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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내 사유의 한계를 탐험하는 한편의 추리소설이자 SF입니다. 자신의 경계를 탐험하고 돌파하기! 글쓰기 강학원에서는 읽기와 쓰기의 초식을 훈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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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게시물 정보

작성자 무풍 작성일17-11-13 00:07 조회8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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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박지원)

무풍

푸코조에서는

"우리는 왜 유목조만큼 공부를 잘 하지 못하나?"라는 군기반장 유정샘(지난 주 그녀는 결석하셨다! 동네 "계모임"으로 인하여 무엇보다도 중요한 수업을... ㅎ ㅎ )의 호된 질책을 받으면서도 조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모든 것이 조를 요렇게 맹글어 준 문샘탓 ㅠㅠ"이라고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조원들은 주제넘게 "유정"이라는 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발표를 잘하라고 충고까지 하면서 꿋꿋하게(!) 토론을 이어 나갔다.

질문 :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에서 본분은 무엇이며, 인식과 어떻게 다른가?

“앵무새의 지혜”, 코끼리, 코고는 소리, 아름다운 여인 관찰, 물소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 “이름이란 내가 아니다”, “사마천과 나비 잡는 아이”, 선비의 독서하는 방법 등에 대하여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목조의 설명을 너무 자세히 듣다가 받아 적지 못해서 생략해요. 적자생존(적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다)이 안되었네요. ㅠ ㅠ

훌륭하신 재준샘이 곧 게시할 후기를 참조시기를....

열하일기와 목민심서로 대표되는 박지원(갑신정변 박규수 할아버지)과 정약용은 조선 정조시대에 같이 생존했지만, 한번도 만난 적은 없다고 한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어렸을 때부터 글재주가 소문이 났다는 연암은 사물에 대한 관심과 묘사가 뛰어나다. 박지원은 홍대용, 박제가(스승), 유득공/이덕무(서얼), 백동수(무인)과 탑골공원 근처에서 친하게 지냈다. "백동수가 잡아준 황해도 금천군 연암 산골짜기(연암협)(202쪽)"에서 많은 기간을 기거하며 글을 썼다. 연암은 장인 이보천과 이양천(장인 동생)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사기, 장자 및 맹자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전체 토론시간에 모든 학인이 동의한 바와 같이 연암이 어려운 한자를 가지고도 사물을 자세하고 재미나게 묘사를 하였다는 점이 대단하다. 전체 토론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다.


1. 자신의 본분으로 돌아가라.

길샘은 소경에게 도로 눈을 감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충고하는 것은 기존의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분별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소경의 경우에서 보는 바와 같이 눈이 사람을 현혹하게 하여 분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박지원이 말하는 명()은 하늘의 이치<道>, 자연스러움, 사심이 없는 것, 내마음이 편안하게 하는 것으로 길샘은 해석하셨다.

마중한다는 것은 미리 헤아린다는 것이고, 붙잡는다는 것은 억지로 애쓴다는 것이고, 깨우친다는 것은 보내는 것이다. 너는 마음에 머물게 하지 말고 기에 막힘이 없게 하라. 그것을 명(命)으로 순응케 하여 (중략) 흰구름이 일어나리로다 (42)

그러나 보여주고 보는 그 사이에는 규칙()이 존재하네. (중략) 기꺼이 따르는 이치일 것이네(63).


2. 사마천과 나비 잡는 아이

길샘은 사마천의 사기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였으며, 승상이 되었지만 최고의 극형인 오형을 당한 이사편을 읽으면

서 이 부분이 와 닿았다고 말씀하였다.

이사는 하늘을 우러러 한탄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 죽을 수도 없게 되었으니 도대체

어찌한단 말인가!” 결국 이사도 조고의 계책을 따르기로 하였다. (중략) 이세황제 2, 이사의 얼굴에 죄인의 문신을 새기고 코를

베며 다리를 절단하고 생식기를 잘라내며 머리를 쪼개는 오형(五刑) 내린 함양 시장에서 허리를 자르도록 하였다. 이사의

삼족(三族) 모두 사형을 당하였다(사마천 사기열전 이사편).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67)”는 글쓴이가 머썩해 하는 부분과 놓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좋다고 길샘이 알려 주셨다.

문샘이 연암은 마음으로 책을 읽어라고 말하는데, 다산은 자식에게 연대표를 외우면서 책을 읽어라고 충고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두 사람의 독서법이 완연히 다르다. 아마 유명한 노론집안에서 태어나 과거시험 1차에 수석하고도 2차시험에서 백지를 내고 나온 호탕한 성격의 박지원과 변변치 않은 집안에서 열심히 공부하여 관직에 오른 정약용의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3. 법고창신

박지원의 제자인 서자 출신 박제가(13년 나이차)의 글과 관련된 내용이다. 박제가가 케케묵은 말을 지나치게 없애려 힘쓰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불경한 데 근접하기도 했지만 그는 옛 문체를 활용하면서도 그 문체에만 얽매이지 않고 변화시키는 부분에 대하여 연암은 좋게 생각했.

