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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차 후기 입니다.(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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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라온제나 작성일18-09-08 00:53 조회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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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강의에서 벗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에 남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대는 벗 앞에서 어떤 옷도 입지 않으려고 하는가? 있는 그대로의 그대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그대의 벗에게 영광이 되겠는가? 하지만 그러면 벗은 그대를 악마에게 넘겨주고 싶을 것이다!(p119)"

 

  소위 절친에게라면 속속들이, 꾸밈없이 내 모든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은데 벗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숨겨야한다니. 니체의 우정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니체에게 벗이 필요한 까닭은 혼자서는 자기극복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만 홀로 있다면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변하기 쉽지 않다. 그럼 평범한 우리가 벗을 원하는 까닭은? 나를 지지해주고 위로해주는 즉 내편인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니체에게 벗은 안주하지 않도록 서로 끊임없이 자극하고 경쟁하는 긴장감을 주는 관계라면, 우리에게 벗은 말 못 할 비밀과 상처의 공유를 통해 안도의 감정을 느끼는 돈독한 관계여야 한다. 같은 편이라는 느낌은 어쩌면 서로를 구속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각자 나란히 두 발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관계를 만 들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벗에게는 나의 약한 면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위버멘쉬의 강한 면을 보여줘야 우정이 지속될 수 있다. 벗의 어려움에 성급하게 동정심을 내비치기보다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멀찍이 지켜보아야한다. 냉정하게 보일지라도 몰락을 지켜봐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연민이라는 건 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건 고통의 감정을 공유 한다기보다는 고통을 빨리 잊어버리고 무마하기 위해 쉽게 위로의 말을 건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벗은 구하는 것, 찾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벗을 찾지말고 내 자신이 벗이 되어 벗을 구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자기자신을 넘어 서는 것은 쉽지 않지만 벗이 자기극복 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편이 있는 무리 속에 있고 싶어 하고, 내편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스스로 굳건하지 못해 군중 속에 있으려는 약자의 심리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 강자라면 무리본능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힘을 길러야하며 여기엔 세속과의 결별,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제가 발제를  창조하는 자의 사랑과 경멸에 대한 내용으로 했는데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엉뚱한 소리를 했다는 걸 알았습니다.ㅋㅋ  벗과 고독, 사랑과 경멸, 벗과 창조는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한데 풀리지가 않네요.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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