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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두번째 시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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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달 작성일17-06-09 01:45 조회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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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란 무엇일까.


<백년 동안의 고독> 두번째 시간은 반복되는 느낌의 서사가 주는 의미란 무엇일까?의 질문으로 시작하였습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반복되는 이름처럼 부엔디아 가문은 호세 아르카디오와 우르슬라의 1세대부터 돼지꼬리 달린 아이가 나오는 7세대에 이르기 까지 인물의 성격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반복 변주되며 펼쳐집니다. 세대가 거듭되면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호세스러움과 아우렐리아노스러움이 대표적이지요. 사촌간의 혼인으로 돼지꼬리 달린 아이를 낳지 않을까 하는 우르슬라의 우려는 작품 말미에 또다른 (아마란타) 우르슬라에 의해 실현되며 그 백년의 순환이 종결됩니다. 마치 멜키아데스가 부엔디아 가문에 대한 예언을 “100년 동안 날마다 일어날 사건들을 한순간에 한꺼번에 일어나는 것처럼”적은 것처럼 백년의 시간과 우르슬라가 걱정하는 찰나의 순간은 길이의 차이만 있을 뿐 같은 시간의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보니 작가가 시간을 서술하는 방식이 조금 이해가 됩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기묘하게 중첩됩니다. 가령 소설의 첫 문장 “몇 년이 지나 총살을 당하게 된 순간,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오래전 어느 오후에 아버지를 따라 얼음을 찾아 나섰던 일이 생각났다.” (5) 는 어느 시점에서 발화되고 있는지 모호합니다. 즉 이 문장이 말하고 있는 현재는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총살을 당하기 전인 것 같기도 하고 총살을 당하는 때 같기도 하고 그 이후 같기도 합니다.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의 말처럼 “시간 기계가 부서져서 고장이 난”곳이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월요일인 것 같은 마콘도에서 사람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을 맞이하기도 하고, 200살이나 넘게 산 사람, 심지어 죽은 사람과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합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사건이 마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하듯 자연스럽고도 크게 별일이 아닌 곳이지요. 심지어 자신이 죽인 푸르덴치오와 이야기를 나눈 이후 죽은 자들과 대화를 시작한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처럼 삶과 죽음의 사이에서 사는 듯한 인물도 있습니다. 

  죽은 사람들, 옛 사람들을 통해 과거를 현재로 소환한다면 미래의 현재 개입 또한 빈번합니다. 첫 문장에서 이미 아우렐리아노 대령이 총살을 당한다는 그의 미래는 그의 말년을 서술하는 6장에 이르기까지 예언처럼 혹은 주술처럼 반복됩니다. 독자에게 소설은 대개 어떤 상황에 대한 결말을 초조함을 가지고 예측하게 하지만 여기서 그 예측들은 작가의 툭 내뱉는 말 한 마디에 다소 맥없이 해결됩니다. 끊임없이 미래의 일을 현재의 장으로 옮겨 오는 작가의 말하기 방식은 독자의 예측을 무력하게 혹은 나아가 무의미하게 만듭니다. 이는 계속 미래의 일을 알고자 하는 예언의 욕구가 별다른 의미가 없음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과거와 미래가 개입된 현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재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는 더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선형적인 평면 위에 놓여 있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서 ‘현재’는  서로 다른 시간의 층위가  투명하게 쌓아올려져 만들어집니다. 어제의 투명한 층 위에 오늘의 투명한 층이 올려지면 어제 놓인 사건들이 오늘의 사건과 중첩되어 위에서 보면 모두가 현재로 보입니다. 백년이라는 시간의 층위들을 투명하게 쌓아올린 후 맨 위에서 바라보면 분명 한 장의 사진처럼 보일 것이며 따라서 이는 이렇게 중첩된 채로 한 장의 ‘현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첩된 현재의 맨 윗장은 또다른 우르슬라가 낳은 돼지꼬리 달린 아이의 탄생이고 마콘도 마을의 소멸로 맨 처음 돼지꼬리 달린 아이를 낳을까 걱정하는 1세대 우르슬라의 모습에 이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가 이름을 정하기 전 황무지의 마콘도 마을의 이미지로 환원됩니다. 그러니까 부엔디아 가문의 종말은 이렇듯 중첩된 현재의 환원 시간 속에서는 동시에 시작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지극히 선형적입니다. 우리에겐 어제-오늘-내일로 이어지는 순서만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시간도 실은 마콘도의 시간만큼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중첩된 현재의 무게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첩된 현재의 무게감을 덜고자 미래를 알고자 하고, 과거를 지우고자 하는지도 모르지요.어쩌면 현재의 무게감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생각때문에 더 무겁게 여겨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면 우리의 발걸음은 나아갈 수록 무거워 지겠지요. 그렇다면 작가가 보여준 시간을 순환시키는 방법 즉, 부엔디아 가문의 종말 그리고 그렇기에 떠올려 볼 수 있는 ‘시작’,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주는 (6/11일) 사피엔스 입니다.  300페이지 까지 읽어 오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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