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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 후기(A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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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긴 작성일18-09-20 18:57 조회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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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정말 이상한 책이다. 아마 이 책이 유명한 데는 그 이상함이 한 몫하고 있을 것이다. 암호나 수수께끼 같은 문장들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데, 쉽게 포기하기에는 이상한 도전의욕을 일으킨다. 하지만 그런 의욕만으로 정답을 찾아나가자니 곁길이 너무 많고 해석의 여지도 지나치게 넓은 듯하다. 또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이런저런 유추나 해석들이 무색할 만큼 그것이 가리키는 손가락은 선명하고 목소리는 우렁찬 것 같다. 이래저래 참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책이다.


<차라...>2부는 사막에서 길을 내는 사자로서의 차라가 그 길을 가로막는 가짜 우상들과 대결하면서 내지르는 포효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전은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차라의 인간적인 회피와 두려움이다. <교양의 나라>에서 차라는 생식력을 잃어버린 갈비뼈가 앙상한몸을 알록달록한 옷과 같은 교양으로 간신히 가리고 있는 초라한 현대인을 풍자한다. 그런 가짜 위안에 기만당한 정신은 아무런 욕망없이 삶은 관조하는 소위 순결한 인식으로 가장되는데, 이는 생식의 의지를 죽이고 행복이란 거짓 뒤에 숨어버리는 유약한 모습을 낳게 된다. 차라는 2부 전반부에서의 성직자, 덕이 있는 자, 천민, 숭고한 자들에 이어 후반부에서도 창조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순간순간 생존하는 데만 급급한 학자나 시인들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렇게 안일한 삶은 하나의 기능만 비대해진 거꾸로 장애인혹은 파편화된 인간의 모습으로 귀결되며, 이런 인간들은 결국 세상을 덮는 허무주의의 도래 속에 속절없이 무릎 꿇게 된다.

하지만 차라는 이렇듯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시끄럽고 요란한 변화 보다는 그 안에서 정말 가치를 만드는 사람들에 의한 조용한 시대의 변화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때가 왔다는 유령의 외침에서 자기 극복을 위해 다시 한 번 몰락해야 함을 감지하고 두려움에 떤다. 차라는 과거의 그랬었다내가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더 나아가 현재의 그러기를 원한다와 미래의 그러기를 원할 것이다까지, 생의 완전한 긍정을 통해 진정한 자기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두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그것을 예감한 차라의 망설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 책을 혼자 읽을 때는 알지 못했다. 눈이 먼 채로 살더라도 인간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쓰는 것이 차라가 말하는 현명한 처세술을 의미하는지도 놓칠 뻔 했다. 2장의 첫 부분에서 오해하지 말라고 외치던 차라가 차라리 오해받고 싶다고 하면서 숨으려 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여전히 그를 초인으로 착각하는 와중에 무심히 오해할 뻔 했다. ‘어떠한 삶이라도 다시 한번 살기를 원할 만큼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무게를 지닌 말인지, 아이가 되기 위해 사자로서 몰락해야 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의 공포인지 아마 함께 읽지 않았다면 끝내 짐작조차 못했으리라. 함께 공부하는 것의 묘미를 느낌과 함께 앞으로 차라가 겪게 될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 역시 배가된다. 이 역시 정말 이 시도, 수수께끼도, 소설도 아닌 이 비밀지도 같은 철학책이 불러온 이상한 기운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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