에 생산됩니다. 여자라는 것은 남자와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고, 반대로 남자라는 것은 여자와 결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3. 라캉의 틀

다음으로 근영샘께서 오이디푸스화를 얘기하는 라캉의 틀을 설명해주셨습니다.

라캉은 상상계와 상징계로 나누어서 설명하는데요. 상상계에서 아들은 엄마를 보며 엄마는 나와 다르다는 걸 인식합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시작하고, 자기 욕구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 욕구가 욕망이 됩니다.

상징계에서는 아버지(대타자)의 이름을 받아들일 때 주체가 됩니다. 이 아버지는 상징계의 체계이자 사회적 체계입니다. 여기에서 언어가 나오는데요. 우리는 기표로 표현을 하지만 기표로 온전히 충족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상들을 떠다니며 충족시키려 합니다. 이 분화된 세계에서는 분절되어야 합리적이고 욕망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징계에서 상상계로 가는 것은 언어를 잃어버린 세계로 퇴행하는 것이고 미분화된 세계라고 명합니다. 그래서 상상계를 비합리적 세계, 자연, 야생으로 봅니다.

따라서 주체의 세계는 정리되어 있으며 미분화의 세계는 엉망진창의 세계이기 때문에 미분화 세계에 대한 협박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나를 제외한 세계를 무질서한 곳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사회가 나에게 나의 가치를 입증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하며 사회에서의 지위를 통해서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그렇기에 이중구속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이중구속은 들어가 있자니 갑갑하고 나가자니 무섭게 느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계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4. 주체는 나머지이다.

생성 사이클에서 몫은 과정이고 나머지가 주체입니다. 즉 주체는 여분이자, 나머지이자, 잉여입니다. 과학에서는 에너지를 쓸 때 항상 손실이 일어나는데 이 손실이 주체인 것입니다.

소비한다는 것은 차이를 소비하는 것인데, 니체의 개념으로는 거리의 파토스라고 합니다. 이 소비한다에서 주체 입장에서 향유하고, 느끼기에 여기서 주체가 발생합니다.


5. 셋째 오류추리
오이디푸스는 새로운 순환 시스템을 만들지 않고 가족의 재생산의 형상으로 복귀합니다. 이 출발 집합에는 여러 사회 구성체가 있는데요. 인종들, 문화들, 대륙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출발집합이 되어도 모두 가족으로 도착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인종들, 문화들, 대륙들 등등은 에고를 확인하는 작업이 됩니다. 예를 들어 외국에 나가서 '역시 한국이 좋아'라는 식으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행, 감정을 통해 주체가 되는데, 문제는 이를 등가성으로 파악한다는 것이 셋째 오류추리입니다. 맑스의 얘기를 가져오면, 과거에는 돈이 칠판도 되고, 볼펜도, 사과도 되는 다변적인 것으로 인식했다면 이제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칠판, 볼펜, 사과 모두 돈으로 생각하게 되어 등가성으로 가치체계가 변화하였습니다. 즉 물건과 물건으로 돈이 연결된 것이 아니라 돈과 돈을 물건이 연결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등가성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6. 분리차별과 유목
분리차별의 핵심은 '우리 편이어서 좋다'는 느낌입니다. 즉 자기동일성을 증식할 때 느끼는 것입니다. 느끼는 것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이 유목인데요. 유목은 자아를 열고 타자를 유입함으로써 나로부터 떠나는 정도를 매번 시험하는 방식입니다.

7. 정리
오늘 수업을 정리하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잉여적으로 생산되는 것이 주체라는 것입니다. 이 잉여는 이전 차원, 나로 복귀되지 않는 생산입니다. 그러나 복귀시키는 것이 자아의 매커니즘입니다. 이는 노동가치의 핵심인데요. 내가 생산한 것은 나에게 돌려달라는 사고방식이 자아의 매커니즘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산한 것은 내가 소비할 수 없습니다. 그래야만 순환이 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는 감정을 소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점점 서비스를 강조하며, 우리의 감정을 포획하는 곳에 자본주의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쓰기반 후기를 작성하겠습니다.

이번주는 미자샘, 저(조정희), 일윤스님, 윤숙샘, 미경샘이 발제를 하였는데요.

