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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동안의 고독(전반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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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isa 작성일17-06-02 22:18 조회423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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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레주/백년동안의 고독(전반부) 후기/박주영

 

백년동안의 고독(전반부) 후기

 

    백년동안의 고독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다.(갖고 있는 책 발행년도를 보니 1993년이다.) 주인공들의 이름들이 매우 길었고, 납득이 안 되는 황당한 얘기들로 가득해서 재밌다기 보다는 다 봐야겠다는 인내심으로 완독했던 것 같다. ‘이 소설이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라는 의문이 들었고, ‘역시 남미 작가들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결론과 함께 이후 남미쪽 작가들 소설은 등한시 했던 것 같다. 꼴레주 2학기 책 중에서 백년동안의 고독이 가장 안 끌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이 없던 시절 봤던 책이 지금 보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 소설이 재밌지 않았던 점을 통해 내가 어떤 서사구조에 익숙한지, 어떤 지점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 등을 아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백년동안의 고독은 선형적인 시간, 인과적인 서사구조에 익숙한 독자에게 불편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첫문장은 오랜 세월이 지나 총살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얼음 구경을 갔던 먼 옛날의 어느 오후를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이다. 첫문장부터 혼란스럽다. ‘오랜 세월이 지나 총살대 앞에 서게 되었다.’라는 미래에 등장하는 사건으로부터 텍스트가 시작되는 것. 왜 총살대에 앞에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총살을 당했는지, 피했는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바로 먼 옛날의 어느 오후 무렵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총살대 앞에서의 회상은 아니다. 회상 방식이라면, ‘내가 어릴 때 마콘도는 ~~~’ 이런 작법이 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우렐리아노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총살대에 섰는데 그 때 갑자기 얼음구경을 갔던 먼 옛날의 어느 오후가 생각났고, 이는 A 때문이다.’ 스타일의 구조였으면 나는 더 이해도 잘 되고 몰입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총살대 앞에 서는 사건은, 이를 잊을 무렵인 7장에서 나온다. 그리고 대령은 총살대 앞에 서서 얼음 구경을 갔던 오후를 생각하긴 했으나 총살당하지 않는다.


    첫 번째 문장과 같은 표현은 여러번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세월이 흘러 총살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아르카디오는 불가해한 그 잡기장의 몇 장을 읽어주던 멜키아데스의 몸이 떨리고 있었음을 틀림없이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총살대 앞에 섰을 때조차도 일련의 조그마한, 그러나 다시 수습될 수 없는 우연한 사건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처럼 느껴진다. 몇 개 문장만 찾아본 것이지만, 예언처럼 적은 내용들은 소설속에서 다 시현되었다. 마르께스는 인간은 결국 운명을 피할 수 없고, 일어날 사건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이 소설의 마지막 결론(마지막에 부엔디아 가문이 결국 멜키아데스의 양피지에 쓰인 예언처럼 종말)과 함께 다음주에 예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


   백년동안의 고독이 나에게 별로 재미가 없었던 것 중 또 하나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고 실제 일어나기 어려운 사건들이 인과관계 없이 자주 발생한 점이다. 그러나 많은 학인들은 이러한 점을 이 소설의 재미있는 이유로 꼽았다. 이 소설에는 죽은 멜키아데스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독을 견뎌내지 못하고 세상에 돌아오고, 하늘을 나는 양탄자가 등장하는 등 불가능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환상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현실에 기반하여 환상, 실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등장하는 구조다. 현실과 환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리고 작중인물들은 마법의 양탄자, 공중부상술, 미신같은 일들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반면, 철도, 기차 등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여겼다.


    우리는 어떤 것을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가? 사실 삶을 생각해보면 기적같은 일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사건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인과관계가 없다. 다만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고 믿을 뿐이다. 나는 A를 해서 B를 얻고, C를 했기 때문에 D가 발생했다는 서사에 익숙하고, 물질로 설명하기 어렵거나 과학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미신이나 환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기에 이 소설이 불편했던 것 같다. 원근법이 적용된 고전주의 그림에 익숙한 사람이 초현실주의적 그림을 보고 이게 뭐지?’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실제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림조차도 사실이 아니라 환상이다. 그리고 망막에 비친 사물들은 현실처럼 보이는 그림과 다르다. 무엇을 볼 때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잊는다. 마르께스는 서양이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우리 현실을 타인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행위는 갈수록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수록 우리를 덜 자유롭게 하며, 갈수록 고독하게 만드는데 이바지할 뿐이라고 말하며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을 요구했다. 나는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을 때 닫힌 시각으로 접근하다 보니 재미도 없었고 이해도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같이 책에 흥미를 못 느낀 학인도 몇 명 있었으나 대다수는 흥미로웠다고 했다. 마르께스의 풍부한 상상력,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힘 등이 원동력일 것이다. 수업시간에는 현실과 환상, 고독, 불면증, 근친상간, 나선형 시간구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얘기했다. 이 소설에는 근친상간이 너무 자연스럽게 자주 나온다. 이모와 조카, 고모와 조카 등. 이것은 폐쇄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사실 외부와 관계를 통해 독립해야 하는데, 이들은 계속 자기들끼리 안으로 관계를 맺으며 고립되었고 결국 멸망까지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수업내용 중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불면증이다. 마콘도에는 불면증이 전염병으로 돌았는데, 왜 다른 병이 아닌 불면증이었을까? 문샘은 불면증은 계속 오늘이 지속되므로 깨어나지 못하는 것, 과거가 없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고 했다. 소설을 보면 불면증 때문에 마콘도 사람들에게 건망증이 생겼고 그들은 죽음조차 망각했다. 이들의 불면증은 외부인인 멜키아데스가 가져온 약을 통해 치료된다. 즉 외부를 통해 깨어날 수 있고 기억도 가능한 것이다. 이 밖에 이 책의 제목이며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고독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고독한 것인지, 근친상간을 통한 고립감 등으로 고독한 것인지, 고독을 욕망하는 것인지(고독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작중인물) . 사실 아직 고독의 의미가 와닿지가 않는다. 이는 후반부를 읽어가며 더 깊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공지

6주차 간식 및 후기는 김은영 샘과 손진아 샘이 담당해 주실 예정이고, 책은 끝까지 다 읽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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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년의 고독>을 서가에 꽂아놓고 어떻게 소설의 죽음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존경하는 선배작가에 대한 예의일수도 있지만, 어찌됐건 서구 근대모더니즘 소설이 한쪽에서 열심히 하나의 극단을 추구해 나아간 곳에서 어떤 벽에 다다란 듯한 순간(일테면 제임스 조이스 식의 모더니즘, 프랑스 누보로망 작가들의 서사에 대한 저항 등등)에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이 '복원'(?)한 서사의 세계가 있는 듯합니다. 오늘 토론 때도 얘기 나왔지만, 마치 할머니가 옛날 얘기 해주는 것 같은 '이야기'의 세계 같은!! 어쨌거나 흥미진진한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