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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3주차 목인샘의 후기

게시물 정보

작성자 석영 작성일20-06-22 16:51 조회109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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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인샘이 쓰신 후기인데 홈페이지 오류 문제로 대신 올립니다.




이번 주는 오랜만에 서사로 꽉찬 소설을 즐겼던 다음이라설까요, 새삼 읽기의 어려움을 다시 느꼈던 한 주였습니다. 두 번째 책인 <식인의 형이상학>은 많은 분들이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는 막막함을 함께 공유한 참으로 난해한 책이었는데, 저는 첫 발제를 맡은 덕에 할 수 없이 그 검고 뿌연 글씨의 안개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행히 내 뒤에는 든든한 무리가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그 뒷배를 믿고 용감하게 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힘겹게 찾은 좁은 입구를 보다 넓게 열어준 무리로서의 세미나에 감사하며 논의된 몇 가지 지점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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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인의 형이상학>

까스뚜르의 인류학적 문제의식

까스뚜르의 문제의식은 서구 형이상학이 인류학에서 보여주고 있는 전제에서 나온다. 즉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문화의 수준에 대한 판단기준은 자연과의 거리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인류학은 서구의 기준으로 외부의 사회문화를 해석하고 분류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는 대안으로서 외부대상의 시점에서 거꾸로 서구를 해석하자는 상대주의가 제기되었다.

우리가 익히 생각해왔던 상대주의는 인식을 객관화하기위한 절차였다. 시선을 나와 타자 밖에 두고 내 시선에는 이러니 쟤의 눈에도 이렇겠거니 하는, 양측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내 입장에서 너를 이해한다라는 자기(종족)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까스뚜르는 이렇게 동일한 자연의 법칙(신체) 위에 인식의 차이(영혼)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발생한다는, 기존 서구 형이상학을 구성했던 사유의 배치를 뒤집는다. 오히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들이 자기와 관계맺는 영혼의 질서는 동일하되, 세상과 관계맺는 각각의 신체의 질서는 다르다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을 담보한다고 믿었던 상대주의를 떠나 관점주의라는 새로운 인식체계에 도달해야 한다.

상대주의 & 관점주의

관점주의는 상대주의처럼 한쪽 입장에서 상대의 입장을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따라 완전히 분리된 관점이며 따라서 양립불가능하다. 니체에 따르면 관점주의란 결국 하나의 신체가 하나의 관점을 갖는 것인데, 신체가 분리된 이상 감각은 공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재규어에게는 피가 음료수고, 사람에게는 맥주가 음료수다. 양립불가능하다는 의미는 재규어처럼 피를 음료수로 느끼는 신체가 맥주를 음료수로 느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관점주의에서 재규어/인간은 피/맥주를 동일한 것으로 감각하는 신체는 아니지만 음료수라는 기호체계를 갖는다는 부분에서는 동일하다. 이것이 원주민의 인식체계가 갖는 서구와의 차별점으로, 결국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동일한 기호체계(문화)와 다양한 신체성(자연)의 결합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산 신체성(자연)을 가진 인간이 낳은 다양한 문화(영혼, 기호체계/언어)를 연구함으로써 무엇이 인간임을 규정하는지를 밝히려했던 이전까지의 서구적 접근법을 완전히 뒤집는 사유체계다.

문제는 이렇게 모든 신체성이 서로 다른 대상에 대한 동일한 감각을 과연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가에 있다. 이 경우 너의 피나의 맥주라고 해석(혹은 재현)하는 방식이 상대주의라면, 동일한 기호체계(갈증, 기호품)의 맥락에서 신체적으로 연결되는 다른 대상(/맥주)의 비교가 관점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의 비교는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우리는 자연스럽게 재규어와 인간 사이에서 그 차이를 번역해주는 중간자, 즉 샤먼과 같은 역할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되보기라는 상대주의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우리로서는 진정한 되기가 가능할지, 상상하기 쉽지는 않다. 또 그 되기가 없다면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되기가 가능하다면 왜 번역이 필요한가의 의문은 남는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붙들리기 쉬운 것은 명확함나아가 궁극의 진리에 대한 집착일 수 있다. 어쨌든 이 책은 그 수많은 관점들을 교차시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이 사물 그 자체혹은 유일무이한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그 교차되는 사이에 드러나는 애매함을 번역이 위치해야 하는 공간으로 삼는다.