미자샘은 초반에 욕망 얘기를 하시고 후반부에 이사 얘기를 하셨는데요. 지혜샘이 욕망과 이사의 관련성을 질문하였습니다. 미자샘이 답변을 하시다가 근영샘이 코멘트를 해주셨는데요. 미자샘은 과거에는 글을 끝까지 안 쓰시고 중간에 끝내셔서 많은 벌금을 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글을 중간까지 쓰시다가 지치면 결론을 내는 버릇이 생기셨다고 합니다.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하는데 본인만 모르신다고 하시며 이제 문제를 덮지 말고 질문을 보며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줄자샘이 질문해 주셨는데요. 초반에 차이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이후에 차이에 대한 언급이 없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얘기가 진행된 것인지 물어보셨는데요. 저는 차이를 제 머릿속으로만 정리를 대충 해버렸는데 그걸 더 생각하지 못하고 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철수샘이 글에서 제가 안 보인다는 질문을 해주셨고, 호정샘이 추상적으로 얘기가 끝났는데 실생활에 사용하려면 좀 더 구체적으로 풀면 좋겠다고 해주셨습니다. 저는 철수샘의 질문에 조금 놀랐는데요. 예전부터 글을 쓸 때마다 어떻게든 저를 안 내비치려는 노력을 하다가 고쳐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많이 드러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호정샘 말대로 추상적으로만 생각을 하고 실제로 사용할 때 어떻게 사용할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었습니다. 근영샘이 사용한다는 것은 내 삶에 침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번에 글을 쓰며 사용하기까지는 못 간 것 같습니다. 이후 근영샘이 코멘트 해주셨는데요. 우선 호흡이 짧고 앞에 문제제기를 하고 밀고 나가다가 놓쳐버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체와 객체를 해체하는 것과 제가 저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은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셨습니다.
또 개인사를 드러낸다고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강밀도 만큼이 구체성이라고 덧붙여 주셨습니다.

일윤스님은 승연샘이 질문해주셨는데요. 스님은 오이디푸스를 가족으로만 생각하신 것 같다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소제목 2번에서 오이디푸스 가족의 문제점을 얘기하시고 소제목 3번에서 깨달음을 얻고자 하신 얘기를 하셨는데 이 또한 오이디푸스가 아니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근영샘이 덧붙여 코멘트 하셨는데요, 2번과 3번은 같은데 정리되어서 글에 나오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보연샘도 스님께 질문을 드렸는데요. 이번 글을 쓰시면서 출가에 대해 생각이 바뀌셨는지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근영샘이 덧붙여 얘기해주셨는데요. 스님께서는 개인적인 문제만 얘기하시는 것 같았고 보편적인 질문이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꼐서 자기정체성 찾는 것 자체를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쪽으로 글이 갔다면 좀 더 글이 보편적이고, 저희와 소통이 가능한 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글을 쓸 때에는 타인을 호명해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그래야만 언어화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 타자를 고려해주시면 좋겠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윤숙샘은 보연샘이 저번 시즌보다 더 열심히 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변화가 생기신 것인지, 그리고 글 마지막이 구체적이지 못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윤숙샘은 지난 주부터 쓰기반에 들어오셔서 따라오기에도 급급했다고 하셨습니다. 근영샘은 윤숙샘께서 복습을 열심히 하셨다고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윤숙샘도 패턴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글의 시작을 최근 인상깊던 이야기로 시작하시는데, 그 이야기에서 명확한 질문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것이 중심되는 질문인지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경샘은 소담샘이 질문했는데요. 미경샘의 파시스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소담샘은 이것이 반대 아니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근영샘이 추가로 말씀해주시기를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계속해서 죄책감이 파시스트라고 하는데 그 반대로 단어를 사용하시는 것은 괜찮으나 반대로 사용하신 의미는 명확하게 제시를 해주셔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경샘은 유대인을 죽이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파시스트라고 느끼신 것 같은데, 이 내용을 일상의 쓰레기 버리는 이야기로 가지고 오셔서 저희가 더 헷갈렸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계속 말씀을 하시다가 미경샘과 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우선 자기 세상에서 나오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호흡을 천천히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단어의 뜻을 스스로 정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미지로만 단어를 쓰게 된다고 합니다.

