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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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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대화> 2차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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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푸른달 작성일17-03-29 03:11 조회2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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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선생님의 <대화> 두번째 시간에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사이의 길을 모색하고 계몽가이되 끝까지 자기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선생님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어떻게 리영희 선생님은 당시에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을까요? 물론 선생님께서도 마오도 말년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하시며 비판을 하시지요. 그럼에도 리영희 선생님처럼 남다른 통찰력과 판단력을 가진 분이 당시 문화대혁명을 좋게 볼 수 있었던 그 근거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당시의 배경에 대해 길 선생님께서 보충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흔히 ‘마오주의’라고 불렸던 문화대혁명은 당시 ‘아래로부터 위를 개혁한다’라는 사명으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위에서 결정되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 그래서 소위, 계급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 계급의 소수 집단들이 정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사회 구조였습니다. 그런 시기에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발상은 대단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이는 곧 유럽에 알려졌고 유럽 학생들의 68혁명으로 이어집니다. 68혁명에서 학생들은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대학 점거 시위를 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혁명을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자기혁명’을 주장합니다. 이쯤에서 다시 짚어 보기로 합니다. 마오주의와 68혁명의 연결고리는 무엇이었을까요? 즉, 마오주의의 어떤 면이 당시의 대학생들을 감화시켰을까요?


그것은 자발성이었습니다. 아래로부터 위를 우리가 자발적으로 개혁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혁명한다는 주체 의식이 당시 마오주의와 68혁명의 기치였습니다. 또한 바로 이 점, 아래로부터 위를 주체적으로 개혁한다는 발상이 리영희 선생님께서 당시 문화대혁명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던 믿음이었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체의식은 리영희 선생님이 노신의 영향을 받았던 지점과도 연결됩니다. 노신은 우리 안에 있는 비겁함을 폭로하며 우리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리영희 선생님은 계급적으로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이 스스로 주체의식을 가지고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중국의 새로운 움직임이라는 시선으로 당시의 문화대혁명을 보았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나는 미국식 또는 전통적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와 문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소련의 관료중심적 비밀주의적 공산주의도 아닌, 그 양 체제의 장점을 취사해서 동양적 가치관으로 수정된 ‘제3의 사회제도’랄까, 그런 것을 중공혁명에서 찾아보려 했고, 또 그렇게 기대했던 거예요.(438)

선생님은 돈에 의해 지배되는 미국 자본주의도 엘리트를 중심으로 조직된 소련 공산주의도 아닌 하층 민중으로부터 그들 스스로 만들어낸 변혁의 힘을 보여준 중국 문화대혁명을 통해 당시 남한 사회가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계기를 갖길 바랐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변혁의 흐름은 그 동력만큼이나 많은 문제점을 야기했습니다. 홍위병 일부는 마오의 개인 호위병에 불과했고 문화대혁명 역시 다름 아닌 문화 말살 책이었음이 훗날 드러났을 때 중국은 지식인 사회가 무너지는 대가를 짊어지게 됩니다. (이런 문화대혁명의 폐해에 대해 더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께는 작가 위화가 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길 선생님께서 권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문화대혁명은 아래로부터의 주체적인 혁명으로 사회를 변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공(功)과 ‘홍위병’으로 대변되는 문화 말살의 과(過)를 함께 가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 당대가 지나고 나면 역사가 되고 후세의 새로운 평가와 판단 위에 다시 서게 됩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에 비춰보면, 리영희 선생님이 가진 당대의 시대적 판단과 그 사건의 결과에 대한 후세의 역사적 판단이 달랐습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사건의 내용에 대한 리영희 선생님의 판단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것은 그 시대 속을 거닐던 사람들의 필연적 한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을 대하는 ‘태도’의 일관된 원칙을 엿봅니다. 선생님은 자신이 세계정세에 대해 가져왔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계정세 전반, 특히 중공혁명에 관련한 어떤 문제에 천착, 평가하든지 간에, 그와 같은 나의 지적 행동에는 한 가지 목적과 원칙이 있었어. 외부의 현상을 한국에 투영할 때에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우리 남한사회와 국가 내부의 온갖 부조리와 왜곡을 파악할 수 있도록 그 대조적인 현상으로서 외부의 현상을 제시하는 것이지요. 그것이 지니는 ‘반면교사’적 효용과 의의를 중요시한 거요.” (447)

선생님께서 세계정세를 늘 면밀하게 연구한 것은 그를 통해 남한 사회를 다시 바라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이는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대한민국을 스스로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었습니다.


리영희 선생님은 확실히 당대의 보통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력과 관계망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지금처럼 정보가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이전 이러한 환경이 선생님의 언론인으로서의 활동 및 연구에 대단한 밑받침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선생님은 스스로 말씀하시듯 필연적으로 관념적일 수 밖에 없는 인텔리였습니다. 정보를 가졌던 자와 관념적 인텔리의 조합은 자기 스스로를 우상화하는 계몽가 혹은 잔소리 많은 소위 꼰대로 귀결되기 쉽지요. 그러나 리영희 선생님은 철저한 ‘자기비판’의 태도로 끊임없이 자신의 우상에 맞섰습니다. 그리고 우상에 맞서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글쓰기였습니다.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675)

글쓰기는 진실을 추구하는 행위이고 따라서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는 편견이, 즉 ‘우상’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를 통한 자기 비판은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앞세우고 있는 우상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피고 이를 철저히 부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뒤의 어쩌면 초라할지도 모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는 것, 우리의 진보는 아마 거기서부터 시작하겠지요.





다음주에는 1학기 총정리 페스티벌이 있습니다.

지난 주 드린 질문들 중 각자 하나씩 고르시고 답변을 정리하셔서 5분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최종 3인 선발(유튜브 데뷔!)을 대비해 잘 꾸미고 오라!는 길 선생님의 조언이 있으셨습니다. ㅎㅎㅎ


간식은 각자 조금씩 가져오셔요.

수업 시작은 8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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