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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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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1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혜정이 작성일17-03-25 23:10 조회289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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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1) 2017.3.19.최혜정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 까닭에, 그것을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머리말에서


이번 주에는 이영희 선생님 대화1~3(384)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피노자방과 장자방으로 나누어져서 조별로 논의하여 만들어진 질문들입니다.

<스피노자 룸>

질문 : 지식인이 무엇이며 그들의 역할과 소명은 무엇인가.

<장자방>

질문 : 개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지만 무리는 극히 비이성적인 존재이다에서 개인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 있는데 왜 무리로 가면 비이성적인 존재가 되는 것일까.

지식인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질문>>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우리는 지식인을 책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사상과 사유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영희 선생님이 말하는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대에는 지식인이라고 칭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를 따라야 하냐는 그런 식의 지식인이 아니라 내가 내 행동에 책임을 지고 이 사회에 대한 소명을 느끼는 자가 지식인이 아닐까. 남들이 모르는 정보와 지식을 알아야 지식인이다. 이영희 선생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향과 우상을 파괴하는 것 평생 자신의 임무이자 책무라고 생각을 했다.

이영희 선생님이 생각한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무엇이 우상인가를 알려주는 자다. 우리는 극우, 반공주의에 심각하게 매몰되어 있고 무지하다. 왜 우리에게 이러한 사상을 세뇌시키는가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거기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가져 본 적도 없다. 그 허점과 한계를 생각해 보아야한다. 이런 것들을 깨닫게 해 주는 자가 지식인이다. 사회적인 비판자 역할을 하는 자. 그래서 분별력을 갖는 자라고 이야기가 나오는 거고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책임을 갖는 자. 기자의 역할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을 했다.

지식인이라는 의미가 시대별로 달라진다?

김대중 정권이래로 신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생겼는데 지금의 시대는 지식인이 불필요해진 시대가 왔으며 지식인에게 별로 기대하는 게 없는 시대이다. 많이 아는 자, 거기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자를 신지식인이라고 하였다. 지식과 정보라고 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대중화되어 있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지식인은 무엇일까

몇 차례의 개혁을 통해서 혁명은 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왜 우리는 변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가. 두려움 때문에 반공의식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스스로가 깨달아야 하는 문제다. 삶에 있어서 자기 사상을 만드는 사람. 자기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자. 여기서 머무는 것은 자기존재만 바꾸는 자이고 앎과 삶이 일치되는 지식인의 삶은 나의 우상 파괴, 나의 습속을 바꾸는 일뿐만 아니라 그걸 통해서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알게 하는 자. 그러나 그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시대는 개인 스스로가 지성을 발휘해야 한다. 대중지성=무리지성은 대중이 지성과 지식의 소비자가 아니고 지성의 생산자로 만들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각 시대가 요구하는 지식인들의 표상은 계몽가, 즉 지식을 독점하고 있거나 선각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그 지성과 지식을 잘 사용해서 공적 역할들을 요구받는 사람들이었다. 이 시대는 지성이나 지식이 위계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부터 훌륭한 별들을 향해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자기 스스로가 빛을 갖는, 지식의 등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인들의 책임감, 시대적 소명은 무엇인가?

이광수, 노신의 민족개조론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정적인 차이는 이광수는 계몽시켜주겠다는 것이다. 계몽의 빛을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신은 계몽은 시켜주겠다라는 입장은 같지만 자기도 그 빛 속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식인의 입장에서 자기 스스로도 처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까지 최후까지 몰락해야 된다는 태도가 루쉰에게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것이다.

예전의 지식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앎의 영역속의 지식인들을 생각했다. 많이 아는 사람 혹은 선각한 사람. 흔히 지식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앎이 많은 사람보다는 삶에서 앎을 발화해서 실천하는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다. 예전에는 그 앎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특별한 앎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앎 자체가 대중화,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특화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예전에는 많이 아는 자가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자다. 그런 지식인에 대해서 믿음이 있었다고 생각을 했다. 많이 아는 자는 그것에 대해서 실천하는 자이고 길을 제시하는 자라고 하는 것에 기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지식인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지성은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어떻게 내 삶으로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어떻게 자기 삶에 되돌려서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항상 그런 질문 앞에 나를 세울 수 있을 때, 내가 설 수 있는 때이다.

--소감

오래간만에 8~9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대 외치던 반정부’, ‘반미의 함성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ㅋㅋ

시대마다 요구하는 지식인의 상들은 조금씩 틀리지만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다를 것이 없다. , 자기의 앎을 삶으로 펼쳐보여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우리 스스로가 지성은 생산하는 사람이 되고 그것을 어떻게 내 삶으로 실천할 것인가가 중요해지는 시대라고 말씀하셨다. 책을 읽거나 삶에서 알게 된 지식들을 각자의 삶으로 녹여 낼 수 있을 때 지식인의 한 사람이라고 소심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주 간식 담당- 손진아샘, 이영순 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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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리영희 선생님의 생 자체가 지성의 약동으로 이어진 듯하다는 인상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일본에 대한 평가나 박정희에 대한 평가, 마오주의 혁명에 대한 시야와 통찰 등은 아주 값졌습니다. 어른다웠달까요. 한 학기 한 학기 지나면 우리도 지금보다는 어른이 되어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