3. 신체성

그렇다면 이렇게 관점주의에서 말하는 신체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여기서의 신체성은 각기 다른 존재의 단지 물리적 생리적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방식, 태도, 행동양식 등 소위 우리가 말하는 문화적 존재양식까지를 아우른다. 이것이 동일하다는 건 재규어나 파리가 감각하고 이해하는 세계는 인간의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환생이나 윤회의 개념이 바로 이해돼버린다. 즉 내가 파리로 태어나도 난 자신을 파리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과 똑같겠구나. 그렇다면 다른 모든 비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지금 나는 다른 존재와의 자기인식과 결코 그 차이를 알 수 없는 자기완결적인 세계 안에 있을 수 있다. 이는 한편으로 신체가 바뀌지 않으면 나의 인식은 절대 바뀔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애니미즘이 멈추는 곳이 바로 여기다. 신체성은 동일하다는 점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신체성과 접촉하면서 발생하는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신체성의 본질은 그 외형에 혹은 그 구성체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상과의 접속을 위해 변용될 수 있는 여지에 있다. 즉 우리가 흔히 신체라고 한정짓는 물질성의 기반위에서 그것을 인식하고 언어화하는 과정, 그 사이를 잇는 변용의 능력이 신체성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체성을 기운이자 정서또는 능력으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이다.

<천개의 고원>

9<미시정치와 절편성>에서는 8장의 견고한 분할선, 유연한 분할선이라는 개념을 절편성이라는 문제로 이어간다. 여기서 들/가가 함께 갖고 오는 것이 미시정치다. 미시정치의 절편성이 아니라 미시정치절편성이다. 9장은 바로 인간은 절편적 동물이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는데, 이렇게 인간 자체를 규정지을 만큼 강력한 절편성이라는 특징이 어떻게 정치, 그중에서도 미시정치와 연결이 될까.

절편성이란 구분짓고 경계를 나누는 작용이다. 이것이 인간을 만들고 다시 인간은 절편을 생산한다. 그중에 우리가 인식하는 것은 그램분자적인 견고한 절편성만이다. 분자적인 유연한 절편성은 지각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서 들/가는 오히려 9장 내내 미시는 위험하다고 말한다. 미시는 거시에 비해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쉽게 자각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계속 움직이는 흐름으로써 드러나는 사건 밑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정치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전두환에 대한 사람들의 주된 감정은 분노와 공포였지만 박정희에게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덮는 강력한 정서, ‘향수가 있다. 나치 역시 프로파간다를 내건 것은 히틀러였지만 분자화된 개인들의 열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가시적으로 자각할 수는 없지만 은연중 나를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가는 분자적 욕망이나 믿음이 미시정치의 한 예다. 그램분자적 절편화는 분자적 운동에 위협을 느끼기보다 적극적으로 이른 내속화한다. 오히려 이 양자간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힘이 권력의 중심을 차지한다. 즉 어떤 식의 절편화가 세상을 좌우하느냐가 아니라 세상을 구획짓는 선과 절편들을 흐름과 극들로 바꿔내는 그 사이에 권력의 중심이 있다. 자본주의를 보자. 욕망과 믿음이라는 흐름이 인플레이션이라는 문턱을 만나 화폐개혁이라는 사건으로 표면위로 떠오른다. 여기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문턱을 세워 군중으로서의 개인이 갖는 분자적 욕망, 그 흐름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권력이다. 이렇게 거시화된 사건에서 누군가가 도주한다 해도 권력은 그것을 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주하게 내버려둠으로써 다시 견고한 절편성이 분자적 수프에 잠기도록 한다.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로 그램분자화되었다가, 노동자는 다시 군중으로서의 개인으로 분자화된다. 바로 이 흐름을 장악하는 것이 권력이므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어떤 절편성이 더 위험하느냐의 여부보다는 두 운동 간의 관계이자, 그 둘이 연결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이다.

오늘 하루 세미나와 수업을 관통하는 개념은 신체성이었다. 분자적 운동이란 또한 끊임없이 변용하는 신체성을 의미하며 이것이 흐름을 형성한다. 이것은 신체라는 불연속인 개체면서도 끊임없이 신체의 부분 부분을 타고 변화하는 연속적 기운이자 작용이다. 신체는 변용의 집합이며 그런 변용들이 분자적 운동을 이룬다. 결국 이런 변용의 구체적 실천이 되기일 것이고 그것이 남은 한 가지의 선인 도주선이리라, 그 탐색이 이어질 다음 수업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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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난해한 책을 대할 때 우리가 먼저 해야할 작업은 그것이 맞느냐 아니냐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과연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제안을 들고나오는 것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데, 왜 항상 발제하고 나서야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까스뚜르 역시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바로 대답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문제를 알기도 전에 답부터 검증하려는 태도는 참으로 떨치기 어려운 습관인 것 같습니다.