저희가 5주차로 다음 한 주는 방학 기간이고 2주 후에 뵙기로 했는데요. 첫 5주차의 마지막 날이니만큼 좀 더 얘기를 하다가 끝내기로 하였습니다. 발제문 중에 표상이라는 개념이 나와서 표상을 좀 더 설명해주셨습니다.

욕망을 생산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이해가 가는지 물어보시면서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우선 자아라는 영토성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빵을 먹고 싶다라는 것은 빵을 먹는 배치들을 생성한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술을 먹고싶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술을 먹어서 취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 시간 등등의 배치체, 사회체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접속으로 얘기될 수도 있으나 예속적으로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따라서 욕망한다는 것은 배치체를 생산하고 싶다는 말이며, 이 배치체를 생산함으로써 세계를 형성하고 내가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즉 배치체를 생산함으로써 나를 생산합니다.
요즘 많이 하는 혼밥, 혼술은 관련된 배치체를 생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과 단독적으로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혼밥, 혼술은 획득하는 것이 목적이지 생산이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자본은 욕망이 생산하지 않고도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과거 노래방이 없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를 하는 등을 했으나 요즘엔 노래방이 있기에 그 배치체 생략이 가능합니다. 이 과정들을 자본주의가 포획한 것입니다. 과정에 잉여가 있는데 말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겪음이라는 것을 포획하고, 우리는 과정을 완성시킬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내가 스스로 배치한 것이 없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없고, 가서 그저 소비만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나를 겪게하지 않도록 한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행은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가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목적지 자체가 아니라 목적지로 인해 내가 힘을 쓰게 하는 수단으로써 중요합니다.
반면 자본주의에서 하는 자극과 반응은 다릅니다. 자아가 먼저 있고 누른 것이 자극입니다. 그러면 행위가 들어올 때 그 행위 반작용의 의미로 반응합니다. 이는 자아를 회복하는 힘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면 자식은 가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반응을 하는데 이를 이행의 감정으로 느끼게 합니다.
이 자극과 반응은 점점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다보면 내성이 생겨서 점점 자극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점점 더 중독으로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욕망의 생산은 일대일 관계를 넘어서, 현실계(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를 생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계는 버섯탕수였는데요. 읽생 철학학교 방학 전이라고 주방에서 특식으로 버섯탕수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버섯탕수 덕분에 사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 버섯탕수는 독신기계입니다. 즉 독신기계는 차이를 생산하는, 어떤 배치체를 여는 것입니다. 독신기계는 물질뿐만이 아니라 분열자도 해당됩니다. 즉 독신기계인 분열자는 사건이 일어나는 자입니다.

드디어 첫 5주가 끝났는데요. 짧다면 짧지만 초반에 너무나 어렵게만 느껴졌던 안티 오이디푸스가 이제는 아주 아주 가끔은 재밌게 느껴집니다. 한 주 쉬고 그 다음주부터 다시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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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오 읽기반에서 우리조 정희샘의 후기. 수업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담으셨네요. '욕망의 생산은 배치를 생산하는 것이다. 버섯 탕수, 주방이 독신기계가 된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된 수업이었습니다. 방학 후에  뵙겠습니다.

호호미님의 댓글

호호미 작성일

와 수업시간을 생생히 떠올리게 해주는 독신기계 후기~~짝짝짝. 고마워요!
저는 5주에 걸쳐서 '안티-오이디푸스' 할 수 있는 무기들을 하나하나 장착한 느낌이 들어요ㅋㅋ
이 무기들을 들고 다음 텀엔 또 어떤 이행을 해볼지..!
'안티-자아'하는 주체를 함께 향유하러 가요~~~!ㅋㅋㅋㅋ

그녕님의 댓글

그녕 작성일

생생 리얼 후기로군~ 앙띠가 아주아주 가끔은 재미있어진다니 기쁜 소식ㅎㅎ

보연님의 댓글

보연 작성일

아니! 수업보다 후기가 더 좋다니!! 수업내용 이해되고 넘 좋네요. 후기 감샤

희영님의 댓글

희영 작성일

일주일 푹 잘 쉬고... 지난 시간에 뭘 배웠나 점심시간에 들어와 봅니다. 정희샘... 정리 고마워요.
이제 이번주부터 또 다시 안티오이디푸스로 빠져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