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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후기)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벽달 작성일17-11-19 13:03 조회44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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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무풍샘께서 수업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거의 완벽하게 후기로 남겨주셔서 중복되는 후기를 피하고자

제 나름대로 박지원의 글을 읽으며 느낀 부분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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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였다.

박지원은 맨 처음부터 마치 내가 황하를 마주하고 있는 듯 황하의 미친 물결과 사나운 굉음을 실감나게 묘사하더니

갑자기 강물 소리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건 무슨 뜻인가?


박지원은 황하를 이야기하다가 난데없이 자신이 살던 연암협 산골짜기의 집 앞 개울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전환한다.

여름철 소낙비가 지나갈 때마다 개울물이 불어 수레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라고. 그런데 문을 닫고 소리를 들어보면 그때마다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고.

소낙비에 불어난 개울물 소리는 다를 것이 없는데 들을 때마다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소리를 이미 설정해놓고서 귀가 그렇게 소리를 듣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개울물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을 땐 마음이란 것이 다른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 것이 된다.


박지원은 다시 황하로 돌아와 한밤중에 황하를 아홉 번 건넌 이야기를 한다.

천리 밖에 폭우가 내리면 천리 아래에서 미친 물결을 일으키고 굉음이 나는 곳이 바로 황하다.

소낙비에 불어난 집 앞 개울물 소리에도 온갖 마음이 생겨났는데, 엄청난 규모의 황하 앞에서 박지원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박지원은 황하를 건너는 사람들이 고개를 위로 쳐들고 아래를 보지 않는 이유가 기도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물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임을 알았다. 물을 보면 탈이 나기 때문에 보면 안 된다고.

물을 보면 마치 자기 몸이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고 눈은 강물과 함께 따라 내려가는 것만 같아서

갑자기 빙그레 도는 듯 현기증이 생기면서 물에 빠지게된다. 눈에 현혹되면 마음 또한 망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앞부분에서 소리는 귀가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고 해놓고 여기에서는 눈으로 인해 마음이 뒤흔들리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말하니 말이다.

연압협의 개울물에서는 마음이 소리를 다르게 바꾸는데, 황하에서는 눈으로 보면 마음이 요동친다고 말한다.


이상한 것은 또 있다. 낮에는 눈에 보이는 물결과 파도 때문에 황하의 굉음이 들리지 않는데,

밤에는 물결은 안 보이는데 그 소리로 건너는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것.

귀는 그대로인데 낮에 있느냐 밤에 있느냐에 따라 황하의 굉음은 들리기도 하고 들리지 않기도 한다.

나는 내 귀(또는 눈)를 믿을 수 있을까.

박지원은 같은 강물 소리도 내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

원래부터 내 귀(또는 눈)는 믿을 수 없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음을 고요히 비우고 황하와 한 몸이 되는 순간 강물 소리가 없어져 아홉 번이나 강물을 건너는데도 아무런 근심이 없었다

박지원의 글은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나 내 눈으로 들어오는 빛, 모양, 형태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해서

허상을 만들어냄을, 따라서 눈과 귀를 경계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함을 알려주었다.


내 마음을 비우면 정말 소리가 지워질 것인가? 바로 실험해볼 일이 생겼다. 치과에 가서 잇몸수술을 받기로 한 것.

평소에도 걱정과 겁이 많은 나한테 치과는 정말 최고로 가기 싫은 곳이다.

30분간의 수술동안 드릴소리 같은 온갖 기계음과 이를 가는 소리, 물소리 등이 합쳐서 황화 못지않은 굉음이 들렸다.

내 마음을 다 비우지 못 했는지 소리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감고서 저 소리들은 나와 상관없는 바깥 사물일 뿐이다, 그로인해 내 마음이 덩달아 움직이게 하지는 말자고

다짐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두려움에 빠지지 않고 나를 건져낼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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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외물은 외물일 뿐!! 이라는 말은 외물이 마음먹기에 따라 사라진다는 건 아닐 거예요. 마음을 비운다고 외물이 사라질리가! 다만 외물의 그 '외물-됨(?)'은 언제나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아니 마음에 따른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마음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외물은 전혀 다른 세계로 펼쳐지겠죠. 그렇기에 그렇게 펼쳐지는 세계 속에서는 아마도 두려움 등등 모든 게 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그 두려움을 미리 예단하거나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등등 마음으로 먼저 만들어내지 않게 될 거라는 것? ^^
제 마음으로, 재준샘의 쾌유를 빕니다.

새벽달님의 댓글

새벽달 댓글의 댓글 작성일

다양한 책을 읽고 싶어 시작한 꼴레주였으나 돌이켜보니 얻게 된 것은 많은 지식이 아니라 결국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여러가지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지식을 얻고자 하던 예전의 책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음은 물론이고, 내가 사는 세상,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음을 느낍니다.
그 길에 기꺼이 동행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