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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기 6주차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홈피지기 작성일20-10-12 10:00 조회13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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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인샘의 후기입니다. ^^



<숲은 생각한다>


이번주는 캐나다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시작, 3부중 첫 1부를 통해 이 책의 대략적인 기획을 훑어보려 했습니다. 그는 서론에서 ‘’인간적인 시선, 혹은 프레임으로 인간 외 다른 존재들을 바라봄으로써 인간 특유의 경향을 보편화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줍니다. 특히 그는 1부에서 우리가 언어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표상에 대한 논의를 갖고오는데, 바로 표상을 포함한 기호라는 것이 인간한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그에 따르면 기호는 3가지로 나뉘는데, 아이콘적 기호, 인덱스적 기호, 상징적 기호입니다. 이것을 나뉘는 기준은 지시체와 지시대상의 연결 상의 거리로서, 아이콘은 그 유사성으로 인해 격차가 거의 없고, 인덱스는 지시하는 것이 있으나 바로 해소되기 때문에 맥락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반면 상징은 다른 상징과 계속 연결됨으로써 맥락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미의 체계가 바로 인간의 언어입니다.

 

상징(심볼)의 놀라운 점은 원래 말과 사물이 밀착돼 있었는데, 말이 점점 사물로부터 탈영토화된 결과, 말이 더이상 사물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 자율적 원칙으로 표현의 영역이 생긴 것에 대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말이 밀착돼있는 사물이 더 이상 없는데 생각이 가능해지니 공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구요.

 

우리는 토론을 하면서 콘의 한 에피소드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 연결되는 의미망에 갇힐 때 일어나는 공황상태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많은 공감을 했는데요, 근영쌤은 언어가 우리의 사고를 한정짓는 이런 기능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 지적하셨죠. ’인간적이라는 것이 갖는 문제의식에 바로 비인간이란 개념을 대안삼아 올라탄다거나 이원론을 극복해야한다고 바로 이항대립을 부정한다거나 하는 대응같은 것, 우리가 책을 읽었을 때 저자의 논리를 대하는 너무 익숙한 반응인것이죠.

 

인류학이 워낙 방대하고 복잡한 학문이다보니 낯선 개념들이 나오면 제대로 찾아볼 엄두조차 못내고, 대충 해석해서 뭉뚱그리는 경향이 있으니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빨리 결정짓지 말고 각론, 그 관계, 문제의 지점, 개념도 세심하게 보아야 한다고도 하셨구요. 그런 면에서 첫 장에서 얘기되는 콘의 기본 개념은 한 마디로 살아있는 것은 기호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즉 기호를 갖고 있는 것이 생명체라는 말과 같은데요, 생명이란 것 자체가 기호과정의 산물이란 것입니다. 그리고 기호에는 항상 그것을 해석하는 무언가, 누군가가 있습니다. 이 말은 바로 기호의 매개 작용을 말하며 모든 존재는 이런 상호작용을 통한 해석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어떤 미물이라도 기호를 읽고 이해하는 능동적인 환경의 해석자이며 이를 콘은 자기라 부르고 있죠.

 

이러한 기호체계는 해석의 축적을 낳고 이것은 곧 습관의 창발과 연관돼 있다는 점이 중요한데요, 흔히 습관은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기호체계가 모든 생명체의 활동인 만큼 습관이란 개별적 신체가 아닌 다수의 신체에 걸쳐 형성되는 대단히 집단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의 습관이란 것은 그 연결망 안에서 갖는 공통감각이며, 그것이 콘이 말하는 일반성의 형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하나의 습관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을 해체시키는 것이 왜 공황과 같은 내부붕괴를 가져오는지 이해할 수 있죠.

 

모든 생명은 습관 안에 거주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형성하는 것도, 붕괴시키는 것도 자연스러운 생명의 모습이죠. 따라서 그것이 기존의 틀에서 탈각한다고 오는 불안과 공포에 잠식당하지 말고 또 다른 습관을 만나 기존의 습관을 넘어서는 것이 필요하며, 그렇게 살아있음이란 바로 습관을 넘어서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기존에 거주하던 장소를 떠나 새로운 습관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탈영토화이며 우리는 콘이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이것을 얘기하고 있는지 이후의 장을 통해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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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고원-포획 장치>

 

이번 장은 어렵기도 하고 제가 이해한 부분이 별로 없어서;;;;, 근영쌤께서 각 에세이마다 덧붙여주신 강의를 중심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재겸>

논리적 전개를 위한 무기가 앞부분에서 다듬어져야 하는데 그 부분이 너무 거칠게 넘어가고 있다.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이 문제라는 전제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 시대는 없었다. 가치평가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가치로 보고 있는가, 어떤 가치를 평가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셀 수 있는 가치와 없는 가치를 논하고 있는데 어떤 식의 가치를 셀 수 있게 된 것이고 또 그것이 셀 수 없는 가치와 어떤 차이를 가지는 것인지 논의의 지점이 모호하다.

우리에게 들뢰즈의 국가개념이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선형적인 역사관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국가는 축적이 낳은 인과적인 발생의 결과가 아니며, 오히려 축적이 가능한 배치를 위해 국가라는 형식이 불연속적이고 우연적인 방식으로 출현한 것이다.

 

소담>

언어의 무분별적 사용이 문제다. 예를 들어 소유, 소유물, 소유권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소유와 전유는 어떻게 다른가? 무엇인가를 사유하면 그것을 정말 함부로다루게 되는가?

