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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도덕의 계보 2논문

게시물 정보

작성자 bori 작성일18-04-07 10:22 조회19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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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쓰는것으로 힘의 의지를 발휘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공회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것을 수업시간에 들은 것으로 어찌 해보려고 하니 그러지 않았나 싶어 다시 텍스트를 읽었습니다. 멀리 돌아가더라도 하나라도 이해하는 게 제게는 도움이 되는데. 제 때 후기 못 올린 부채는 남네요.

 

강독했던 부분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2논문에서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도덕적 개념이 부채라는 물질적인 관계 속에서 발생하게 된 것이고, 몸에 고통을 새기는 과정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자연의 본성은 기억하는 것만큼 망각하게 만듭니다. 망각과 기억은 서로를 견제하며 새로운 차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인간은 힘을 발휘하고 싶어하며 다른 이에게 영향을 행사하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도덕적이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아니라 경험한 것 중에 반복과 축적만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선별하여 기억하게 된 신체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부채로 인해 인간은 가치를 재고 평가하고 측정하는 존재가 되었고 어느 사물이나 가격을 지니고 대가로 지불될 수 있다는 일반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의의 가장 오래된 규준이며 객관성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정의는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 타협하고 조정을 통해 합의하려는 좋은 의지였습니다. 그래서 부채를 해소한다는 것은 정합이 제대로 일어나게 하려는 것으로 힘있는 사람에게는 합의가 일어나는 과정이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경합으로 풀어가기 위해 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채권-채무관계는 공동체에서도 발생하여 하나의 공동체에 속하게 된 사람들은 보살핌을 받으면서 동시에 의무를 지게 됩니다. 그래서 형벌은 이탈자에게 취해지는 정상적인 조치로 잔인함을 포함합니다. 공동체의 힘이 강해지면 사회는 좀 더 인간적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관용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이 자비이며 좀 더 강한 자의 특권입니다. 하지만 사회가 적을 용인해 줄만큼 힘이 충분히 강하지 않은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힘과 힘이 충돌하는 본질이 드러나고, 여기서 정의나 형벌 등을 규정하는 법이 태어납니다.

니체는 기원과 목적을 구분해서 바라봅니다. 기원은 신체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어떤 도덕법칙이나 과학법칙이 미리 전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왜 생겼는지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힘들이 충돌하는 우연 속에서 태어났을 것입니다. 반면 목적(의미)은 하나의 힘의 의지가 힘이 약한 것을 지배하고, 그 약한 것에 어떤 기능의 의미를 새겼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매번 행해지는 방어와 반작용이 시도된 형식의 변화이자 성공한 반대 활동의 성과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목적이며 기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자신의 힘을 표시하는 지배자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후 조별토론과 3교시에는 현대인은 왜 스스로에게 가해자가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토론했습니다. 우선 양심과 양심의 가책을 구분하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양심은 내가 한 말을 스스로 지키고 실행하는 자에게 생기는 것입니다. 약속할 수 있는 자가 자신이 책임지고자 했던 만큼 다하지 못했을 때 거리낌이 드는 것이 양심의 가책에 대한 본래 기원입니다. 하지만 본능에 의해 살 수 있었던 인간은 사유, 추리, 인과를 통해 의식의 덩어리가 되었고 본능은 지하로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잔인함에 대한 쾌락과 자유롭게 방황하는 인간의 본능은 이제 그 방향을 거꾸로 돌려 인간 내면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양심의 가책의 기원입니다. 국가를 건설하는 폭력적인 자와 양심의 가책을 만들어 부정적인 이상을 건설하는 자는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자유의 본능(어디로든 움직이는 힘에의 의지)가 그 성질을 드러내는 방향이 자신을 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병입니다. 이 병의 메커니즘은 공동체를 물려준 선조의 희생과 공헌에 대한 부채의식이기도 하고, 이것은 지불어되어야만 한다는 확신을 키웁니다. 그리고 이것이 증폭되어 종교적인 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신에 대한 부채감은 끊임없이 성장했고, 이제 죄와 의무를 양심의 가책으로 돌리는 도덕화는 절대 값을 수 없는 영원한 벌이라는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신에 대한 죄의식이 커질수록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 그래서 자신을 둘로 만들어 분열합니다. 그러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가책을 느끼는 것으로 자신이 무엇인가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자신을 부정하고 괴롭히는 것은 고통이면서 쾌감입니다. 쾌감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의도적으로 이는 외부에서 부여된 폭력이 아니라 스스로 중독된 쾌락입니다.

하지만 니체가 계속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은 힘에의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힘은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합니다. 내 안에 소유되어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떠나야지만 증명되는 것입니다. 양심은 인간이 책임이라는 이상한 특권에 대해서 갖는 자랑스러운 인식이며 자신과 운명을 지배하는 힘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 자유본능()을 양심의 가책을 벗어나는 방법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갚아야 한다고 부여된 부채를 감당하려고 하는 반응적인 힘이 아니라 다른 신체, 다른 정신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건강으로 발휘하는 활동임을 환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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