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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에세이 후기 by리듬방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1-01-07 21:32 조회9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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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후기>

2020년 12월26일, <2020년 읽생 철학학교>(이하 <철학학교>) 공부를 매듭짓는 에세이가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정이 바뀐 관계로 평년보다 늦은 마무리였죠~ 이번 <철학학교>에서 저희는 1년 동안 들뢰즈/과타리의 『천개의 고원』을 읽고 쓰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3시즌(각 10주)을 지내고, 마지막 5주 동안 멤버들은 2개의 조로 나누어 하나의 완성된 글을 생산하기 위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고, 글을 다듬으며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맞이한 대망의 에세이 발표! 1년의 과정을 마무리하면 마음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쉬움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몇몇 선생님들은 에세이가 끝난 직후 모임을 만들어 글을 수정하는 작업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저희 <리듬방>(연초 공부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기 위해 활동한 <철학학교> 서브 모임-수니, 미자, 은경, 희영, 줄자) 멤버들은 에세이 후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발표 후 열흘이 지나긴 했지만 ^^:: 그래도 저희는 이렇게 이 후기를 마무리이자 새로운 공부의 시작으로 삼고자 합니다~


수니샘> written by 수니

이번 에세이 주제는 ‘내가 공부를 어떤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새롭게 공부의 길을 낼 수 있는지’였다. 그리고 이것을 들·가의 변용태 개념을 통해 알아보고자 했다. 그런데 매번 그랬지만 이번도 완전 망했다. 문제는 뭐였을까?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글을 쓸 때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집중? 정신집중? 이런게 아니다. 글에서 문제 삼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매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매번 이런 저런 얘기를 끌어다 쓰고 있었다. 줄자샘이 코멘트 한 회사의 승진은 내 글의 문제의식(공부에서 편안하고자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글의 순서에서 ‘기승전결’로 따지자면, 이번 글은 ‘기승’은 갔지만, 중요한 ‘전’과 ‘결’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전’에서 내 생각을 뒤집어 놓는 사유를 해야 했지만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다시 ‘공부를 통해 편안해지고 싶다’ 이런 느낌의 글을 결론 맺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실패를 다시 되새기며... 2021년에 글쓰기를 통해 나의 무지를 일깨우는 공부를 새롭게 해보자!!!


모긴샘>

목인샘은 밤을 새며 드라마에 푹 빠지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런 자신이 폐인 같았다고 한다.(나-수니-는 드라마 좋아하는데 잠순이라 밤은 절대 못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이 왜 그렇게 푹 빠졌는지를 자신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그것을 논문으로까지 쓰고 있다고 한다. (저번 학기 함백 에세이에서 저녁에 그 드라마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던 모긴샘, 그리고 그 이야기로 웃고 떠들던 때가 생각난다.)

이번 에세이에서 이런 자신의 감정을 알아보고 아이-되기(도주선?)를 썼다. ‘전체 글에서 들뢰즈는 ‘강렬도’를 말하는데 이런게 아니라, 자극, 쾌락인 것처럼 보여진다’는 코멘트가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건은 생산적이어야 감응(지안샘은 공감과 감응에 대해 썼는데 참조)이 일어난다고 한다. 이런 감응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식의 공명(검은 구멍, 왜곡된 감각)에서 글쓰기로 도주선을 낸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공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다행히 모긴샘도 에세이를 다시 쓴다고 하니, 기대를 해보아도 될 듯하다. 완성된 에세이 기대합니다!!! 주체(드라마)와의 공명에서 벗어나는 도주로를 찾기를...


은경샘> written by 은경

글쓰기와 글을 쓰는 나를 특권적인 모습으로 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특권적 모습을 해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패터슨도 창조자처럼 그려지고 있다. 나의 글쓰기 욕망이 아니라 그냥 글쓰기와 무리되기로 바로 가야 한다. 글쓰기는 타자, 접속에 대한 강렬한 열망에서부터 나온다. 내 안에 너무 갇혀 있지 말고, 패터슨은 어떻게 무리가 되었나? 글쓰기와 무리되기는 어떻게 같은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소담샘>

반성과 홈 패인 공간에 대해서는 풀렸는데, 성찰과 매끈한 공간에 대한 부분이 풀리지 않았다. 매끈한 공간과 이어지는 필연이라는 것은 그 배치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반성은 출구를 열어 주지 않는다. 반성에서의 가능성은 허위적 가능성이다. 미끄러져 경로를 벗어나는 공간에서만 출구, 진짜 가능성이 열린다. 다시 말해 필연의 세계에서만 진짜 출구가 열린다. 글쓰기에서 편한 습관대로만 힘을 쓰지 말고, 또 뚫어야 할 지점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실제 사건의 장에서 필연으로 사건을 파악한다는 것이 출구를 내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매커니즘을 봐야 한다. 싸움의 현장에서 방관자적 태도가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는지 계속 실험해 봐야 한다.


호정샘>

속도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가 있어야 했다.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 지점을 돌파하는 것으로서의 속도와 바둑알이 문제제기의 핵심이었다. 바둑알은 어디서든 배치체를 형성하고, 또 출구를 낸다. 유목민처럼 온전히 자기 자리에 자기를 놓고 집중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문제를 공부공동체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근본적인 삶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왜 공부하는지? 공동체는 무엇인지? 다시 질문을 해야 한다.


