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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수업후기(박희진)

게시물 정보

작성자 콩나물 작성일18-03-27 12:05 조회21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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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떠나지 않는 자의 기만>

 이번 주 수업에서는 종교적인 것에 대해 공부했다. 근영샘이 ‘서구 지성사는 그리스 사유와 기독교 신앙이라는 두 세계의 길항작용이다, (니체식으로 이야기하면) 힘의 의지의 발현과 그 의지를 길들이고 순화시키는 의지와의 대립의 역사다’라고 말씀 하셨다. 요즘 한국 신화를 읽는데, 모든 주인공들이 길을 떠난다. 그 길은 백이면 백, 고생길이다. 서양 신화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길을 떠난 주인공은 힘의 의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세계의 잔혹함을 생생히 체험하기.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기. 모든 생명활동의 조건인 이 몰락과 재생이 자기 속에서도 구현됨을 알기. 이것들이 영웅, 고귀한 자들의 세계이다. 니체는 이 반대편에 종교의 세계를 둔다. 그것은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세계다.


‘예술가로서의 인간형을 정립하려고 나설만큼 비범하거나 굳세지도 못하고,

스스로는 숭고한 자기 극복이란 대가를 감내하면서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실패와 파멸이 삶의 필연적 법칙이라는 점을 남들에게 인식시킬 만큼 강하거나 시야가 넓지도 못하고,

현격한 차등이 존재하는 계급질서와 계급과 계급 간의 그리고 인간과 인간 간의 간극을 깨달을 만큼 신분이 높지도 못한 인간들(p.86)’의 세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죽을 날만, 운명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뭐라고 하고 싶어 하는 의지적 존재 아닌가?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것이 기독교이다. 안식처를 만들고, 몰락하지 않음을 평화로,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음을 사랑으로 미화했다. 그리고 위계와 계급을 인정하지 못하고 떠난 자들과 떠나지 못한 차이를 신 앞에서 평등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았어, 떠나봐야 뭐 있겠어!’ 하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니체는 교만이라고 한다. 교만한 자는 떠날 수 있음과 없음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신체(고귀한)와 없는 신체(비천한)가 있다. 그럴 수 있는 신체, 고귀한 자는 그냥 떠난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힘의 의지를 발현하기에 다른 방식으로서의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배할 때만 이용한다. 떠나지 않으면, 스스로 행하고 힘을 쓰지 않으면 이런 교만에 빠지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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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철학님의 댓글

철학 작성일

독단주의, 관점주의, 대립, 힘의지, 충동, 본능, 욕망 등 니체의 언어가 하나씩 드러납니다. 여기서도 신체와 더불어 고귀한 자 비천한자들에 대하여 종교와 함께 떠나도록 안내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