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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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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철수 작성일18-10-14 19:17 조회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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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주차에 다른 짜라의 4부 전반에서는 짜라가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만나는 방식이 이전과 좀 다르다. 사람을 낚는다. 산을 내려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산 위에서 꿀낚시를 가지고 사람들을 낚는다. 나름 짜라의 사상을 조금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 괴로워하며 (구토를 하며) 짜라를 찾고, 그런 사람들을 짜라는 만난다. 그런 과정에서 짜라는 그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짜라 자신에게 달싹 붙어있던, 자신의 그림자까지 쉬라고 휴식을 취하라고 자신의 동굴로 보내고는 짜라는 정오를 만난다.


언제즘이면 제대로 읽고 나서 뿌듯해 하며 수업시간에 '음... 그렇지. 맞어맞어. 나도 저렇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며 앉아 있을 수 있을까? 항상 '제대로 읽지 못하고, 늘 오독해서 와서는 이렇게 멍청하게 앉아있다가, 아~~ 그런거였구나'라는 생각만 하면서 앉아 있을까? 물론, 8주차 시간에는 두 번 일어났다. 한 번은 유고 프린트물 가지러, 또 한 번은 위버멘쉬가 되면 계속 위버멘쉬냐 아니면 끊임없이 자기극복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그림을 그리고 물어보기 위해서. 


니체가 이야기하는 초인은 자기극복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한 번 극복한 사람은 죽을때까지 초인(위버멘쉬)이냐, 아니면 매 순간 자기 극복을 해야 위버멘쉬냐란 질문이 있었다. 근영쌤께서는 아픈 곳을 찌르신다. "수업을 하다보면 꼭 이런 질문이 나온다. 이런 질문은 도대체 어떤 신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한 번 하고 난 다음에는 마음대로 살고 싶은 거 아닐까?" 맞다. 한 번 딱 하고 나면 다음에는 그런 과정을 겪기 싫은 신체성에서 나오는 게 맞다. 어찌되었든 다시 위의 물음으로 돌아가보면 자기 극복이라는 것이 완결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자기 극복이기 때문에 언제나 다른 자신을 만나서 그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기에 한 번의 자기극복으로 위버멘쉬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낙타에서 사자로의 변신(?) 과정이 한 번의 자기 극복이었고, 사자에서 아이로의 변신도 한 번의 자기극복이었던 반면, 아이로 변신이후에는 끊임없이 자기극복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했다. 


솔직히 괜한 걱정이다. 내 어깨에 지워진 짐조차도 지기 싫어하는 노예적 삶을 살면서 한 참 위의 위버멘쉬가 어떤 상태인지를 걱정하는 것은 너무나 섣부른 걱정 아닐까 싶다. 


다음 시간이 벌써 짜라의 마지막이다. 하기 싫다는 짜라를 졸라서 강좌에 포함시켰는데, 나는 제대로 소화를 시키고 있는 것인지 좀 갸웃한다. 3부, 4부로 넘어가면서 글이 참 멋지다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좀 잘 만나보자, 짜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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