희영샘> written by 희영

다수성과 생성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면, 다수성과 생성이 함께 갈 수 있느냐라는 질문 자체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섣불리 작은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기 전에, 좀 더 세밀히 자신과 개념을 탐색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축적과 연결된 글을 세 번 연달아 썼습니다. 아직까지 축적의 배치를 떠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해 많은 실망~도 하였지만,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축적이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삶의 많은 태도와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축적과 다수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나갈 것 같아요~)


주영샘> 우선, 개념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 가산집합이 일상에서는 어떻게 드러나고, 가산집합은 어떤 경쟁을 가져오는지가 구체적으로 풀어져야 한다. 헨리 밀러를 주인용문으로 가져가면서 글을 쓰면,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로 풀기 쉬울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하는 경쟁의 폭력성을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것을 도덕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것이 가져오는 쾌락적인 측면(폭력이 어떤 배치에서 재생산되는지)을 보아야 한다.


줄자샘> written by 줄자

줄자샘은 『천개의 고원』 에세이지만, 카프카의 단편소설 「요제피네, 여가수 혹은 서씨족」을 들뢰즈 과타리의 시선으로 보는 것을 목표로 글을 썼습니다. 문학작품에 관한 글을 쓸 때 중요한 점은 자신이 그 작품을 어떤 주제로 읽을 것인지 명확하게 잡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글은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지 못해 작품에 끌려다니는 것 같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요제피네~」는 카프카가 말년에 예술을 자신의 방식으로 정의 내린 작품인데, 그에 관한 핵심이 에세이에 명확히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배움이 있었는지를 말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지요. 그래서일까요? 글을 보는 이들에게는 줄자샘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언어, 자신의 사전으로 카프카가 보여주는 새로운 예술가에 대한 정의가 정리되어 나와야 한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재겸샘>

재겸샘은 <미시 정치와 절편성>에 관하여 글을 쓰셨습니다. 5주간 에세이를 준비하며 많이 다듬어지긴 했는데, 더 깊이 못들어가신 것이 아쉬웠습니다. 외부(초월적, 법)의 권위에 의존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보고자 하셨는데, 과연 외부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대상이면 규모에 상관없이 내부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단 한 명의 사람일지라도 외부가 되는 것이 아닐까요?

처음 주제를 잡을 때 방향이 잘 잡히지 않으신 것이 정리가 되지 않아서 인지, 마지막 글에서 꼭지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지 않고 따로 있는 느낌이다. 자신의 질문을 풀기 위해핵심적 프레임을 하나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지안샘>

지안샘은 에세이 기간 초반에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가닿지 않음에 대해 고민하며 ‘소통’에 관해 고민하며 글 작업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2020년 12월 12일) 공명이 아닌 감응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며 기존과 다른 글을 쓰게 되었지요. 그랬을 때 지안샘이 바로 ‘어떻게 감응하지?’에 집중해서 집중을 했어야 한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났을 때 기존의 언어를 버리고 새로운 언어로 바로 가면 그 배움이 내것으로 장착됩니다. 그러나 지안샘은 기존 생각을 점검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탐험까지 가지 못했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에세이 수정하는 팀에서 새로이 작업하시는데, 그 결과가 궁금합니다!


미자샘> written by 미자

샘은 『숲은 생각한다』의 핵심 개념인 상호주관성을 놓쳤다. 상호주관성은 나의 세계와 너의 세계가 동등하게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착한 사람이야 하면 상대도 착한 사람이구나 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샘은 나는 착하지 않고 상대도 착하지 않아 하면서 상호주관성에서 후퇴하고 말았다. ‘그도 나쁜 짓을 하고, 나도 나쁜 짓을 해’ 이것이 상호주관성은 아니다. 2페이지 인용문 다음부터 『숲의 생각한다』가 말하는 핵심에서 벗어나 버렸다. 나는 세계 속의 일부가 상호주관성은 아니지 않나. 책에 나오는 개념으로 어떻게든 자신의 문제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샘은 그 문제를 회피해 버렸다.


철수샘>

문제의식에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 글이다. 글을 쓰다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문제의식이 아니었네 하는 지점이 있다. 그러면 과감히 처음 생각한 문제의식을 버리고 새로 잡힌 문제의식으로 써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본전 생각에--;) 샘처럼 두 편의 글이 되고 만다. 선착순(남병정게)과 성과주의처럼 말이다. 문제의식이 성과주의 임을 알았다면 처음의 선착순과 뒷부분을 버리고 성과주의로 시작해서 글을 써야 한다. 프로포잘을 쓴다는 것은 이런 4주차나 걸리는 과정을 거친 후에 나온 문제의식을 써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쉽게 프로포잘을 써갔는지. 그래서 철수샘은 성과주의로 다시 글을 쓰고 있는데요. 어떤 글일지 궁금합니다. 샘~홧팅이에요!



<철학학교> 숙제방 글 번호가 연초 1학기 시작할 때  376번 이었는데 졸업 에세이는 724번으로 마무리 했군요. 선생님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특히 저희를 밀고 끌고 당겨주신 튜터 근영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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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호저님의 댓글

남산호저 작성일

무리-되기 후기 잘 읽었습니다! 다양체들의 목소리가 우글우글 해서 넘 좋은데요~ ㅎㅎ
마지막 사진 정말 뜨헉!입니다^^
안 올린 것까지 포함하면 400개쯤 되겠나요~
정말이지 과정이 '다'였던 철학학교!!
서로 밀고 끌고 당기는 과정을 함께 거쳐온 철학학교 샘들과 근영샘,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 후기를 멋지게 장식해주신 리듬방 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