연암 그 자신도 조선에서 정해진 서문과 기문의 공식대로 하지 않고 해당 서문과 기문을 원하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는 글을 지어 제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정조 때(1788년) "문체반정(당시 유행한 한문문체를 개혁하여 순정고문으로 환원시키려고 한 정책)"으로 고초를 겪었다.

법고창신은 진실로 옛 것을 본받으면서도 능히 변화시킬 줄 알고, 새 문제를 만들면서도 고전에 근거를 둔다면 지금 사람의 글

도 고인의 글과 같을 것이다(73-74).


4. 문장 작법과 병법

문장 작법과 병법에서 글을 쓰는 것을 군사, 장수 등의 병법으로 감질맛 나게 잘 설명하고 있다. 북학편에서는 청나라 국민들이 사는 방법을 고찰하여 조선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제도와 문물(기와, 똥거름, 벽돌, 가마, 수레 등)을 받아들여 국가를 부흥시키고자 그의 깊은 뜻을 접할 수 있다.


5. 기타

개인적으로 박지원의 글을 제대로 접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5세에 과거를 포기한 후 49세까지 백수생활을 하다가 친구의 천거로 50세부터 65세까지 관직에 종사하는 특이한 인생역정이 바탕이 된 그의 글은 사물과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의미를 관통하면서 그림을 그리듯이 세밀하게 묘사한다.

"마음으로 보라" 산문이 가장 마음에 든다. 연암은 백오가 바로 보는 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관재(觀齋)의 의미에 적합하게 제대로 된 기문을 제공하기 위하여 치준대사와 동자승의 대화를 인용한다. 그 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불교의 공(空)에 대한 개념과 마음으로 보는 의미에 대해 쉽게 근접할 수 있게 되었다. 치준대사의 말귀를 알아 들은 동자승마저도 존경스럽다.

사미승아! 너는 그 향기를 맡느냐? 향기--> 재, 연기--> 허공( 41쪽)

도는 장차 어디에 있는 것인가? 道--> 公--> 空--> 行--> 至--> 止--> 平--> 正--> 中--> 道 (62쪽)


문샘이 말씀하신대로 글은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며 글에 대한 지적에 글쓴이가 마음 아파한다는 점에 완전 동감한다. 연암의 글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잘 몰랐던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차츰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지원처럼 쉽고 구체적이면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것이 독서 "일과를 정해주는(112쪽)" 꼴레주20 글쓰기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학인들의 바람일 것이다.


독서하는 방법으로는 일과를 정해놓고 하는 것이 제일 좋고, 오늘 읽을 것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제일 나쁜 방법이다.

너무 많이 읽으려고 욕심내지 말고 빨리 읽으려고 하지도 말라. 순서와 횟수를 한정해 놓고 날마다 하여야 한다. 가리키는 대의를

정밀하고 분명하게 하며 음성은 무르녹게, 뜻은 익숙하게 한다면 절로 암송하게 될 것인데, 그런 다음에 차례대로 그 다음으로

넘어간다(112쪽)


향원부터 시작한 2017년 꼴레주20 글쓰기가 마무리 되네요. 담주는 나머지 부분을 읽고, 발표시 발표할 책을 정해오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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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문리스님의 댓글

문리스 작성일

푸하하하. 내가 누군가에게 탐나는 조원이 되려하기보다 누구보다 탐나는 조원을 탐내는 마음이라니!! 도로 눈을 감고 토론하시압!!!^^ 글쓰기(문장) 교본을 놓고 공부하려는 처남에게 써준 <글쓰기와 병법>이란 글에서 연암은 자신의 글쓰기 이론(?)을 다시 스스로 자신의 글에서 펼쳐보이는 신공을 보여주었죠. 그렇다면 글쓰기가 자기 존재라는 말씀으로 전개되는 무풍샘의 글쓰기는 다시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는 글쓰기인 거? 그런데  <향연>을 향원이라 쓰는 이 우연한 어긋남은 무슨 조화일지... 예로부터 '향원'이란 공자님께서 경계하셨던 혹세무민 지식인의 이름(사이비)이 아니더냔 말입니다... ㅠ.ㅠ 난 무풍샘이 향원이라고 생각하지 않, 습니다!! 이렇게 존재규정하시 마세요...

무풍님의 댓글

무풍 작성일

아뿔사!! 마지막에 오타가ㅠㅠ 내년 꼴레쥬20에서 더 열공해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