이에 관해 오늘 얻은 팁은 책을 이론이나 진리로 접근하지 말고 저자의 책을 그의 삶이라고 생각하고 접속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보려면 우주 전체를 이해해야하고 그것은 우선 타자라는 가장 가까운 우주를 통과함으로써 가능해지니까요. 저자들의 논리를 분석하고 이해하기에 앞서 그들이 어떤 삶의 문제의식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출구를 내려 애쓰고 있는지 그 강렬도에 우선 접속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고백하자면, 이 후기는 이전 발제자들의 완벽한 수준에 감화받아 섣불리 시작했다 멘붕을 거쳐 무리의 격려로 간신히 수습됐네요. 특히 오후 수업은 제 긴장이 풀린데다 절편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한 상태에서 정리하려니 한계가...개념이 틀렸거나 보완돼야 할 부분은 지적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이래저래 무리의 힘에 기대, 혹은 그 힘에 밀려 수동적 능동자가 되는 기분이 묘하게도 나쁘지 않습니다. 사실 수동적 능동자가 되는 건 직장에서는 대개 반갑지 않은 상황인데, 배치의 차이가 정말 놀라운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럼 다음 발제를 위해이 정도에서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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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예민한코끼리님의 댓글

예민한코끼리 작성일

아카데믹한 발제에 이은 아카데믹한 후기네요.
먼저 흰 종이와 검은 글씨를 완벽하게 소화해서 세미나 시간을 이끌어 준 목인샘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무리의 발전을 위해서는 이 책 목인 샘이 쭉 끌고 가시면 뭐가 되도 될 거 같은데...^^
목인샘이 방향을 잘 터 주셔서 이번주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덕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기는 하네요. 어렵지만 서구 사회로부터 비롯된 우리 사고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어 어려움과 놀라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름의 재미를 맛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까지 관점이라는 말을 얼마나 가볍게 사용하고 있었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에요.
샘 글을 읽으면서 분자적 수프에 빠진다는 의미를 이해하고 갑니다.
개인적으로는 덤벙덤벙 개념을 훑고 글을 써서 좀 많이 아쉬웠던 장이었어요.
후기 감사요~

brisa님의 댓글

brisa 작성일

후기에서도 목인샘의 고민과 열정이 드러납니다..ㅋㅋ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놀라우면서도(왜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이를 신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지 그 개념들이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그만큼 뼛속까지 근대적인 사유를 장착한 것이겠죠.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서구인들과 그들의 사유를 마주쳤을 때, 제가 지금 느끼는 감정 이상으로 놀랍고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목인샘의 훌륭한 첫 발제와 근영샘의 명쾌한 강의로 이 책이 좀 더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역시나 어렵네요.ㅎㅎ 그런만큼 낯설지만 도주선을 내기에 필요한 사유가 제게 들어오는 거겠죠?
세미나 발제에 후기까지 '식인의 형이상학'과 깊은 인연을 맺은 목인샘 후기 감사합니다.^^

철수님의 댓글

철수 작성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얼토당토하지 않는, 뭐라고 된건지 알지 못하는 듯한 책으로 발제를 하신 우리 경애하는 목인샘에게 일단 박수.

이번 주 발제로 되기를 읽느라 식인은 거들떠 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되기를 보면서도, 왜 들/가가 왜 이런 문제에 천착하는지를 감을 못잡겠더라는...

푸른달님의 댓글

푸른달 작성일

목인샘 발제 + 후기 감사드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멋있는 제목의 식인의 형이상학이 많이 어려웠는데
목인샘 발제&후기와 근영샘 가이드와 세미나로 흥미로워지고 있습니다. ^^
특히 들-가의 '되기'개념이 항상 추상적으로 다가왔었는데
신체성과 관련하여 좀 더 구체화시켜서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호접몽은 실화라는 점...
우리는 모두 지금 인간인줄 굳게 믿는 파리일지 모른다는 점... ㅎㅎㅎ

모긴님의 댓글

모긴 작성일

에세이 시작하기 전 미적미적하다 (원래 이럴때 청소도 하고 싶고, 떡볶이도 먹고 싶고 뭐 그런것) 잠깐 들어와 봤더니, 다들 다시한번 격려의 말씀을..ㅎㅎ 이번 발제 끝나고 정말 많은 '수고했다'는 인사를 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들이 모두 다음 저를 이어 발제할 분들이셨다는ㅋㅋ 이번 '식인의...'이 모두에게 얼마나 부담이 됐었는지 느낄 수 있었네요. 그런데 또 이렇게나 난해한 개념을 함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기도 합니다. 공부는 정말 같이 해야한다는 생각도 들고.... 되기라는 개념은 이번 에세이에서도 붙잡고 있는데 쓰면서 우리는 정말 '되기'를 원하기는 하는걸까... 싶네요. 하지만 이런 의문 역시 되기라는 개념을 근대인으로써 이해하기 때문에 오는 한계인것 같기도 하구요. 변용의 문제는 실천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런 면에서 신체랑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도 같네요.