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강학원

본문 바로가기
남산강학원을 즐겨찾기에 추가
사이트 내 전체검색

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꼴레주 20 꼴레주20

대화 1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공기 작성일17-03-25 10:05 조회216회 댓글1건

본문

남산강학원/콜레쥬 20 질문학교/대화 1주차 후기/2017.3.25./강은정

 

<대화>는 지식인 리영희선생님의 삶이 담겨 있는 자서전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읽으면서, 고등학교 때 배운 근현대사와는 아주 다른 한국의 근현대사 책을 읽는 것 같았습니다. 길샘의 표현을 빌리자면 리영희선생님은 자기 삶과 현대사가 분리가 되지 않는 분, 즉 근현대사와 무관하지 않은 삶을 사신 분이라는군요.

스피노자조에서는 흥숙샘이 책속에 나오는 제기동의 모습이나 군사정권시절 서울의 모습(?)등 직접 경험하신 이야기를 해주셔서 조금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토론이 오고 갔어요. 스피노자조의 질문은 크게 한가지였는데요. '지식인이란 무엇이고 그 역할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여 '우리는 지식인이 될 수 있는가?‘였습니다.

장자조에서는 토론 전 리영희선생님을 아는 사람과 리영희선생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면서, 민감한 개인정보인 나이를 반강요(?)로 밝히게 되셨다고 합니다.^^ 장자조에서는 스피노자조에서 했던 질문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는 질문이 아니다라고 했다는군요. ? 우리 모두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랍니다.

 

지식인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 그렇다면 각자가 갖고 있는 지식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의 사상과 생각을 만들어내는 삶, 자기 삶과 일치가 되는 사람이지 않을까? 장자조에서의 의미는 지식인이다가 아니라 우리가 이런 지식인이 되어야 하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7쪽의 지식인이 무엇인지 리영희선생님이 정의한 부분이 있는데 앎과 삶이 일치가 되고 실천해 가는 사람이 지식인 아닐까?

*외부의 문제 뿐 만아니라 내부 문제에 대한 각성들이 복합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시대마다 다른 듯하다. 90년대 이전은 계몽적 성격이 짙었고, IMF이후에는 네이버의 지식인처럼 정보,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지식인을 인식하는 것 같다.

*지식인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요즘 연예인은 지식인일까?

*등장인물 외삼촌과 머슴 문학빈을 통해 지식인을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앎과 삶이 일치한다고 지식인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한 축만 가지고 지식인이라 할 수 있나?

지식인은 냉정한 과학적 관찰력과 사회구성체에 대한 이론적 분석능력을 갖춘 사람”(214)이다.

이렇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인에 대한 생각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리고 길샘이 지식인에 대한 정리를 해주셨습니다.

통역장교시절 리영희선생님은 지식인이 아니었다. 지식인은 아는 자, 즉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아는 자이되 우상을 파괴하는 자이다.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무엇이 우상인가를 알게 하는 자! 극우 반공주의가 왜 추구되고 있고, 세뇌되어 있는가에 허점과 한계를 알려주는 자! 그냥 영향을 주는 자라기보다 분별력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는자! 리영희선생님은 합동통신 시절 기자일 때부터 지식인이었다. 기자의 역할이 지식인의 역할인 듯! 알면 말해야 하는 자! 리영희선생님 시대의 지식인은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 지식인은? 신지식인? 지식인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 지식에 기대는 이상들이 달라진 시대, 지식인에 기대는 신념이 없어진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가 대중화된 시대, 웬만한 정보는 다 알고 있는 시대, 지식인이라는 특별한 전문가에 기대지 않는다. 연예인은 지식이 아니다. 우리는 4?19혁명 등 몇 차례의 혁명이 있었는데 반공의식이라는 우상은 왜 없어지지 않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으로 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자! 앎과 삶의 일치,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샘이 감이당의 대중지성의 역사를 말씀해 주셨는데요. 처음 연구실은 지식인 공동체로 석박사, 연구자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답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대중지성(다중지성, 무리지성 같은 개념)이라는 문제제기가 나오게 되었답니다. 대중이 소비자가 아닌 지성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 문제의식의 중요한 점이라고 합니다. 지식을 독점, 선각하고 있고, 공적 역할을 요구 받던 지식인이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 시대에 와서는 그 위계가 의미가 없어진 거지요.

지금 시대는 수많은 지식들 중에서 내 스스로 지식의 길들을 만들어 가는 문제로 다가오게 됩니다. 지금 남산강학원이나 감이당의 대중지성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선생님 동료와 함께 훌륭한 담론을 생산하는 것으로 대중이 곧 지성의 생산자가 되는 것이라는 거죠. 리영희선생님이 지식인으로서 가졌던 책임감은 지금의 대중지성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생산하는 자로서 내 몫과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요. 리영희선생님이 노신을 참조하는 부분, 이광수와 노신의 민족개조론의 차이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광수는 내가 계몽을 시켜주겠다.’라는 것으로 자신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는 오만함이 있었습니다. 반면 노신은 지식이 내 스스로에 대해서 얼마나 떳떳해 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거죠. 예전에는 많이 아는 자가 실천하는 자이고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자였지만 어느 순간 지식인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고, 지식과 삶이 별개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는데요. 지식과 내 삶을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그런 질문 앞에 나를 세우는 것이 문제이지 않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식인의 자기 타협의 문제에 대해 길샘이 말씀해 주셨는데요. 리영희선생님이 기자로서 각종 유혹과 가족, 경제적 문제등과 타협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은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가는 단독성으로 그 속에는 나 자신도 믿지 않는 다는 겁니다. 이것은 앎과 삶이 같이 순환할 때 가능합니다. 삶에 안주하려 할 때 앎이 나를 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자기 안에 갇히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노신이 중국사람으로서 중국을 비판하는 부분입니다.

리영희선생님의 사회과학적 탐구 방법은 부정하는 자료와 긍정하는 자료를 모두 분석함으로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과 알고자 하는 것 등 내 문제를 기꺼이 마주치겠다는 마음입니다. 그것을 통해 최선의 길을 찾는 것이죠. 확신하는 것은 위태롭습니다. 자기 확신에 찬 것은 위험합니다. 의심하는 것! 리영희선생님이 자료를 보는 태도입니다. 확신이 없는 상태라 이것도 살피고 저것도 살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일 간식 담당은 손진아샘, 이영순 샘입니다.

내일 뵈어요~^^


대화 1주차후기.hwp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Me2Day로 보내기 게시글을 요즘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그러게요. 리영희 선생 뵙고나니 막상 지식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어도, 선뜻 지식인이라고 말하기가 주저될 듯. 그렇게 멈칫 한 번 주저하고, 다시 자기 선 자리를 묻는 반복 위에 서는 게 지식인일지도 모르겠구요. 꼴레주에서 읽는 책들이 새삼 신선해지는 일요일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