원래 봉건사회에서 소유란 인간과 대지의 관계였다. 그런데 사적인 것의 공적 전유를 위한 인격적 것, 즉 포획장치로서의 국가가 출현하면서 대지에 속해있던 사람들은 대지에서 뽑혀나와 인간 대 인간의 계약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속박은 인격적인 것이 된다.

사적인 것의 공적 전유란 우리가 공적인 것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 사적 필요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공공장소인 공원에 노숙자가 금지되고, 길거리에 노점상들이 쫓겨나는 현실은 공공의 영역 자체에서 사적인 요구가 공공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국가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공공의 명분은 생각처럼 다수의 협의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자본)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

 

미자>

우리는 선형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관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적 국가구성(되기)는 낯선 사고다. 즉 원시사회에는 원국가가 공존했고, 아시아적 도시의 출현과 자본주의도 인과적으로 출현한 것이 아니다. 어떤 탈코드화된 흐름이 전유되면서 노동자가 나오고, 자본이 만들어지며 자본주의라는 공리계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추상화된 활동이 되며 공리계는 추상계와 마찬가지다. 공리계의 특징은 그 안의 요소들이 각각 분절되어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다른 요소를 바로 넣고 빼고 하는 것을 가능하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자본주의 무한한 탈코드화를 설명한다.

그런데 들뢰즈는 이러한 공리계를 부정하고 이것을 당장 폐기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들뢰즈는 공리계를 더 밀고나가기를 주장한다. 즉 공리계 밖으로의 탈출이 아니라 공리계안에 새로운 공리계 열기를 시도하자는 것이다. 우리를 소외시키고 불안하게 하지만 또 한편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극한으로 내모는 힘, 이러한 추상기계의 양가적 가능성에 주목하며 적극적으로 공리계 위에 사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로써 현재를 부정하거나 포기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허무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운동을 통해 어떤 해결책에 도착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가 희망하는 것은 자본의 어떤 기획과 도발에도 결코 자본에 도착하지 않고 무한히 빠져나가는 힘이자 자유로움이다.

 

희영>

축적의 욕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욕망이 생기려면 비교와 전유(배타적 소유)가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교와 전유는 우리에게 불안을 유발하고 그 불안은 다시 더욱 많은 축적의 욕망을 낳는다. 비교와 전유의 세계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축적을 찾았다? 우리는 축적을 통해 안정성을 추구하지만, 축적이 안정성을 낳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축적 자체가 불안과 불안정을 가져온다. 축적이 과연 어떤 만족을 주는지를 살펴보고 축적을 욕망하고 더욱 많은 축적을 낳기 위해 내가 구성하고 있는 배치를 보아야 한다. 이를 통해 욕망의 피해자로서 자기를 자리매김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을 적극적으로 욕망을 낳는 배치체로 이해하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나라는 존재의 새로운 배치체 구성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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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목인샘의 또 하나의 발제를 읽는 느낌이었어요.
목인샘으 지난 수업을 샘의 것으로 다 소화하셨네요. 문장 하나하나에 그 소화의 내용이 다 드러납니다.
수업 들으면서 막연하게 머리 속으로 뱅뱅 돌던 말들이 이리 정리가 될 수 있군요.
먼저 감사의 인사를....
제가 이번주 천개의 고원 발제인데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글도 목인샘이 짚어주신 거처럼 이거 아니면 저거로 바로 가서, 그것의 선악을 따지는 것으로는 생성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이거든요.
발제하는 동안 잘 안 풀리면 목인샘 후기 들어와 계속 읽으면서 초심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샘의 생얼(생생한 얼굴)은 언제쯤 보게 되나요?
그날을 기다리며~후기 감사해요~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작성일

목인샘 명료하고 일목요연한 후기 감사합니다!
<숲은 생각한다> 저는 어렵지만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아마 발제를 하지 않아 그런거겠죠? ㅎㅎ)
토론 때도 잠깐 언급했지만 일차적으로 저는 언어 이외의 소통 방식에 대해
(우리가) 느끼고 있음에도 그것을 잘 믿지 못하거나,
신비주의적인 것으로서만 설명할 수 밖에 없을 때 느꼈던 어떤 답답함을
이 책을 통해 조금 해소(?)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또한 이와 동시에,
확실하게 제가 가지고 있었던 언어에 대한 편견 역시 잘못된 것임을 느꼈는데
언어가 무엇을 한정할 때 그것은 동시에 부재를 드러내는 것임이 아주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말하는 것이 늘 말하지 않는 것을 발생시킨다고 - 미래를 현재로 당겨오는 것과도 관련된
'현전과 부재' 이 부분이 참 멋진 생각이라고 느꼈어요.
(순간 부재에 관한 것이 언어만의 문제였는지
기호 전체를 말한 것인지 헷갈리는데 다시 책을 찾아봐야하겠습니다 ㅎㅎ)
+
습관이 집단적이라는 것도 약간 충격이었네요..
습관이 물론 우리가 그걸 끊어내기 어렵다(습관에서 탈영토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가 습관을 가지는 것 자체가 우리 자신의 다수성을 빼박 증명하는 것이라서...
그런데도 이 많은 증거들에도 자신을 똑 떨어진 모나드처럼 생각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우리 자신을 닫힌 체계로 오인하도록 만드는 것인지...거듭 생각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