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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차 후기(D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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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제비꽃 작성일18-09-14 23:50 조회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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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가 늦었습니다. 내용 전체를 정리해 보고 후기를 쓰려던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미루게 되었네요. 욕심을 버리고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 두 가지만 적어 보려 합니다. 

 니체를 만난 이후 인간의 감정과 마음이 제가 알던 얼굴과 다르다는 것에 죽비로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정'이란 감정도 그러했습니다. 동정과 연민을 인간애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주는 자의 입장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정과 연민은 결핍된 자에게 주는 것이기에 주는 자는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그 구절을 혼자 읽을 때는 '왜 수치심을 느껴야 하나' 생각했는데  결핍된 자에게 힘에의 의지를 실현하는 것, 즉 동정을 베푸는 것은  마치 내가 5대 1로 싸워서 이겼는데 그 대상이 다섯 살 짜리일 때와 같다는 근영 샘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결국 주는 자의 입장을 위해서 동정이 아니라 충만한 상태에서의 '준다'가 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불교의 '자비', '보시'도 결핍된 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까지 듣고 보니 진리는 어느 지점에서인가 만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뒤이어 '결핍'을 이용해 상대에게 소중한 자가 되려 하는 우리는 벗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소중한 자'가 되는 대신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란 서로에게 의존하거나 종속됨이 없는 관계를 말하는 것일까요? 훗날 '고통을 받는 친구에게 고통의 휴식처, 야전 침대가 되어주는 것' '이런 벗으로 살기를 원했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타란툴라(평등에 대한 의지)'입니다. 타란툴라에는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니체는 타란툴라는 정의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복수심이라 말하며 인간을 복수심에서 구하는 것이 최고의 희망에 이르는 다리이며, 오랜 폭풍우 뒤의 무지개라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타인의 잘못에 대해 벌주려고 하는가? 벌주려는 욕구는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복수심에서 벗어나야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다고 근영 샘은 말씀하셨습니다. 복수심을 가진 자는 '동정에 대하여'의 일부분(어떤 벗이 그대에게 좋지 않은 일을 하면 이렇게 말하라. "네가 한 일을 용서한다. 하지만 그대가 그대 자신에게 나쁜 짓을 했다는 걸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자신이 한 행위가 자신에게 벌'이 된다는 의미일까요? 하지만 이 구절을 다시 읽는 동안 ㅇㅁㅂ이나 최근 저의 분노 유발자인 ㅇㅅㅌ가 떠올라 벌주려는 욕구가 자꾸 비집고 나오려 했습니다. 아직 이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것 같습니다.

 2부 사자되기의 여정 속에 주인과 사이비 주인을 구분하는 것에서 어려움과 희열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동정', '벗', '평등'이란 단어의 뜻을 처음 안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고요. 내일 또 다른 어려움과 희열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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