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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후기(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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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risa 작성일18-04-12 19:52 조회3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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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를 공부하면서 제가 얼마나 약자인지, 편안하고 쉬운 길로 가고 싶은 욕망이 가득한지 깨닫게 됩니다. 이번 주에는 선악의 저편 제5도덕의 박물학과 제6우리 학자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5장의 도덕의 박물학은 영어로 하면 Natural history인데, 언뜻 보면 자연을 의미하는 Nature와 역사(History)가 배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Nature는 자연 외에도 본성을 뜻합니다. 본성은 본래 그러한 것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며 시간 밖에 있는 개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 선악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할 수 있는데,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지?(이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가능)’, ‘사람을 죽이다니 악마로군(사람을 죽이는 건 악한 것을 전제)’ 등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많은 전제를 기반으로 하여 판단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니체는 이러한 전제, 원래 그러한 것인 본성이 시간을 통해 생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니체는 도덕, 선악의 판단기준 등도 결국 역사적 생성물이라고 합니다. 선악의 저편 5186에서 우리는 여기서 이제까지 정당화되어 오기만 했던 것을 엄격하게 밝히고 앞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해야할 일을 분명이 해 둬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에 대해 평가하거나 사건에 대해 해석할 때 도덕적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하는 제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니체는 도덕 역시 욕망을 표현하는 상징언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도덕에는 그 도덕을 창조한 사람을 정당화시켜 주기 위한 무엇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니체가 도덕 자체를 나쁘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도덕은 되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것, 방임과 반대되는 것이며 자연에 대한 그리고 이성에 대한 어느 만큼의 억압을 의미합니다. 즉 도덕은 억압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억압과 복종이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지속되어 독단론으로 흐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억압과 복종의 호오가 아니라 어떤 억압과 어떤 복종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니체는 도덕과 억압의 관계를 설명할 때 어떤 형상을 만들어내는 예술가와 비교하며 설명합니다. 도덕을 비롯, 정치, 신앙, 예술 등 어느 면에서 가장 자유롭고 정교하고 대담하고 활기차고 견실한 모든 것들은 오로지 자의적인 법칙의 억압에 힘입어 발전해왔고 이런 억압은 자연스러운 것일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자연스럽다는 말은 형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억압이 존재하지 않는, 그냥 내버려두는 방임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방임은 되는대로 두기에 오히려 나는 사회적 욕망에 따라 주어진 삶의 양식 그대로 살게 될 수 있습니다. 즉 내가 형상을, 즉 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니체는, 도덕 속에 깃든 자연은 되는대로 내버려 두는 것과 지나치게 분방한 자유에 대한 증오를 가르치며, 제한된 지평의 필요성에 대한 의식을 심어준다고 말합니다.

 

   5장 도덕의 박물학에 이어 6장 우리 학자들에서 니체는 학자, 전문가, 철학적 노동자 등에 대해 언급하며 이들을 철학자와 구분합니다. 그는 학문에 대해 묻지 않고 학문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학문하는 사람은 비천한 인간이 가지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부단히 자신의 가치와 유용성을 입증받고 싶어하는 자입니다.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내가 수단으로서 쓸모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는 내 존재에 대해 가하는 폭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노동이야 말로 존재를 유용하게 만들고 보상 등을 통해 존재의 유용함을 입증받는 작업으로 니체는 노동을 노예의 욕망으로 여겼으며, 이를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한편 6장에서 니체는 두 가지 유형의 회의주의에 대해 말합니다. 첫 번째 유형은 무엇을 하지 않으려 하며, 예 또는 아니오의 대답조차도 하기 싫은 의지마비증으로서의 회의주의입니다. 이런 회의주의자들은 서로 억제하는 작용밖에 못하며, 상호간에 자라지 못하게 하고 강해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미덕이 됩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에 몹시 싫증을 느끼는데, 니체는 유럽이 이와 같은 의지마비증에 걸려있다고 확신합니다. 두 번째 유형은 위험하고 보다 냉혹한 회의주의로, 이러한 회의주의자들은 능동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하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경멸하면서도 붙잡고 무너뜨리면서도 소유하는데, 회의하면서도 그 자신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유형의 회의주의는 가치를 창조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편안함을 욕망하며 무엇인가 하지 않으려는 첫 번째 유형의 회의주의자는 제 모습을 보는 듯 합니다. 니체를 만나기 전에는 제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는 것조차도 몰랐다면, 이 공부를 통해서 고통스럽지만 저의 욕망, 제 신체가 어떤 방식으로 힘의지를 사용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8주차에 배우게 될 7장 우리의 미덕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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